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 장녀, 나와 엄마의 이야기
자다가 갑자기 "엄마~!" 하고 부르는 소리에 달려가 아이 옆에 살포시 눕는다. 자는 아이 등을 토닥토닥. 아이는 이내 새근새근 잠이 든다. 코 끝에서부터 진동하는 아이 냄새. 제일 행복한 순간이다. 세상에 어떤 향수로도 흉내 낼 수 없고 말로 형용할 수도 없는 냄새. 이제 우유만 먹는 아기도 아닌데 왜 아직도 살결에선 젖비린내 같은 우유냄새가 날까. 아이 냄새는 나에게 무한한 안식을 가져다주는 유일한 것이다. 그리고 곧 그것이 엄마 냄새와 맞닿아 있음을 알게 되었다. 엄마 잠옷, 엄마 베개에서만 나는 엄마 냄새. 난 좀 커서까지도 한동안 엄마 베개에 파묻혀 잠들곤 했다.
내가 너에게 무한한 사랑을 주는 것 같지만 사실 네가 나에게 주는 사랑이 더 크다. 무조건적인 아이의 사랑을 받아 본 엄마라면 안다. 아이가 주는 행복이 얼마나 큰지. 아이는 존재 자체로 얼마나 감사한 존재인지. 나 또한 부모에게 그 존재 자체로 감사한 존재였었음을... 그것을 좀 미리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대학생 시절, 한 친구를 만났다. 함께 공부하고 교회생활을 했었는데 바로 취직을 하지 않고 대학원에 진학을 하게 될 것 같다고 했다. 나는 부모님은 뭐라고 하시냐고 물었더니 "너는 우리에게 존재 자체로 기쁨이고 감사이기 때문에 네가 무엇을 하든 우리는 기뻐"라고 하셨다고 했다. 그때 나는 충격이었다. 부모님이 그런 말씀도 해주시는구나. 그 친구는 더 멋져 보였고 그런 부모님을 가진 것이 부러웠다.
우리 아빠는 늘 나에게 "보배야, 보물아"라고 부르긴 했다. 하지만 우리와 보내는 시간은 아주 적었다. 대부분은 바깥 활동을 하셨다. 우리 엄마는 바깥활동과 집안 살림을 동시에 하시느라 늘 지쳐 계셨고 한참 사춘기였던 시절 대화한 기억은 거의 없다. 그것이 쌓이고 쌓여 나의 부모님과 사회에 대한 불만은 점차 증폭되었다. 그리고 스스로 정을 떼기 위해 노력을 했다.
성인이 되고 결혼을 준비하던 어느 날, 엄마가 내게 내미신 통장으로 싸움이 시작되었다. 나는 받을 수 없다는 것이고 엄마는 왜 받을 수가 없는지 도저히 이해를 못하겠다고 했다. 나는 이제껏 키워준 것만으로도 충분하고 더 이상 부모님께 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나는 그 돈을 내가 왜 받아야 하는지 납득이 안되었다. 내가 사회생활을 하고 모은 돈으로 충분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부모님의 도움을 받기는 싫었다. 내 기준에 그것은 남의 돈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솔직히는 더 이상 엮이고 싶지 않았다(이 부분은 너무나 복합적인 사건과 감정으로 얽혀있다). 엄마는 마치 이렇게 하려고 평생을 열심히 산 사람인 듯 보였고 그것을 내가 거절하자 너무 크게 화를 내셨다. 그리고 나는 더 화가 났다. 왜 내가 원하지도 않는 돈을 받고 고맙다고 말해야 하나.
내가 원하던 것은 돈이 아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와 손길 그리고 함께 오래 보내는 시간이다. 당연히 머리로 알고는 있다. 부모님의 나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크신지는. 하지만 난 자라는 내내 애정결핍에 시달렸고 의도적으로 부모님으로부터 마음과 몸을 멀어지게 했다. 일종의 보복성 행태이기도 하다. 결국 성인이 되고 서먹해진 관계는 한 동안 회복되지 않았고 나의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야 조금씩 다시 가까워지기 시작했지만 지금도 사이좋은 여느 집 엄마와 딸 같은 관계로 지낼 수는 없다.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하는 부모의 사랑..." 이라고들 한다. 난 부모가 아이에게 왜 말로 사랑을 다 표현할 수 없을까라고 한참 생각했다. 아이는 어른이 아니라서 아이의 언어로 표현해주지 않으면 알 수가 없다. 최선을 다해 온 몸으로 "엄마 사랑해"라고 말하는 아이에게 적절한 부모의 반응이 없으면 아이는 이내 돌아오지 않는 사랑이라고 느끼게 되고 애정결핍에 시달리게 된다. 어렸을 적의 나처럼. 수많은 오해가 쌓인 뒤 후회는 너무 늦다. 어른이 되어서도 회복하기가 힘들다. 난 그래서 할 수 있는 한 나의 최선을 다해 시간과 노력을 들여 아이의 언어로 말해준다. 사랑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