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은 하나. 충분할까?

대만 여행 준비

by 김배용

나 역시 한동안 국경을 넘지 못한 채 국내에서 시간을 보냈다. 해외여행에 대한 감각도 잠시 접어 두고 있었다. 그러다 오래간만에, 그것도 가족과 함께 해외로 떠나게 되었다. 10년 만의 해외여행이라니... 설렘은 배가 되었지만, 준비는 그만큼 더 신중해졌다.


그동안의 여행은 대부분 일이 목적이었다. 길게는 몇 달, 짧게는 엿새 남짓 현지에 머물렀다. 떠날 때마다 캐리어와 배낭을 함께 챙겼고,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크기와 무게를 재가며 한계까지 짐을 꾸렸다. 낯선 나라에서 부족함을 느끼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짐의 무게와 부피로 드러났던 셈이다.


하지만 실제로 손이 가는 물건은 그리 많지 않았다. 여유 시간에 잠깐씩 세탁만 해도 속옷은 두어 벌이면 충분했다. 북유럽의 맑은 공기 아래에서 보낸 노르웨이 3개월 동안 다섯 벌을 챙겨 갔지만, 세 벌은 끝내 가방 속에 머물렀다. ‘혹시 몰라’라는 말이 얼마나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는지 그제야 알게 되었다. 이 과정을 노르웨이 출퇴근 동안 수업이 반복했고 또 매번 후회했다.


그래서 이번 대만 여행은 조금 다르게 준비했다. 각자 감당할 수 있는 배낭 하나씩만 메기로 한 것이다. 불필요한 무게를 덜어내고, 그 자리에 가벼운 마음과 호기심을 채워 넣기로 했다. 어디로 이어질지 모를 다음 여정을 위해서라도, 우리는 이동의 방식부터 바꾸어 보기로 했다. 짐이 줄어들자 여행이 기동성이 확보되고 일정도 더 또렷해졌다. 떠난다는 것은 무언가를 더하는 일이 아니라, 어쩌면 덜어내는 일인지도 모른다. 이번 여행은 그렇게 가벼운 어깨 위에서 시작하기로 했다.


떠나기 사흘 전, 아이들에게 말했다.


“각자 입을 옷 두 벌, 초겨울용 점퍼 하나, 잠옷, 양말, 그리고 칫솔.”


그게 전부였다. 여행이란 이름 아래 괜히 더 챙기고 싶어지는 마음을 미리 잘라냈다. 개인 스마트폰이나 화장품처럼 각자 필요한 물건은 스스로 준비하게 했다. 가방에 주렁주렁 매달 온갖 키링은 다 제외했다. 혹시 모를 스티커도 제외했다. 기념이 될만한 보석, 인연을 만나면 나눠줄 선물도 모두 거절했다. 아이들이 물건을 챙기는 동안 난 허락과 거절을 수업이 고민해야 했다. 함께 쓰는 것들은 내가 맡았다. 실제로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하나씩 표시해 가며 챙겼기에, 더할 것도 덜할 것도 없었다.


내가 메야하는 가방에 들어간 것들은 이랬다.


우의와 양산, 비상약, 충전기와 케이블, 휴지와 물티슈, 손난로, 동전지갑, 여권과 사본, 결제카드. 촬영 장비도 빠질 수 없었다. 액션캠과 셀카봉, DSLR 카메라와 작은 삼각대, 여분의 렌즈와 필터, 보조배터리, 110v 어댑터, 노트북과 마우스, 녹음기. 서류철에는 여행자보험증권과 e-티켓, 호텔과 투어 예약 확인서, 그리고 다이어리와 펜을 넣었다. 내 옷은 반팔 두 벌, 바지 한 벌, 속옷 한 벌, 양말 두 켤레, 외투 한 벌.


이렇게 적어 놓고 보니 제법 많아 보이지만, 대부분 얇고 작은 물건들이었다. 백팩과 카메라 가방에 모두 들어갔고, 결국 캐리어는 필요하지 않았다. 다만 돌아오는 길, 기념품을 담을 여지를 남겨두기 위해 기내용 캐리어 하나만 아내가 챙겼다. 대신 그 안에는 아내의 가방을 넣어 끌고 다니기로 했다. 캐리어가 늘었다고 해서 짐까지 늘리지는 않겠다는 작은 다짐이었다.


이번 대만 4박 5일 여행을 이렇게 가볍게 준비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출발 전 한국에서 확인한 현지 기온은 낮 15~20도, 밤 5~10도. 일교차는 있지만 혹독하지도, 무덥지도 않은 날씨였다. 게다가 비 예보도 우리가 머무는 날과는 겹치지 않았다. 마치 대만의 날씨 요정이 우리를 환영하겠다고 먼저 신호를 보내온 것처럼. 가벼운 짐만큼이나 발걸음도 한결 가벼워졌다. 떠나기 전부터 이상하게 마음이 들떠 있었다.


우리의 짐은 떠나기 하루 전 모두 준비되었다. 나도 집사람도 아들도 딸도 준비되었다. 이제 계획대로 떠나면 되었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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