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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명다양성재단 Jul 11. 2018

동물로 바라본 무대

생명다양성만큼 다양한 생각들 #22

사람은 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 동물이다. 그렇다고들 믿는다. 


 어떤 문화공간에서 동물 관련 강연을 하는데 강연하기 전에 주의를 환기하기 위한 도입부 공연을 부탁하였다. 강연 내용과 관련해서 동물을 소재로 1 인극을 해달라는 요지였다. 평소 1 인극에 관심이 많기도 하고, 동물이 소재라서 괜찮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작업에 들어갔다. 메시지가 뚜렷한 이야기는 선호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의뢰를 받고 만든 것이기에 나름 이 연극의 목표가 있었다. ‘동물’이라는 타인을 이해 해보는 것이다. 동물, 환경 보호라는 깃발을 내세우기 전에 누구나 가장 먼저 느껴봐야 할 지점이 이것으로 생각하였다. 동물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


 실제로 연기할 대상을 분석하거나, 연습해 볼 때 신기한 점은 그 대상에 관해 생각보다 더, 예상보다 더 파고들어 가게 된다는 것이다. 나는 어릴 적부터 동물을 좋아하고, 동물의 행동을 흉내 내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었다. 그래서 어찌 보면 동물의 입장에서 내가 표현한다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일 것으로 판단하여 이 작업을 시작하였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이 작업은 동물을 단순히 희화화해서 모사하는 것(어릴 적 가족들 앞에서 보였던 장기 자랑과 같은)으로 그쳐서는 안 되고, 지금 동물들이 겪는 고통을 나의 고통처럼 느껴야 한다. 


 사실상 이 부분에서는 나는 아마 실패했을 것이다. 나름의 작업을 통해 관객들 앞에 선보였지만, 수많은 동물이 느꼈던 고통과 부조리함을 표현하고 대신함에서는 아주 얄팍한 시도였다고 생각하였다. 그렇지만 한 가지 발견한 점은 있었다. 동물들의 입장에서 느낄 수 있는 어떠한 부조리함이란 것이 결국에 인간사회에서도 똑같이 투영된다는 점이다. 아주 간단하게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강자와 약자의 관계로 여긴다면, 이것은 강자가 힘을 가졌다는 이유로 약자의 모든 것을 강제 착취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두 번째 작업이었던 ‘우리 회사’가 좋은 예였다. 그 공연의 주제는 공장식 축산에 대한 문제점이었다. 그 문제의 화두는 내가 생각하기에 ‘시스템’이었다. 한정된 공간 안에 더 많은 개체가 있을수록 더 이득을 보는 하나의 시스템. 굉장히 익숙한 상황이 아닌가. 바로 주변의 많은 친구들이 다니는 회사의 구조와 다를 것이 없었다. 



연극 ‘우리 회사’ 중 

임원: 안녕하세요 우리 회사에 취업하게 되신 것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우리 회사가 바라는 것은 딱 한 가지입니다. 바로 당신이란 인재 그 자체입니다. 당신은 아주 아주 아주 별 볼 일 없는, 웬만하면 다 통과하는 면접을 거치고 입사하셨습니다. 이제 당당히 우리 회사에서 맡은 바 임무를 다하시면 됩니다. 당신이 할 일은 여기서 아무런 걱정 없이 지내시는 겁니다. 우리는 당신에게 숙식을 제공합니다. 당신이 건강을 유지만 한다면 저희 임원진들은 모든 것을 보장해 드립니다. 자 궁금한 점 있으시면 말씀해주세요
돼지: 제가 여기서 무슨 일을 하면 되나요?
임원: 간단합니다. 사무실에서 계속 지내시면 됩니다
돼지: 어떤 사무를 하면 되나요?
임원: 간단합니다. 저희가 제공하는 음식을 거리낌 없이 섭취만 하시면 됩니다.

 

 한평생, 한 회사에 메어 자신의 모든 청춘과 에너지를 다 갖다 바치고, 쓸모가 없으면 도태해져 버리는 하나의 거대한 시스템. 나는 이 상황을 빗대어 돼지가 ‘우리 회사’에 입사하면서 벌어지는 온갖 부조리함과 고통, 그리고 종래에는 회사 사정상 구조조정을 들어가는 것으로써 구제역으로 죽어간 돼지의 일생을 보여주었다. 


 세 번째 작업도 마찬가지였다. 넘쳐나는 플라스틱으로 점점 생을 잃어가는 바다에서 모든 것을 목격하며 점점 소외되어가는 거북이 가족을 주인공으로 삼았다. 이것도 지금 지구상에 어딘가, 한반도에서 어딘가에서 힘없는 약자로서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다.



연극 ‘거북이 가족’ 중

거북이 아빠: 다른 동물들은 모르겠는데 거북이들은 진짜 말할 자격 있어요. 무슨 말이냐 하면 ‘말세다 말세' ‘옛날엔 이렇지 않았는데’ 이런 꼰대 같은 말. 우리는 오래 살 거든, 다른 동물들이 여러 세대 거치는 것을 눈으로 봐왔단 말이야. 옆 동네 해마 가족은 내가 그 가족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랑 동창이야. 그런데 말이지 요즘 이 동네는 영 좋지가 않어.. 누가 살고 싶어 이런데. 이상한 게 너무 떠다녀. 옛날에는 가끔 보여서 그냥 재미로 수집하는 애도 있었지만 요샌 그러면 바보야 바보. 아주 널렸거든.


 타인을 이해함에 있어서 가장 좋은 방법은 타인이 처해있는 상황에 나를 투영시켜 보는 것이다. 다른 종이고 말도 통하지 않지만, 동물은 우리가 여태껏 이해하는 것을 외면해왔던 타인 중의 일부일 뿐일지도 모른다.





김자한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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