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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명다양성재단 Jul 19. 2016

그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저듸, 곰새기 특별편


 ‘잘 지내요?’라는 질문에 어떻게 대답하시나요? 어떻게 지내야 ‘잘’ 지내는 걸까요. 큰 병 없이 건강에 문제없고, 끼니 거르니 않고, 내 한 몸 뉘일 공간이 있고, 함께 지내는 가족이 있고, 종종 만나서 수다 떠는 친구들이 있으며, 적당히 취미 생활을 즐길 수 있을 만한 벌이가 있다면 그럭저럭 잘 지낸다고 말해도 괜찮지 않을까요? 

 

 제가 제주도에서 지내는 동안 가장 많이 받은 질문입니다. 물론 질문의 대상은 제가 아니라 돌고래들입니다. 참 간단한 질문인데, 대답하기는 그리 쉽지 않습니다. 길게 얘기하기는 너무 평범한 일들만 잔뜩 이라서요. 고민하다 결국 간단하게 ‘네’라고 대답하면 다들 무언가 아쉬워하는 기색을 보입니다. 좀 더 그럴듯한 이야기를 기대하시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럼 이렇게 대답합니다. ‘돌고래들은 저보다 훨씬 좋은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아요.’ 라고요. 좀 더 구체적으로 요약하자면 이렇게 얘기할 수 있을 겁니다. ‘규칙적으로 숨을 잘 쉬고요(건강하고), 매일 물고기를 잘 사냥하고요(끼니 걱정 없고), 제주도 바다를 쉼 없이 계속 돌아다닙니다(자유롭습니다)’. 근데 이 말도 질문자가 원하던 답은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어떤 특별한 이벤트가 발생해야만 잘 지내는 것이 아니듯, 돌고래도 마찬가지입니다. 특별한 사건보다는 매일매일 반복되는 일상들을 문제없이 영유하는 것이야말로 ‘잘’ 지내는 것의 기본이 됩니다. 잘 지내면 잘 지낼수록 사람들에게 얘기할만한 눈에 띄는 에피소드를 찾기는 어려워집니다.


 이미 우리는 살면서 큰 사건을 겪은 몇 마리의 돌고래들을 알고 있습니다. 이제는 꽤 유명해진 방류 돌고래―제돌이, 춘삼이, 삼팔이, 태산이, 복순이―와 2014년 10월 죽은 돌고래 주변을 며칠 동안 맴돌던 안타까운 이야기의 주인공인 시월이 말입니다. 오늘은 이 녀석들의 소식을 전해드릴까 합니다.



새로 생긴 가족 

삼팔이와 새끼.

 저희는 지난 3월부터 제주에서 올해의 남방큰돌고래 조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던 중 3월 28일 찍은 사진들에서 무언가 눈에 띄는 것이 보입니다. 보시는 대로 삼팔이 옆에 작은 새끼 한 마리가 함께 있습니다. 놀랍기는 했지만 당시에는 그저 다른 돌고래의 새끼가 삼팔이의 곁에 잠시 다가온 것이겠거니 여겼습니다. 돌고래 새끼는 주로 엄마 옆에 붙어 다니지만 지금까지 관찰한 바, 어린 새끼가 엄마와 떨어져 무리 내의 다른 개체들에게 기웃거리는 경우도 여러 번 보아왔거든요. 재미있기는 했지만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었습니다. 사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기대감이 커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돌고래 무리를 발견할 때마다 평소의 2배 이상의 사진을 찍고 매일 밤 자정이 넘어서까지 하루 5천여 장이 넘는 사진들을 눈이 벌게지도록 들여다보며 삼팔이를 찾았습니다.

  

 3월 28일 이후로 지금까지 삼팔이는 발견될 때마다 어김없이 새끼와 반복적으로 어미-새끼 유영자세(mother-calf position)로 다니고 있었습니다. 사진 식별(photo-identification)을 통해서 삼팔이와 다니는 새끼가 동일 개체인 것도 확인했습니다. 최종적으로 삼팔이가 새끼를 낳은 것이라 결론을 내렸습니다. 2015년 11월 관찰에서 삼팔이는 혼자 다니고 있었다는 점, 새끼의 크기 등으로 미루어 보아 새끼는 12월 초-1월 사이에 태어났을 확률이 높은 것으로 추정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한 가지 더 기쁜 소식을 찾아냈습니다. 시월이가 새로운 새끼와 함께하고 있었습니다.  

시월이와 새끼.

 언론에는 삼팔이 얘기만 보도되었지만 저희에게는 그 이상으로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돌고래가 과거에 있었던 슬픈 사건을 어떤 방식으로, 얼마나 오랫동안 기억하고 있을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2014년 당시, 마치 비명을 지르듯 물 밖에까지 선명하게 들리는 휘슬(whistle)음을 내며 사체를 옮기는 보트를 따라오던 모습과는 달리 엄마 옆에 착 달라붙어 발랄하게 물 위로 튀어 오르는 새끼와 함께 다니는 모습이 더없이 좋아 보였습니다. 

