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별 다람쥐 소식 #13
초록 식물로 뒤덮인 외벽을 사용한, 옥상에 정원이나 태양광 전지가 있는, 친환경 페인트나 친환경 자재를 사용한 건물… 친환경 건축, 혹은 녹색 건축에서 연상되는 이미지는 보통 이러합니다. 건물의 사용자인 우리와 가장 가까이에 있는 친환경 요소들이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건축은 우리가 경험하는 “건물” 이외에도 훨씬 더 많은 요소들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마치 나무 한 그루가 씨앗에서 시작하여 수분과 햇볕을 양분 삼아 커가고 동물들에게 살 곳과 먹이를, 사람들에게 그늘을 제공하다가 죽어서는 토양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말입니다. 물론, 나무와 건축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반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무가 에너지를 생산한다면 건물은 에너지를 소비하고 (지구 상에서 사용되는 에너지 총량의 40%가 건물에서 소비됩니다), 나무가 산소를 공급한다면 건물은 온실가스를 배출하니까요 (건물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는 전체 배출량의 1/3을 차지합니다). 앞서 언급한 나무의 영향처럼 건물이 생애주기 동안 끼치는 나쁜 영향력과 이를 개선시킬 수 있는 방향에 대해 나누어 보려고 합니다.
아마 환경에 득이 되는 건축 이란 존재하지 않을 겁니다. 건물을 짓는다는 행위 자체가 필연적으로 건물이 위치하는 자리의 자연을 훼손하는 일이니까요. 그나마 장소를 선택할 때 자연이 보전되어 있는 지역 (Greenfield) 보다는 이미 개발되어 있거나 오염되어 있는 곳 (Brownfield)을 택하는 편이 낫겠지요. 좋은 예로 런던 올림픽을 위해 산업화로 오염되었던 런던 동부지역을 선정하고 토양 세척을 포함한 재생과정을 거친 후 경기장 주변을 공원화 한 사례가 있습니다.
장소를 선정하고 나면 건축 설계가 진행되는데, 이때 친환경 컨설턴트는 어떤 모양의 건물이 여름에는 햇빛을 차단하고 겨울에는 태양열을 흡수해서 냉난방에 소비되는 에너지를 줄일 수 있는지, 자연채광을 건물에 깊숙이 유입시키는 디자인으로 조명에 의한 전기 소비량을 줄일 수 있는지 등을 3D 모델링과 시뮬레이션을 통해 알아봅니다. 건물이 사용되는 기간 동안의 에너지 소비량을 설계 단계에서 예측하여 개선하는 것이지요.
건물을 짓기 시작하면 철골이나 콘크리트, 마감재 등의 건축 자재들이 각처에서 모여듭니다. 이 자재들의 발자국 (Footprint)을 따라가다 보면, 원산지에서 재료를 채굴하는 에너지, 자재를 수송하는 데 드는 연료, 공장에서 재료를 가공하는 데 드는 에너지와 배출되는 이산화탄소 등 각 단계마다 자연에 끼치는 영향이 생각보다 많음을 알게 됩니다. 따라서 건물과 가까운 곳에서 채굴, 가공, 운반되는 자재를 사용하고, 원료가 건축자재로 가공되기까지의 공정에 에너지를 덜 소모하는 제품을 선택해야 하겠지요. 또한, 건축 재료들이 건물의 수명이 다했을 때 재사용이 가능한가를 보는 것도 중요합니다. 만약 건물에 쓰이는 자재들이 건물이 수명을 다했을 때 모두 폐기된다면, 모든 건물은 (슬프게도) 다 잠재적인 쓰레기인 셈이기 때문입니다.
건물이 지어지면 건물 사용자인 우리는 건축이 만든 실내 환경을 경험하게 됩니다. 실내가 너무 덥거나 추웠던 적이나, 창문 옆 책상에 앉았을 때 눈이 부셔서 모니터가 보이지 않은 적, 혹은 새 건물에 들어갔을 때 페인트 냄새에 머리가 지끈지끈 아픈 적이 있지 않나요? 친환경 건축에는 자연환경뿐 아니라 실내 환경을 디자인하는 일도 포함됩니다. 특히 요즘 들어 실내 공기 질을 개선하고, 열/빛 환경을 적절하게 유지하도록 설계하여 사용자의 건강과 쾌적을 보장하는 것이 더욱 강조되고 있는 추세입니다.
마트에서 식료품을 살 때 뒷면의 원료, 생산지, 영양에 대한 정보를 확인합니다. 내 몸을 생각해서이지요. 우리가 생활하는 건물도 마찬가지로, 에너지를 얼마나 소비하는지, 건축 자재들이 어디서 왔는지, 몸에 해로운 휘발성 유기화합물을 방출하진 않는지에 대해 알려주는 레이블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미국의 LEED, 영국의 BREEAM, 한국의 녹색건축 인증과 같은 친환경 건물 인증 시스템들은 건물의 친환경 요소들을 종합적으로 평가하고 점수를 매기고자 합니다. 그래서 화학조미료가 포함된 식료품들이 시장에서 선택받지 못하고 사라지듯이, 환경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건물들이 시장에서 도태되도록 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결국, 그 시장의 트렌드를 형성하는 것은 우리 소비자들입니다. 내가 살 집, 내가 일할 공간이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생각해 보는 것이 그 첫걸음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신찬양
친환경 건축 컨설턴트
시스카 헤네시 그룹, 뉴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