사람은 자세히 안보면 안보이는거야.
언젠가 봤던 백윤식 배우가 출연한"싸움의기술"이란 영화에서
백윤식 배우가 역활을 맡은 주인공의 멘토가 했던 이 대사가 뭐랄까...
나에게 별 이유없이 명대사로 가슴깊이 남아있다.
뻔하다면 뻔한 이야기지만, 그래도 그만큼 옳은 말이다.
나는 사람들이 타인을 볼 때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
조심스럽게 판단하고, 다각적으로 생각해보려고 했음 좋겠다.
누군가를 완벽히 알고있다는 오해에서 비롯된 무례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사람마다 나름의 기준점이 있더라도
그 사람에 대해 그것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사실의 일부이며, 매우 제한적이다.
그래서일까?
누군가 내게 사람을 볼 때 어떤 점을 보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특별히 그런 기준이 없는 것 같다고 대답한다.
자세히 봐야지 알 수 있다고 말이다.
물론, 살면서 내 곁에 두어야할 사람과, 두지 말아야할 사람을 구분하는
최소한의 기준선은 있어야하겠지만
여태껏 내게 이런 작업은 어디까지나 무의식의 영역에서 이뤄지는 작업이었고
굳이 개인적으로 이 작업의 원리를 해석하거나 밝혀내고 싶지는 않다.
순간순간의 느낌이나 흐름에 맡기는 주의랄까?
이런게 여태까지는 내 삶에서 그럭저럭 잘 먹히고 있기도 하고 말이다.
내 기준에 적합하더라도 함께 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을 수 있고
내 기준에 맞지않더라도 함께 하고 싶다고 느껴지는 사람이 있을 수 있는거다.
아무튼, 본론으로 돌아와
사람은 자세히 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다르게 표현하자면
내게는 잘 알지 못하는 타인을 재단하거나 규정지을 권한, 자격이 없으며
나또한 타인으로부터 일부의 정보만으로 재단되거나, 규정되고 싶지않다는 뜻이다.
뭐... 내가 이렇게 사람을 판단하는 것에 신중해진다고
사람들이 똑같이 나를 신중한 태도로 봐줄거라는 보장은 없는 험한 세상이지만.
그래도 내 마음에 들지 않는 타인의 나에 관한 생각이나 오해들에 관하여
"날 모르면서 아는척은 사양합니다. " 같은 이야기를 떳떳하게 하려면
나부터라도 타인에 대하여 그만큼 신중해져야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에 대한 많은 오해가 이해로 바뀌고
어떤 사람에 대한 많은 이해가 오해로 바뀌는
내 세계관을 흔드는 혼란스러운 상황들이 문득 찾아올 때.
이런 신중함은 이 모든 것에 한발짝 물러나 초연해지는데 도움을 주고
어느정도 내 중심을 잡으려는 일종의 보험일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