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과 공황으로 많이 힘들었습니다.
우울한 느낌은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겠지 라는 생각이라도 가능했지,
MRI 이후 생긴 좁은 공간에 대한 공포는 평생 사라질 것 같지 않습니다.
문제는 어떤 상황에서 내가 답답함을 느끼는지 저도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좁은 엘리베이터에 사람이 많거나, 지하철에 사람이 많다.
안 타고 피하면 그만입니다.
하지만 넓은 백화점 속에서도 실내라는 것과 내가 오래 있었고 인식해 버리면
갑자기 숨을 못 쉬겠고 미칠 것 같은 느낌이 오기도 하고.
멀쩡하게 숨을 쉬다가 호흡이 잠깐 꼬였는데
어? 숨이 모자라네 생각에 미칠 것 같기도 하고.
스스로 컨트롤할 수 없는 상황을 자주 겪었습니다.
돈은 벌어야겠고 일은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일자리를 구하려고 해도 내가 여기서 1년을 일해야 한다.
주에 5일을 일해야 한다,라고 생각하면 답답하고 숨 막히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일용직으로 일을 했더니 적어도 마음은 편하더군요.
언제든지 그만둘 수 있다는 사실이.
정작 일용직으론 마음이 편해서 주에 7일씩 쉬지 않고 일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정말 밑바닥에 떨어졌단 생각을 했습니다.
치킨공장에서 필리핀 아주머니들과 우즈베키스탄 청년과 함께 일하는데,
나만 한국인인 것 같고, 내가 외국인노동자와 같은 취급을 당하는구나 생각했습니다.
얼어있는 브라질 계육을 옮기는 작업인데 손가락이 얼어서 부서질 것 같았습니다.
관리자에게 고무장갑 안에 쓸 장갑이라도 없냐고 물으러 갔더니
코를 막으며 나가세요!!! 소리치고 멀리서 장갑을 던져주는데.
이 사람들에게 나는 같은 한국인으로 보이지 않구나 생각했습니다.
결국 마지막으로 찾은 풀타임 주방일 역시 좋은 환경은커녕,
정신파탄자들이 소리치고 욕하는 환경에서 마지막 노동을 했습니다.
그와 동시에 느꼈던 것,
전 2020년 8월 12일 처음으로 현대차 우선주를 100주 매수합니다.
당시 주가는 88100원으로 그 뒤로 조금씩 매수를 이어갔습니다.
21년 4월 64만 원
21년 8월 35만 원
22년 4월 190만 원
22년 8월 47만 원
23년 4월 285만 원
23년 8월 130만 원
23년 11월 130만 원
23년 4월 꾸준히 매수한 현대차 우선주에서 280만 원이라는 의미 있는 배당금을 받습니다.
근데 8월에 돈이 또 들어와서 와 뭐지 신난다 했는데
11월에 또 돈이 들어오지 어 이상하다 란 생각을 합니다.
그때쯤 현대차는 앞으로 반기배당에서 분기배당으로 바뀔 것이며
23년 하반기가 시작이라 상반기 1번 하반기 2번 3번의 구조가 나왔고
24년부턴 꾸준히 연 4회 분기배당이 시작된다는 내용을 알게 되었습니다.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습니다.
로버트 기요사키의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를 몇십 번을 읽으며,
그렇게 찾아 헤매던 좋은 자산이 내가 이미 갖고 있었던 주식이라니.
앞으로 현대차 우선주를 의미 있는 수량만 모을 수 있으면
꿈에만 그리던, 내 인생에선 불가능이라 생각한 파이어족이 될 수 있겠다 생각했습니다.
그때 계산한 결과가 현대차 우선주 2000주.
월에 200만 원씩의 배당금이 들어오게 되는 구조가 완상 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부채와 지출의 합을 앞으로 2년간 극단적으로 줄인다면
앞으로 내 자산은 특히 27년을 기점으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그 이후로는 내 지출이 내 자산에서 나오는 수입을 넘어가는 일은 절대 없다.
확신했습니다.
결국 2020년부터 조금씩 모아 온 현대차 우선주로 저는 트라우마만 남을법한
두 번 다시 돌아가기 싫은 최악의 노동으로부터 벗어납니다.
그리고 책을 읽고 여행을 다니고 1년간의 긴 휴식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1년이 지난 지금.
이제 뭔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그렇게 브런치에 글도 써보고, 블로그도 만들어보며
돈을 위해 억지로 하는 일이 아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직업으로 도전을 하고 있습니다.
퇴사를 하고 1년이 지나서야 진정한 의미의 파이어족이 도달했단 생각이 듭니다.
파이어족은 놀기만 하는 것이 아닌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라는 말이
더욱 와닿는 지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