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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tto Mar 10. 2021

월급은 욕 값이다

악! 어떡해 또 늦었어!!!

허겁지겁 허둥지둥! 아씨 오늘 무슨 요일이지? 미팅 몇 시지? 늦으면 안 되는데!

아... 겁나 욕먹겠다.... ㅠㅠ

뛰자, 뛰어!!


발을 힘껏 뻗으니 허공이다. 화들짝 놀라 깨어보니 꿈이었다.

퇴사한 지가 언젠데 아직도 이런 꿈을 꾸다니. 후훗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는 현실에 깊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지각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동시에 회사에 출근하기 싫어 매일 씨름하던 그 시절의 감정이 고스란히 생각나 생각만으로도 온몸의 신경과 근육이 솟아났다.


입사하고 1년쯤 지났을 때 처음으로 상사한테 혼이 났다.

새로 오신 파트장님이 내가 쓴 보고서를 내 1년 위의 여자 선배와 비교하며 갑자기 딴지를 걸기 시작했다. 파트장님의 스타일이 아직 파악이 되지 않은 때라 최대한 요청하신 대로 작성하여 가져 갔건만 마음에 들지 않으셨는지 갑자기 다른 사람과 비교를 하는 것이 아닌가.


"아 역시, 선배가 달라~ ㅇㅇ씨, 이거 봐~ 신대리가 그래도 짬밥 좀 먹었다고 내가 말한 거 바로 딱 알아듣고 글자 크기랑 줄 간격이랑 이렇게 딱딱 맞춰서 가져오잖아. 이거 가져가서 참고해서 다시 해와~"


순간, 너무 기분이 나빴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으니 꾹 참고 그냥 가져가서 선배의 문서와 비슷하게 작성을 하여 들고 갔다. 그러자 그 뒤부터 3분에 한 번씩 나를 불러대며 보고서를 수정하기 시작했다. 나는 3분 간격으로 이쪽 제일 끝에서 저쪽 제일 끝에 있는 파트장님 자리까지 튀어갔다. 내용은 읽지도 않으시고 자와 빨간펜을 들고 찍찍, 보고서는 난도질당했다. 아 이게 그 말로만 듣던 'X개 훈련'이구나.


상할 대로 상한 자존심을 들고 옆에서 '신입사원 제대로 훈련시키네~ 살살하세요 파트장님'이라는 과장님들의 농도 들어내가며 그렇게 몇 번을 왔다 갔다 하기를 한 시간쯤,


'내가 살면서 뭐 이렇게까지 못한 적이 있었나. 이렇게까지 혼쭐이 날 일인가. 그것도 겨우 1년 차 선배랑 비교까지 당해가며... 아 자존심이 너무 상한다. 게다가 대체 내용은 한 자도 안 보고 저렇게 줄 맞추고 띄어쓰기만 볼 거면 왜 처음부터 그걸 먼저 말하지 딴 소리야... 주문이 틀렸잖아... 그리고 파트장님아, 네가 하시는 얘기 무슨 얘긴지 하나도 못 알아듣겠거든요?! 아 열 받아...'


마음의 소리는 이렇게 울리고 있었지만 입은  다문채  마디도 하지 못하고 영혼까지 탈탈  털리고 집으로 돌아오던 . 갑자기 눈물이  돌았다. 아흑... ㅠㅠ 서러웠다. 나는야 장그레 사원...

그리고 갑자기 신입사원 환영회 때 같은 자리에 앉으셨던 인사팀 부장님이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월급은 욕 값이야, 네가 뭘 잘해서 받는 돈이 아니고 욕먹은 거에 대한 대가라고. 그렇게 생각해야 회사를 오래 다닐 수 있어. 그러니깐 욕을 많이 먹어도 월급날 통장에 돈이 딱 들어오면, 아 이번 달 욕 값이 들어왔네~~ 욕 많이 먹느라 수고했네~ 하고 또 한 달을 버텨. 그렇게 버티다 보면 나중에 좋은 날이 올 거야."라고...


당시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날 처음으로 그 말은 내 뼈를 때렸다.

아... 이런 거구나.

나도 그랬었지만, 요즘 신입사원들이 입사해서 제일 힘들어하는 것 중 하나가 '다른 사람에게 혼나는 것'이라고 한다. 사실 요즘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잘 혼이 나면서 자라지는 않는다. 공정한 토론과 건전한 비판을 주고받으며 자라는 예전보다는 성숙해진(?) 문화 덕인지 옛날처럼 일방적인 혼남은 잘 없다.


특히나 학교 내내 모범생이라는 소리 들으며 선생님한테 칭찬받고 동급생 사이에서 우쭐하며 자라온 경험을 가진 사람들은 첫 사회생활이 절대로 쉬울 리가 없다. 회사는 그런 곳이 아니니까. 내가 아무리 잘해도 상사의 뜻과 조직의 방향과 맞지 않으면 그건 내가 잘못한 것이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잘했다고 자만하지도 잘 못했다고 좌절할 필요도 없다. 조직의 생리라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시간을 줄이는 것이 조금 더 사회생활을 수월하게(?) 할 수 있는 지름길인 듯싶다.


평생에 걸쳐 몸소 겪어내신 ‘월급=욕 값’이라는 깊은 깨달음을 알려주셨던 부장님은 상무님이 되신 후 몇 년을 더 계시다가 작년에 은퇴를 하셨다. 입사 후 3년 동안 매달 두 권씩 짧은 메모가 적힌 책을 보내주시기도 하셨는데 힘겨운 회사생활을 떠올릴 때마다 기억에 남는 고마운 분 중 한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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