이전 시월이 이야기: https://brunch.co.kr/@diversityinlife/2



짝짓기 무리 속의 제돌이

짝짓기 무리 속의 제돌이.

 제돌이는 작년부터 짝짓기 그룹에서 종종 관찰됩니다. 수컷 돌고래들은 짝짓기를 하기 위해 몇 마리가 짝을 이루어 움직입니다. 한 마리가 짝짓기를 하는 동안 다른 수컷들은 암컷을 몰아 그날의 주인공인 수컷이 짝짓기를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돕습니다. 이 무리는 서로 뒤통수를 치지 않는 한 몇 년 정도 안정적으로 유지되기도 합니다. 제돌이는 아직 짝짓기를 직접적으로 시도하는 것이 관찰되지는 않았습니다만, 동일한 짝짓기 무리의 개체들과 지속적으로 함께 관찰된 만큼 제돌이의 새끼도 바다를 누비고 다닐 날이 머지않은 것 같습니다. 물론, 새끼가 아빠와 다니는 일은 없으니 이를 확인하기는 어렵겠지만요. 



독자적 사회생활

무리와 함께 유영 중인 복순이(오른쪽 첫 번째).
유영 중인 태산이.

 수족관에서 비정상적일 만큼 서로에게 의존적이던 복순이와 태산이는 이제 독립적으로 각자의 사회적 관계를 만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같은 무리에서 발견되는 일은 종종 있지만 수족관에서처럼 둘이서만 붙어 다니는 모습은 보기 어렵습니다. 무리 안에서도 조금 떨어져 서로 다른 야생 개체들과 다니는 경우가 많고, 종종 다른 돌고래와 가슴지느러미를 붙이고 함께 유영하는 모습이 발견되기도 합니다. Flipper rubbing라고 불리는 이러한 행동은 서로 친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개체들 간에 나타나는 행동입니다. 야생에서만 살던 녀석들과 비교해서 밀리지 않을 만큼 탄탄한 근육도 선명합니다. 신나게 바다를 달리는 녀석들은 몇 년 전 수족관 안에서 본 무기력한 돌고래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멋진 야생 돌고래입니다. 


무리와 함께 유영 중인 춘삼이(오른쪽 첫 번째)와 시월이(왼쪽 첫 번째의 어미와 새끼).

 춘삼이는 주로 작은 새끼를 데리고 있는 암컷 무리와 함께 관찰됩니다. 넙치와 같은 물고기나 해초를 수면 위로 집어던지며 노는 모습도 종종 보입니다. 언젠가 춘삼이 역시 삼팔이처럼 새끼와 함께 나타날 날이 있을 거라 믿습니다. 


 대부분의 제주 남방큰돌고래들은 잘 지내는 것 같습니다. 일 년에 몇 번쯤 정치망에 돌고래가 들어갔다는 제보를 받기도 하고 죽은 돌고래가 해변으로 밀려오기도 합니다만, 정치망에 들어간 돌고래들은 대부분 당일에 바다로 돌아가고 죽은 돌고래에게 인위적인 위협이 가해진 흔적은 보이지 않습니다. 

 가끔 방류된 돌고래들이 죽지 않고 잘 지내고 있는걸 알았는데 굳이 큰돈 들여가며 연구를 해야 하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삼팔이나 시월이가 새끼를 낳았는지 확인할 수 있었던 것도, 방류된 돌고래들이 무사히 잘 지내고 있는지 알 수 있는 것도 지속적이고 밀도 있는 연구가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잘 지내고 있는 것을 알았으니 이들의 사회를 들여다보는 것을 멈춘다면 우리의 관심은 표면적인 부분에서 머물게 될 뿐입니다. 야생의 돌고래가 들려주는 멋지고, 즐겁고, 슬픈 이야기들을 듣지 못하게 되겠지요. 지구온난화, 환경오염, 인위적 개발과 같은 온갖 변화들에서 이들이 어떻게 영향 받고 대처하는지도 알 수 없을 겁니다. 


 제 바람은 모쪼록 제가 가능한 오랫동안 이 녀석들을 지켜보는 것, 삼팔이와 춘삼이와 복순이와 시월이의 새끼들이 또 새끼를 낳고 제주 바다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관찰하는 것입니다. 지속적인 관심과 투자, 더 많은 연구자들이 함께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추어진다면 이 녀석들은 물론,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다른 고래와 해양생물들과도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나갈 수 있겠지요. 



사진∙글 | 장수진

<사진 저작권자ⓒ장수진,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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