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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냥이 Mar 01. 2022

질투가 무슨 힘이야

질투


내게 없는걸 갖고 있는 사람을 보면서 느끼게되는 

결핍과 분노의 응집체를 나는 질투라고 정의한다.


세상이 발전해가면서 사람의 욕망은 복잡하고, 다양해졌다.


외모에 대한 질투, 관계에 대한 질투, 

재능에 대한 질투, 환경에 대한 질투, 

영향력에 대한 질투 등등..


지금 이 순간에도 끝도 없이 새로운 욕망이 생성되고 있으며 

세상에 존재하는 욕망의 수만큼 질투가 존재할 것이다.


보통 질투는 그 부정적인 기원에 어울리게 

사람에게 안 좋은 영향을 끼친다.


질투라는 것에 중독되고, 잠식된 사람들이

자신이 원하는 것에 도달하려고 하거나, 가지려는걸 포기하고

질투의 대상을 타겟으로 삼아 

자신의 레벨로 끌어내리려고 하는 행태를 보이는 것이

흔한 예시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질투가 어쩌다가 순기능을 할 때도 있는데

질투를 자신의 에너지로 변환하는데 성공한 사람들이 이에 해당한다.


그들은 상대를 추락시키는 것 대신, 정공법으로 자신의 상승을 꾀한다.

질투의 대상을 추락시키는게 더 쉽고 편한 방법 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본인이 가진 질투의 진정한 해소라는 측면에서 

그것이 문제의 해결과 완전히 반대라는 것을 깨달은 사람들...


그들은 노력과 실천을 바탕으로 그 질투의 대상을 연구하고 공부해서

질투의 대상을 나침반 삼아 더 높은  레벨로 나아가고자 한다.


질투라는 부정적인 마음에서 비롯된 힘이 

더 나은 내일을 향해가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건

그야말로 아이러니한 괴현상이지만, 그래도 그 존재를 부정할 순 없다.


세상에는 긍정적이고 밝은 에너지가 어울리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질투로부터 점화된 독기와 오기가 더 잘 어울리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언젠가 문득 깨닫게 된 생각인데

사람의 욕망과 꿈은 다양하고, 그것을 이루는 방식 또한 다양하다는 것이다.

애초에 정답은 없다는 것. 


음....그럼, 자기계발서에서 퍼온 것 같은 이야기는 여기까지하고.

나라는 개인은 질투를 어떻게 다루는가? 


당연히 잘 못다룬다. 

본인이 진짜로 원하는 것을 타인은 너무도 쉽게 갖고있는것 같고

이 세상에서 그것을 나 혼자만 영영 얻을 수 없는 것 같은 

그런 무력감을 느껴본적이 있는 사람은 알 것이다.

질투는 쉽게 다룰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는걸...


질투로 부터 에너지를 얻기는 커녕 

에너지를 쓸데없이 소모했던 기억이 많은거 같다.

그래서 질투를 에너지원으로 변환하는 방법은 일단 제외하고..


그렇다고 남을 나의 레벨로 끌어내릴 만한 호전성이나 공격성도 없다.

그게 얼마나 별로인 짓인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결국 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하나다.

가능한 가장 자연스럽고, 스트레스 없이 질투를 내려놓는 방법을 쓰는 것.

이른바 건강한 포기다.


첫째로 질문하기

질투가 발생하는 상황에서 질투의 대상이 갖고 있는 것이 

내게 정말 필요한 것인가? 얻는 것이 가능한 것인가? 

만일 가능하다면 그것을 얻기 위해 어떻게까지 할 수 있나? 


그런 본질적인 것들에 대해 심도깊게 따지다보면 

자연스레 질투라는걸 하는 것 자체가 피곤해지는 효과가 생기며

이내 비교하고 시기하는걸 포기하게 된다.

나는 귀차니스트라서 이 과정이 정말 수월하게 진행되는 편이다.


둘째로 탐색하기

선택권이 주어진 상황에서 여유있게 포기한 것이 아니라

그냥 답이 안나와서 포기를 한것이다보니 

어쩔 수없이 자신이 형편없어지는 것같고 좌절감이 들 때가 있다.

그런 감정에서 빨리 탈출하려면 "나에게만 있는것" 을 탐색하는 것이 좋다.


가령 "토끼와 거북이" 동화에서 내가 거북이라면 달리기라는 분야를 

일찍이 포기하고, 등껍질의 내구성이나 토끼보다 월등한 수명 등

자신의 유리한 지점을 발견해내서, 그 영역의 리그에서 나의 플래이를 하는 느낌이랄까?

그러고보면 내게 부족한 점을 커버하는 노력을 억지로 하는 것보다

나만의 차별점을 찾아 더 예리하게 갈고 닦는게

더 빛을 볼 때가 많은거 같다.


셋째로 내가되기

포기할 것을 포기하고, 나만의 차별점들을 찾아냈다면

그 다음은 나로서 존재하면서 그런 나를 즐기면 되는 것이다.


사실 이 모든게 흔해 빠진 자기합리화의 완곡한 변주일지라도 

세상에 하나 뿐인 나로 한번 뿐인 생을 죽을 때까지 이어가야하는데

내 마음이 웰빙하는데 도움이 된다면 

기꺼이 다소 비겁해지는 것도 나는 좋다고 생각한다.


음... 쓰다보니 또 자기계발서에서 퍼온 거 같은 글이 되어버린것 같아서

글이 더 자기계발서스럽게 되기 전에 멈춰야겠다.


그냥 나는 그렇다는 내용이니까

혹시라도 이 글보고 얻게 되는 위로가 없었으면 한다.


그건 너무 자기계발서 같은 전개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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