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 만에 끝내기_시작

시작부터 J의 계획

by 김배용

“진짜 가는 거야? 놀리는 거 아니지?”


딸의 반응에는 놀람과 걱정, 그리고 기대가 뒤섞여 있었다. 목적지가 어디인지, 무엇을 하러 가는지는 그 순간 중요하지 않았다. 여행을 떠난다는 사실 자체가 아이의 마음을 먼저 흔들어 놓은 듯했다. 반면 아들은 짧게 “와~” 한마디를 남겼을 뿐이었다. 설렘도, 궁금함도 그 한 음절에 모두 담겨 있었다.


이제 남은 내 몫이었다. 가서 무엇을 할지, 무엇을 먹을지, 어디를 둘러볼지 차근차근 정해야 했다. 출발까지 남은 시간은 17일. 결정이 늦어지면 선택의 폭이 좁아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늦은 밤까지 검색창을 떠나지 못했다. 수많은 정보들 사이에서 마음이 흔들리다가도, 결국은 빠르게 결단하겠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가장 먼저 결정한 것은 숙소였다. 여행의 중심이 되는 공간이자, 동선을 좌우하는 중요한 기준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특히 대만은 숙소 위치에 따라 이동 경로와 일정의 효율이 크게 달라질 것이라 판단했다. 그래서 아고다, 부킹닷컴, 호텔스닷컴 세 곳의 예약 사이트를 비교하고, 구글 지도까지 펼쳐 놓은 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아직 대만 지리에 익숙하지 않아 지도를 확대했다가 축소하기를 반복했다. 마치 낯선 도시의 윤곽을 손끝으로 더듬어 가듯이 말이다. 유튜브 영상도 빠지지 않았다. 누군가는 좋았다 했고, 누군가는 불편했다고 했다. 그중에서도 나는 위치에 관한 후기를 가장 유심히 살폈다.


하지만 미리 밝혀두자면, 결국 위치는 그리 결정적인 요소가 아니었다. 그 이유는 대만에 도착한 뒤의 기록에서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해 보려 한다. 처음에는 조식 제공 여부도 중요한 기준이었다. 여행의 아침을 호텔 식당에서 시작할지, 거리에서 시작할지 고민했다. 그러나 여러 정보를 접한 끝에 조식은 굳이 포함하지 않기로 했다. 대만의 아침은 호텔 안이 아니라 거리에서 시작해도 충분하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호텔 문을 나서 몇 걸음만 옮기면 저렴하고도 다채로운 아침 메뉴가 기다리고 있었다. 5일 동안 매일 밖에서 조식을 먹었지만 단 한 번도 같은 메뉴를 선택하지 않았다. 오히려 다 맛보지 못한 음식들이 아쉬움으로 남았을 정도였다. 그렇게 우리의 아침은 선택이 아닌 즐거운 탐험이 되었다.



우리는 타이베이 메인스테이션 인근의 가성비 좋은 호텔을 예약했다.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우선순위는 역시 가격이었다. 하지만 블로그와 유튜브를 찾아보니 많은 여행자들이 메인스테이션 근처를 추천하고 있었다. 이유는 명확했다. 교통의 중심지이기 때문이다.


우리 가족에게는 특히 중요한 조건이었다. 무려 10년 만의 해외여행이었기에, 짧은 일정 안에서 가능한 한 많은 것을 보고 싶었다. 그러려면 이동이 잦을 수밖에 없었다. 대만 여행의 대부분은 지하철을 중심으로 움직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동의 시작과 끝이 될 곳은 자연스럽게 메인스테이션 인근이 되어야 했다. 실제로 첫날 신청한 이른바 ‘예스지’ 투어의 출발과 도착 장소 역시 메인스테이션이었다. 여러 면에서 더없이 효율적인 선택이었다.


호텔 위치를 정한 뒤, 다음으로 결정한 것은 투어였다. 기본적으로는 자유여행을 계획하고 있었지만, 대중교통만으로는 효율적인 동선이 어려운 코스가 있었다. 이른바 ‘예스폭진지’라 불리는 일정이다. 예류지질공원, 스펀, 폭포, 진과스, 지우펀의 앞 글자를 따 만든 코스다. 그중 우리는 ‘예스지’를 선택했다.


