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21.21
대학교 1학년 때 교양과목으로 탁구 수업을 들었다.
수강생 대부분이 남학생이었고 그중에는 군대에서 탁구로 인기가 좋았던 사람, 운동신경이 뛰어난 체대생, 원래 취미로 탁구를 쳐봤던 실력자도 있었다.
내 친구는 그 수업에서 상위권에 들 정도로 실력이 좋았고 탁구채를 처음 잡아보는 나와 틈틈이 연습 아닌 연습을 같이 했다.
나의 공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우스꽝스러운 랠리를 한동안 이어나갔지만 나와 탁구공이 어느덧 익숙해질 때까지 친구가 코칭을 해준 덕분에 본전도 못 찾을 뻔했던 과목에서 기본 이상의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
어느 정도 실력이 오르려면 여느 스포츠와 마찬가지로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야 하겠지만, 탁구는 처음 배웠을 때 입문해볼 만하다 라는 느낌과 연습하면 되겠는데?라는 생각이 들게 해 준 덕분에 나 같은 입문자도 재미를 붙일 수 있었던 것 같다.
수업 덕분에 처음으로 탁구 연습장이란 곳을 갔었는데 두 부부가 복식으로 공을 주고받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파트너도 바꿔가며 번갈아 치다 보면 저절로 친밀감이 형성되고 서로 응원하는 모습은 보는 사람마저도 스트레스가 풀리게 했다.
그리고 탁구는 다른 일반적인 운동경기와는 달리 넓은 공간이 필요치 않다. 방 하나의 공간 정도에 탁구대만 있으면 부담 없이, 날씨에 구애받지 않고 즐길 수 있는 것도 또 하나의 장점이다.
앞서 말한 탁구 실력자 친구가 며칠 전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유튜브 영상을 하나 공유했다.
'실리콘밸리는 왜 탁구를 사랑할까요? 테크 기업들이 탁구대를 사는 이유'라는 영상이었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젊은 기업들은 탁구를 통해 사내 복지를 실천하고 있다. 그리고 실리콘밸리 회사가 미래에 대해 낙관적이지 않을 때 탁구대의 판매량에도 영향을 미친다라고 영상은 말한다.
코로나 19로 인한 재택근무가 연장되면서 탁구대의 필요성은 없어지고 탁구가 허울뿐인 복지라는 반론이 제기되면서 기업들의 탁구 사랑은 주춤하고 있지만 나의 의견은 다르다.
탁구는 복지 이전에 업무 생산성에 영향을 미친다. 상사와의 소통을 원활하게 해 주고 직원들에게 휴식뿐만 아니라 스포츠만이 내뿜는 에너지를 제공해줌으로써 활력 있는 사내 분위기를 만들 것이다.
점심시간과 쉬는 시간에 치는 탁구뿐만 아니라 그 외 단합할 수 있는 영향력을 가진 사내 스포츠나 게임은 어떤 형태가 되었든 직원들에게 긍정적인 분위기를 유도할 수 있다.
이는 실리콘밸리의 테크 기업이나 스타트업, 그리고 디자인 회사처럼 주로 혁신을 위한 창의력이 요구되는 회사들에게 적용되는 말일 수도 있다.
금융업이나 로펌처럼 흐름을 정확하게 캐치하고 면밀히 비교 분석해야 하는 업계에서는 업무에 오히려 방해가 되거나 탁구대가 회사 내에 있어도 평범한 테이블로 전락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매일 밤 늦은 시간까지 자신과의 성과와 싸우거나 팀원들과 수시로 경쟁하는 분위기라면 탁구대는 있으나 마나 한 물건일 것이다.
탁구대라는 요소는 우리에게 회사의 가치와 수평적인 구조를 대변하고 직원들을 경직된 분위기에서 헤어 나올 수 있게 해주는 매개체 역할을 하지만,
회사라는 장소는 레저 공간이 아니며 끊임없이 성과와 생산성을 도출해야 하는 곳이기 때문에 탁구대는 또한 회사 입장에서 직원들에게 대한 기대와 믿음을 보여주는 매개체라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