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분한 주말이다.
할 것도 없어 동네친구와 간만에 운동을 해보자고
우리집 창고에서 먼지만 먹고있던
배드민턴 라켓과 셔틀콕을 꺼내
주인없는 동네 초등학교 운동장으로 나왔다.
우린 고교시절 특별활동으로 배트민턴을 했었다.
딱히 그 스포츠를 좋아했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테니스 처럼 공과 라켓이 무겁지도 않았고
같이 칠 상대를 찾아 일단은 하는 시늉만 하고있으면
강의식 활동이 아니라서 선생님의 훈련, 감시없이
방치상태로 놀 수 있다는 게 큰 메리트였다고 할 수 있겠다.
장담컨데, 그 시절 우리 고등학교에서 배드민턴부보다
시간 떼우기 좋은 활동은 없었을 것이다.
그 때 우린 각자 좋아했던 테니스 소년만화의
기술들을 따라하며 장난식으로 놀았었다.
어떻게 하면 상대가 받아치기 힘들고
기술 이름이 번지르르한 서브를
구사할 수 있을까만 고민하며 놀았더랬다.
다시 현재.
이제 우린 성인이 되었고
보는 구경꾼이 없다지만 우리가 놀았던 방식이
꽤 부끄러운 방식이었다는 걸 자각하고 있다.
"자, 간다."
라켓은 허공을 가르고
빠르게 공이 바닥에 꽂힌다.
"아니, 너 자꾸 그지같이 칠래?"
"너도 그렇게 치고 있잖아."
서로의 서비스 턴이 올 때마다
공이 한번을 왔다 갔다 못하고 툭툭 끊긴다
기술 이름 외치기 같은 걸 하고 있진 않지만
옛날 버릇까지 억제되진 않나 보다.
"도저히 안되겠다."
"지금부터, 스매쉬 금지. 그냥 랠리나 하자."
"오케이. 나도 지쳤다. "
랠리나 하자.
이 말은 일종의 평화협정 사인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서로 동의 하에 자기과시, 승부욕 등
쓸데없는 것들을 내려놓고
상대가 부담없이 따라잡을 수 있는 속도로
상대가 어렵지 않게 받을 수 있는 위치로
서로를 배려하는 공을 친다.
마치 캐치볼을 하는 것 같은 모양새다.
그저 공을 오래도록 안전하게 주고받는 것에 집중할 때.
그제서야 셔틀콕이 오고 간다.
다른 의미로 루즈 해진 게임이 되었지만
그건 중요치 않다.
공이 오래도록 네트 위를 오고 갈수록
우리의 시간은 즐거워졌다.
사람의 마음이 오고가는 것도
랠리와 비슷한게 아닐까란 생각을 한다.
어쩌면 사람들이 서로에게 기대하는건
받아치기 어려운 소년만화 필살기 같이
멋지고 뜨겁고 애뜻한 마음이라기보단
다소 따분한 랠리 같더라도
편하게 오래도록 주고받을 수 있는 마음에 가깝지 않을까?
당연한 얘기지만, 현실은 만화가 아니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