'폭'의 폭포는 사진으로 충분하다는 후기들이 많았고, '진'의 진과스는 막상 가도 크게 할 것이 없다는 의견이 적지 않았다. 무엇보다 우리는 당일 오전 대만에 도착하는 일정이었기에, 오후에 소화할 수 있는 반일 투어가 필요했다. 다행히 시간대가 딱 맞는 상품이 있어 ‘클룩(Klook)’을 통해 1인 9,200원에 예약을 마쳤다. 이렇게 간단히 정리했지만, 사실 ‘예스지’ 투어를 최종 확정하기까지 꼬박 이틀이 걸렸다. 일정표를 몇 번이나 고쳐 쓰고, 후기들을 비교하며 고민한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자유여행을 하겠다면서 왜 시작부터 투어를 신청했을까. 그 이유는 단순했다. 우리는 대만에 대해 충분한 정보를 갖고 있지 않았다.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느낀 점이 있다면, 결국 여행은 아는 만큼 보이고 느껴진다는 사실이다. 배경지식이 전혀 없는 상태로 의미 있는 장소를 찾는다면, 그 공간의 역사와 맥락을 놓치기 쉽다.

비록 모든 장소를 투어로 둘러보는 것은 아니지만, 여행의 시작만큼은 가이드의 설명과 함께하기로 했다. 그 시간을 통해 대만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넓히고 싶었다. 이후의 일정은 그 토대 위에서 더 깊이 즐길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투어 후기는 다시 자세히 기록해 보려 한다. 지금은 짧은 힌트만 남겨 두자면.


그 선택, 꽤 괜찮았다.


다음으로 신청한 일정은 고궁박물관 ‘도슨트 투어’였다. 대만 여행에서 고궁박물관은 빠질 수 없는 필수 코스라고 생각했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여행이니 맛있는 것을 먹고 멋진 풍경을 보는 일도 중요하지만, 그 안에서 무엇인가를 얻어 가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무엇보다 내가 전시된 유물을 아이들에게 충분히 설명해 줄 자신이 없었다. 그렇다면 한국어 도슨트 투어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에 가까웠다. 유명한 유물인 취옥백채와 육형석은 현재 전시되어 있지 않다는 후기가 많았지만, 그 두 작품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의미 있는 유물들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 일정 역시 앞서 예약한 투어와 같은 사이트 ‘클룩(Klook)’을 통해 신청했다. 투어 후기는 따로 자세히 남기겠지만, 미리 한 줄 힌트를 남기자면.


글쎄, 나는 좋았지만 아쉬움이 남는다.


고궁박물관 도슨트 투어는 ‘예스지’ 일정 다음 날로 빠르게 잡았다. 이유는 단순했다. 여행 초반에 대만에 대한 배경지식을 조금이라도 쌓아두고 싶었기 때문이다. 일정은 이렇게 이어졌다. 1일 차 오후 ‘예스지’, 다음 날 오전 ‘도슨트 투어’, 그리고 오후에는 아내의 블로그 협찬 일정으로 카페 방문이 예정되어 있었다.


이 세 가지를 끝으로 의무적인 일정은 마무리되었고, 나머지는 모두 자유시간이었다. 물론 ‘자유’라고 해서 현지에서 즉흥적으로 정한다는 뜻은 아니었다. J 성향인 내가 이미 전체 일정을 짜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스스로를 그리 빡빡하지 않은 J라고 생각해 왔다. 상황에 따라 P처럼 유연해질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여행 일정을 준비하면서 깨달았다. 나는 극(極) J에 가까운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그때부터 머릿속은 또 다른 체크리스트로 가득 찼다. 인천공항까지 가는 방법은 무엇이 가장 효율적인지, 현지에서는 데이터를 어떻게 사용할지, 통화는 가능할지, 보조 배터리는 몇 개를 준비해야 할지, 추가 카메라는 가져가야 할지, 현지 이동은 지하철이 편할지 버스가 나을지. 아침, 점심, 저녁은 어디서 먹을지,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한 대안은 무엇인지까지.


지금 돌아보면 그 모든 준비가 나름의 최선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어쩌면 그 덕분에 여행이 더 안정적으로 흘러갔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당시의 나는 준비가 충분하다고 느끼지 못했다. 그저 주변에서 “대만은 쉬운 여행지야”라는 말을 여러 번 들었을 뿐이다. 그 말은 위로가 되기보다는 오히려 부담처럼 느껴졌다.


쉽다는데, 나는 왜 이렇게 어렵게 느껴지는 걸까? 모르니 당연한가?


어쩌면 그때의 나는 여행을 준비한 것이 아니라, 10년 만의 해외여행이라는 시간을 다시 시작할 용기를 준비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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