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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냥이 Apr 16. 2021

회사 단톡방에선 동료들의 분주한 소통이 오가고 있지만 오늘만큼은 상관하지 않는다. 

휴가를 낸 평일. 봄의 오후를 즐기고 있기 때문이다.


결제가 끝난 사내 HR홈페이지에 연차휴가 신청사유에는 개인사유라고 심플하게 적어놓았다. 직장인이 쉬는데 특별한 사유가 필요할까? 그냥 쉬고 싶으니까 쉬는거지… 라고 적을 수는 없으니까. 적당히 아침식사를 하고, 친한 카페사장님이 있는 단골카페의 오픈시간에 맞춰서 노트북을 챙겨 나왔다. 난 겨울에도 프라프치노 종류의 당도 높은 음료들을 주로 즐기는 편인데, 요즘 다이어트를 위해 일상에서의 당도를 조금이나마 줄여보려고 타협하듯 마시고 있는 헤이즐넛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 창가 자리에 앉았다.


창밖의 풍경을 감상한다. 바람, 온도, 햇빛… 모든게 적당한 것이 참 봄 같다고 할 수 있는 날씨다. 언제부턴가 우리의 사계절에서 봄과 가을 같은 적당한 계절의 지분이 줄어들고 있다. 적당함이란 개념은 다른 관점으로 보면 애매함이 된다. 뜨거운 여름과 차가운 겨울, 상대적으로 특색이 분명한 두 계절이 나머지 애매한 두 계절의 지분을 해마다 집어삼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이 개인적으로 아쉽냐고 물어본다면 꼭 그렇지는 않다.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여름이기 때문이다. 굳이 순위로 따지자면 봄은 사계절 중 두번째로 좋아한다. 봄이 나에게 가을보다 높은 인기도를 갖고 있는 이유는, 같은 덥지도, 춥지도 않은 “적당한 날씨” 라는 비슷한 속성을 갖고 있더라도, 아쉬운 여름의 완결로 시작해서 “나이+1” 이라는 정해진 결말이 기다리는, 한 해의 끝으로 시동을 거는 가을과는 엄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봄 특유의 시작에 가까운 에너지가 있기 때문이랄까? 그래서 다가올 여름의 인트로로서 봄이 좋다. 시작이 주는 설렘이 좋다. 비유하자면 좋아하는 뮤지션의 단독공연을 예매하고, 그 공연의 첫 곡이 시작되기까지 기다리는 시간들, 그 모두를 공연의 일부로서 즐기게 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사람마다 봄을 눈치채고 살아가는 시점은 다를텐데, 지금 나는 대충 봄의 중반부쯤 온 게 아닐까 싶다. 이미 내 주변에서는 벌써 봄의 시그널인 벛꽃이 피고, 지고, 남겨진 꽃잎들도 다 치워졌고, 기온이 일교차는 있지만 점차 따듯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나에게 있어 1년 동안 계절의 할당량, 기간 같은 것은 크게 중요한게 아니다. 제일 좋아하는 계절도, 두번째로 좋아하는 계절도, 싫어하는 계절도 있지만 분명한 건 모두 내 삶에서, 이번 년도에서, 한 번씩 밖에 없는 소중한 계절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20년의 봄이 나에게 또 다시 찾아올 일이 없듯이, 올해 2021년의 봄 또한 내 인생에서 단 한번의 계절일 테니까... 가능하면 해마다 주어지는 모든 계절을 투정 없이 온전히 즐기고 싶다. 


여전히 회사 단톡방에선 동료들의 분주한 소통이 오가고 있지만 오늘만큼은 상관하지 않는다. 

휴가를 낸 평일. 봄의 오후를 즐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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