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셋 겨울, 파혼을 했다.
결혼식을 한 달 앞두고 취소했으니 약혼식만 하지 않았을 뿐 결국 파혼인 셈이다.
정말 양쪽 집에 죽을죄를 지은 것 같았지만 그래도 이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지난 몇 년간 시달리며 버린 시간들이 너무나 아까웠지만 평생 후회하는 것보다는 잠깐 나쁜 X 되는 게 낫다.
일주일 후면 서른 넷이다.
아... 내가 무슨 짓을 한 걸까. 정말 이제 어쩌지? 서른 넷인데 누구를 만나지? 결혼은 할 수 있을까?
그 혹독한 대가를 치렀음에도 아직도 누구를 만나서 결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내가 한심하기도 하고 혼자 살아도 될 것 같은데 또 안될 것 같고.
친구들은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아무 말도 귀에 들리지 않았다.
부모님께 제일 죄송했는데 다행히도 그때 엄마가 해주신 말,
"네가 결혼 안 하겠다고 해서 속으로 다행이다 싶었다."
헉... 그렇게 별로였단 말인가 나의 남자 보는 눈이...
한편으로는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나 자신이 좌절스러웠다.
서른이 넘은 해를 살면서도 아직도 이렇게 사람 보는 눈이 없을 수가 있다니.
그리고 일주일 후, 토요일.
갑자기 엄마가 사진 한 장을 들이밀었다.
"이게 뭐야?"
"만나봐~"
"악!!! 헤어진 지 이제 겨우 일주일 된 사람한테 이게 무슨 짓이야!! 나에게도 회복할 시간을 좀 줘야지!"
"지금 니 나이가 몇인데 그럴 시간이 어딨어! 정신 차리고 만나봐! 그리고 너 손 하나도 안 댄 자연미인이라고 해놨어~ 네가 무슨 수술을 하기를 했어~ 어? 이만하면 자연미인이지!"
아... 맞다... 이게 우리 엄마지.
맞아 우리 엄마는 이렇게 시간표대로 딱딱 잘 살아주기를 바라는 그런 완벽주의자 엄마지.
지금 내 처지에 감정노동은 사치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
"너 여기 병원 가서 상담받을래? 여기여기 조금 손보면 더 이쁠 것 같은데..."
"뭐라고????? 내 얼굴이 왜? 이제 엄마는 내 얼굴도 미워? 아 진짜... 무슨 딸한테 갑자기 가서 성형수술을 하라는 엄마가 어딨어?!!"
나는 안 그래도 낮아진 자존감에 물폭탄이라도 맞는 심정이었다.
'엄마도 더 이상 내가 예쁘지 않구나. 우리 엄마마저도 날 예쁘지 않다고 하면 난 정말 가망이 없다.'
충격적이었던 그 날.
엄마.. 그리고 내가 무슨 자연미인이야.
엄마가 나 중1 때 치과 데려가서 교정시키고 뻐드렁니 다 갈고 대학생 돼서 코 밑에 큰 점도 빼주고 그랬잖아. 칼만 안댔지 뭐 할 거 다 한 거 같은데.
그래도 이만하면 자연미인 인겁니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