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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기와 질투, 전진과 후진 기어

<마음사전>, 김소연 작가의 그 문장

질투는 자기가 못 가진 것을 향해서만 생기는 감정이지만,
시기는 자기가 갖고 있으면서도 생기는 탐욕이다.
질투는 힘이 되고 시기는 폭력이 된다.

<마음사전>, 김소연



# 금지어는 무엇

어느 날 TV에서 본 퀴즈. 김영하 작가가 학생들에게 졸업 때까지 금지한 단어를 맞추는 것이었다. 그 단어는 000. 그런데 이 말을 듣자 학생들의 첫 말은, “000, 선생님 왜요?”라고 했단다. 퀴즈의 정답은 ‘짜증 나’!!  금지의 이유는 이랬다. 앞으로 글을 쓰거나 글로 설득해야 할 학생들이, 서운하다, 황당하다, 화나다 등의 전혀 다른 감정을  단순하게 뭉뚱그린 ‘짜증’이라는 단어를 쓰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서 이 단어를 금지했다는데, 과연 그럴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 뭉친 감정을 툭툭 건드려

나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다리 수술로 휠체어와 목발에 의지한 채 강제 집콕 생활을 하던 그때,  감정의 변화가 심했다.  거기다 코로나로 사람 만나기도 어려워지자, 뭉친 이불처럼 뭉친 감정이 시도 때도 없이 툭툭 나를 건드렸다. 이유 없이 눈물이 나는가 하면,  우울하고, 불끈 화가 나고 마음이 수시로 가라앉았다. 수시에 실패한 아들의 정시 원서접수 스트레스도 한몫해서  몸과 마음이 그야말로 바닥상태였다.


이때, 친구가 단톡방에 딸의 입시 합격 소식을 알렸다. 그동안 어렵게 뒷바라지한 고생을 알기에 처음엔 진심으로 축하해주었다. 그런데 다른 학교에 복수합격 소식과  장학금 인증샷까지 계속 올리면서  뭉친 내 마음을 툭툭 건드리기 시작했다. '나의 상황을 알 텐데 이렇게 까지... '라는 속상한 마음이  쓰나미처럼 몰려오면서 수시로 내 기분을 가라앉혔다. ' 나를 배려한다면 이럴 수 없을 텐데...'라는 쪼잔한 마음이, 친구한테 그러면  안 된다는 마음과  엉켜서 나쁜 감정에 갇힌 마음은 더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 감정에도 이름표가 필요해

심난한 나는 병문안을 못 가서 미안하다며  후배가 보내준 책 <마음 사전>을  펼쳤다.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자존심과 자존감이 다르고, 선함과 착함이 다르다는 것.  그동안 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제대로 알지 못 한 미묘한 감정의 차이를 알아가면서 내 기분 나쁜 내 감정이 하나가 아니라는 게 읽혔다. 짜증 나고 우울한 감정의 가장 밑바닥은 친구를 향한 ‘시기’였다는 것. 내가?정말? 이거였다고? 화들짝 놀랐다.마치,  몰랐던 병명을  진단받은 환자처럼  내 감정에 '이름표'를 달아주자, 모른 척하고 뭉뚱그린 감정이 제대로 보였다.


그래! 솔직히 ‘시기’였어. 그런데도 '난 원래 시기심이 없는 사람이야'라고 억지를 부리고 한편에선 친구한테 나쁜 감정을 가지면 안 된다는 마음이 뒤엉켜서  나를 힘들게 한 거였다. '맞아,  이런 상황이면 나도 시기할 수 있어'라고 인정하니까 마음이 훨~씬 가벼워졌다. 거기까지 가는 과정은 몹시 고통스러웠지만. 그건 일그러지고 못난 나를 인정하는 길이니까. 하지만 내 감정에  ‘시기’라는 '이름표'를 달아주자, 그동안 "쩍~" 달라붙어있던 나와도 '틈'이 생겨 내 감정을 '거리'를 두고 바라볼 수 있고, 손에 안 잡히던 불편한 감정도 '물성'이 있는 것처럼 만져지는 듯했다. 문제가 해결된 건 아니었지만, 정체모를 어두운 감정에 ‘이름표’를 달아주는 것만으로 한결 가벼운 기분이 들었다.




# 감정에 전진기어, 후진기어

부러운 게 많은 사람에 대한 감정이 모두 똑같지는 않다. 나에게 없는, 부러운 면이 많은 또 다른 친구.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업에다, 능력자에 마음도 넓고 인품도 넉넉하다. 새로운 일을 겁내지 않고 도전하고 혼자 편하게 살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 돕는 일에 진심이다. 나는 언젠가 이렇게 물은 적 있다.


“ 너는 가진 것도 많아서 인생 편하게 살 수 있는데 왜 그렇게까지 남을 위해 애쓰며 살아? “


“나는 그럴 때 기뻐!”


이  친구에겐 '시기심'이 생기지 않는다. '시기심'을 갖게 한 친구와 근본적으로 '부러운 게 많은 사람'이라는 '뿌리'는 같을 텐데, 내 마음은 다른 방향으로 '가지'를 뻗는다.  이 '부러운 감정'은 나를 앞으로 가게 만든다. 망설이던 나한테 '전진기어'를 넣는다. 안 해본 걸 해볼 용기를 갖게 하고, 그 친구가 도움을 청하면 할 수 있는 만큼은 꼭 같이 하고 싶어 진다. 함께 있음으로, 내 좁은 마음의 평수가 조금씩 넓어지는 느낌이다. 친구를 바라보는 '부러움'은 정지해 있으려는 나를 자꾸 ‘앞으로 전진’하게 만든다.  


반면, 나를 힘들게 한 ‘시기’라는 감정을 떠올려보면  이상하게 나를 뒤로 '후진'하게  만들었다.  미워하고 비교하게 만들고, 나를 자책하고.......  분명, '부럽다'라는  마음의 뿌리는 같은데, 왜  내 마음의 방향은 때론 전진기어로, 때론 후진기어로 달라지는 걸까? 아직은 잘 모르겠다. 내 감정을 나만의 뾰족한 언어로 이름표를 달아줄 정도의 실력이 안 돼서. 하지만 내 어지러운  마음을 읽고 ‘질투’와 ‘시기’라는 이름표를 달아준 김소연 작가의 문장은,  어두운 동굴에서 자발적으로 나올 수 있도록 도와준 내 마음의 '치료제'가 되었다. 건 내가 문장을 사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를 숨 쉬게 하는 문장들을. (끝.)




"질투는 자기가 못 가진 것을 향해서만 생기는 감정이지만,

 시기는 자기가 갖고 있으면서도 생기는 탐욕이다.

 질투는 힘이 되고 시기는 폭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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