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학년 때 키가 130 정도 되던 나는 만 4살의 아들 키가 현재 107 정도 되는 셈이니 얼마나 작았는지 확인해 본다. 그 키를 기억하는 건 졸업식 때 받은 한 장짜리 생기부에 4학년 때 키가 130이란 숫자를 보고 친구들에게 기분 나쁘지 않게 놀림받았던 게 기억난다. 우리 집 사람들은 키가 다 큰 편이고, 어릴 때부터 입이 짧던 이유인지 모르나 늘 나이에 비해 키가 작았다. 나 스스로는 가족 구성원 중에 작다라고 인식하지 못하였고 했다 하더라도 스스로를 작아서 불편하고 싫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나는 누가 그렇게 말하지 않으면 굳이 나 스스로를 타인과 비교하는 스타일의 아이가 아니었다. ‘키가 작아서 나중에 부모님을 미워할까 봐’라는 말을 들었다. 나는 키 주사 맞는 고통을 12개월 즈음 느낀 뒤 결과적으로는 다행스럽게도 한국 평균 여성이 키가 되었다. 162.7센티미터 반올림을 하면 163이다.
키 크기에 집착하게 된 것도 이 때문이었을까. 나는 키 큰 남자와 결혼하는 것을 매번 꿈꿨다. 키 작은 것이 뭐가 나쁜 것인지 기준이 없던 시기에 어른들의 기준 속에서 결핍이 되어버린 순간. 나는 왠지 모르게 키 큰 사람에 대한 동경이 시작되었는지 모른다.
딸의 남자친구
집에서는 남자를 만나는 것을 관리하며 항상 조심해야 한다며 절대적으로 남자친구에 대한 여부를 묻지 않았고 늘 조용히 비밀스럽게 만나야 했다. 이해는 하지만 이해가 되지 않았던 사건은 부모님 집으로 20대 후반에 코미디 프로그램을 보면서 주말 저녁 배를 잡고 웃고 있었는데, 옆 시선으로 뚫어져라 한심하게 바라보시던 아빠의 시선이었다. ‘남자 친구 없냐?’ 세상에, 아버지 입에서 ‘남자친구’ 라니. 절대로 남자를 사귀면 안 될 것 같이 이야기하시던 그 두 눈에서 ‘남자친구’라니. 그날부터 나는 계속되는 선자리와 소개팅에 나가게 되었던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이 정도면이라는 사고가 되지 않는 처지라 매번 나의 짝을 찾기가 어려웠다. 내가 궁금하면 상대방은 나를 궁금해하지 않는다거나였다면 차라리 좋았을 텐데. 내가 궁금한 상대방이 단 한 명도 없었다. 훌륭한 인품의 분들과 멋진 인상의 분들도 많았을 테지만 나는 왠지 그들과 내가 어울리지 않았고 까다로운 내가 싫었다. 이미 다 짝을 찾아갔고 나만 없구나. 10대 시절 유일하게 연락을 하고 있던 남자사람친구는 이런 나를 한심하게 바라봤고, 조건을 불러보라 했다. ‘키 크고 착한 남자. 뭐 그거면 되지 않나?’ 정말 키 크고 착한 남자를 내 앞에 데려다 놓았다. 약속 시간 20분을 훌쩍 넘기고 계단 위 2층 레스토랑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던 나에게 저벅저벅 걸어 올라오던, 끝이 보이지 않게 올라오던 187센티에 머리 작은 사람.
내 얼굴과 비슷한 표정의 그녀가 그때의 내 모습과 같다. 발그레한 얼굴은 대화가 통하는 상대를 마침내 만나서 이 사람과 일단은 결혼보다는 연애를 하겠다는 의지가 불타올랐다. 불타오른 마음은 숨길 수 없이 내 볼에 가득한 선홍색으로 물 들었다. 그때의 나를 보던 남자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내 머리 보다 두 곱절 키가 큰 그 사람과의 연애는 참 좋았다. 마음의 온도도 균형 있게 따듯했고, 추울 때는 옷을 덮어주기보단 같이 뛰자고 해주던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