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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켈리류 Jun 09. 2024

칼 블로흐<어부의 창문을 두드리는 어린 소녀>

나를 찾아오는 친구


나를 찾아 집으로 오는 친구는 없었다.


나는 늘 그 시기에 같이 있던 사람들과 친구를 하며 컸던 것 같다. 국내 해외 어딜 가나 친구를 사귈 수 있었지만 웬일인지 그곳을 벗어나게 되어버리면 연기처럼 사라지고 마는 것이 10대의 친구 상이었다. 현재 어른이 되어 유연하게 대처해 나가는 법을 터득하였다 하더라도 웬일인지 일반적인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과 다른 길을 걸어온 나는 나를 찾아와 주는 이들이 없는 거리의 곳으로 이곳저곳 다니게 된 것 같다.


인복이 많다고 생각하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인복이 없어서 나를 힘들게 하던 10대의 주문 같은 것이었고, 인복이 없었다고 생각해서 부르던 나의 주문은 나의 착각에서 비롯한 것이라 이제는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인복이 없었다면, 폐쇄적이던 나 어릴 적 한국 사회에서 학교를 과감히 뛰쳐나와 나에게 맞는 교육을 백방으로 알아보던 아버지와 어머니를 만날 수 없었을 것이고, 나에게 맞는 교육의 길에서 만난 사람들의 응원이 아니었다면 나는 내가 고수하며 걸어가던 이 길이 맞는지에 대한 의문을 항상 품고 갔으리라.


도서관에서 만난 사람들은 어린 학생이 학교 갈 시간에 나와 공부하던 모습을 어리둥절하게 보지 않았고, 지나고 보니 사서 선생님들께 궁금한 것들에 대해 질문을 늘어놓던 나였을 텐데 그들은 나에게 내가 주저할만한 질문들을 하지 않으셨다. 이 글을 적는데 갑자기 눈물이 나는 이유는 나는 그때 정말로 외로웠다. 10대의 여학생이 마음 나눌 친구 없이 책에 묻혀 친구를 그리워한다는 그 긴 세월을 내가 다시 날아가 어린 나와 친구가 돼 주고 싶다. 아이를 키우면서 만나는 책들 속에서 나는 가끔 주체 없이 눈물이 흐르는데 그럴 때마다 사진을 조금씩 찍어 주며 나를 위로해본다. 이사를 가서 같은 동네가 아닌데, 나의 집에 찾아오는 친구를 나는 그렇게 대학생이 되기까지 5-6년 즈음을 마음속으로 기다렸다.
 

던컨은 그 시절의 나 같고, 생쥐는 내가 원하던 친구다.



나를 찾아주는 친구들


성인이 되고 나를 필요로 하는 메시지에 이런저런 이유로 불참하기를 반복하게 되던 바쁜 20대의 생활에서 나는 사람의 결핍이 주는 무언가와 익숙해짐을 돌아본다. 지난날의 목표이자 행복의 척도였던 그것을 그리고 그토록 기다린 무언가와 조우했을 때 또 다른 목표가 생기는 인간의 끝없는 바람을 다시 느껴본다. 사람은 잃어 보아야 그 소중함을 알게 된다 하였던가. 그래서 늘 주위 가장 가까운 가족들에게 최선을 다하라 한다.
 


집으로 찾아오지 않다던 친구들은 이미 집에 있었음을


나를 찾아 주는 친구들은 가족 외의 사람들만 고집했던 나의 시각이 부족했음을 알게 된다. 내가 빙판길이라 생각하던 외로운 10대 시간의 나를 찾아주는 친구는 나의 엄마와 아빠였음을 나의 남동생과 나의 언니였음을.. 나의 강아지들과 나의 집이었음을 잊지 않고 이제라도 그들을 나의 친구들이라 정리해 보아야겠다. 아무도 없었다.라고 말하던 나의 엉켜버린 10대의 시절은 그 누군가가 항상 있어 주었다라고 귀결되는 행복함으로 미술에세이가 나에게 있어 얼마나 소중한 첫걸음이 되었는지를 감사하게 생각하며 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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