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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ttomato Feb 04. 2021

뉴욕의 제설

02.03.21

눈이 내리는 동안은 오감이 행복하다. 한참 즐겁고 난 뒤, 보기 안 좋은 모습으로 변해버린 눈을 우리는 싫어한다. 사람이 다니는 길이나 차가 밟고 다니는 길의 눈은 그렇게 변한다. 미리 한쪽에 쌓아 올린 눈은 서서히 녹아내리고 예쁜 모습으로 우리 곁에 오래 머물다 간다. 그 눈으로 오리 눈사람을 만든다면 더 행복해질 텐데.


미국 북동부 지역은 겨울철에 눈이 많이 온다. 폭설이 내린다는 기상예보가 들려오면 거리 곳곳마다 대기하고 있는 제설차를 쉽게 볼 수 있다. 대부분의 지역이 차가 없으면 안 되는 나라인데 만약 눈길에 교통대란이 일어나면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될 것이다. 제설차가 염화칼슘을 뿌리며 불도저로 눈을 순식간에 치우는데 몇 시간 뒤에 보면 도로 상태가 정말 깔끔해져 있다.


제설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도 남다르다. 하우스에 사는 집주인들은 직접 삽을 들고 집 앞을 치우며, 건물 관리인도 제일 먼저 소화전이나 emergency route를 치운다. 더 놀라웠던 건, 제설작업을 잘못해 도시가 마비된 적을 지적하며 다음 해 선거에서 시장을 바꾼 일도 있었다고 한다.


동아일보 기사

자유가 강조되는 나라에서 이렇게 사람들이 눈에 민감하게 대처하는 이유는 제도의 뒷받침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뉴욕시 제설법엔 눈이 멈춘 시간 기준 4시간 안에 눈을 치워야 하고 만약 저녁에 눈이 그쳤다면 14시간 안에 치워야 한다고 나온다. 신속한 제설작업을 하지 않으면 과태료가 부과되고, 그 보다도 더 무서운 건 제설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가 지나가던 행인이 넘어져 심하게 다치기라도 하면 엄청난 손해배상을 각오해야 한다.


그래서 눈이 좀만 많이 내린다 싶으면 학교 수업은 물론이고 출근도 취소하며 개인의 안전에 각별히 신경을 쓴다. 전날 저녁이나 심지어 그 당일 새벽에 이메일이나 전화로 통보하는 곳도 있다. 눈이 온다고 회사를 오지 말라니? 미국에 온 지 얼마 안 되어 이 말을 들었을 땐 너무 신기할 수밖에 없었다. 하루 노동 가치가 높은 미국에서 전체적인 합의 하에 개개인의 안전부터 챙기는 모습이 놀라웠다.


눈이 많이 오면 모두가 하나 되어 사고를 예방하는 문화가 많은 곳에 퍼졌으면 좋겠다. 눈과 함께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과 배려가 곳곳에 내려앉는 세상이 되기를.

폭설이 휩쓸고 지나간 밤 거리는 이미 깨끗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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