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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vine Kel Jun 13. 2024

김환기 <우주>,1971

어느 완벽주의자를 위한 우주의 편지


어느 완벽주의자를 위한 우주의 편지 _ 켈리류     


완벽한 상품은 가치가 높다.

값을 내고 상품을 받았을 때 완벽한 마감과 재질은 구매자가 그다음 상품을 사는 약속을 받아낸다.

사람 간의 완벽함이 존재한다면 우리 인간 스스로 상품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인간의 사랑, 우정, 희생의 형태와 본질은 완벽할 수 없다.

완벽할 수 없음을 받아들이면, 작은 행복들이 보인다.     


김환기의 「우주」를 작년 9월 호암미술관에서 만났다. 전날까지 화가를 조사하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완독하지 못하고 출발한 길. 모두 읽고 출발했더라면 하는 아쉬운 마음으로 가는 길의 10분을 허비했다. ‘괜찮아. 다 읽지 못한 나머지는 나를 믿고 관람해 보자.’라고 나를 다독이며 나머지 30분은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유유히 그렇게 운전해 갔다.

1층과 2층 관람의 2/3 부분에서 김환기의 「우주」를 만났다.

132억 낙찰가에 압도당해 이미 그림은 큰돈으로 보였다.

‘남편과 왔으면 좋았을걸.’ 하는 생각이 스쳤다.     


나의 남편은 나보다 더한 완벽주의자이다. 일터에서 인정받고 누구나 일을 맡기면 안심하는 그런 부류의 사람이라는 점이 가사를 꾸려나가는 부인으로서 감사하다. 이유 없이 화를 내는 법도 없으며, 아이에게도 참 다정한 아빠다. 잠이 쉽지 않은 신생아 시기는 잠을 제대로 잔 적이 없어 힘들다 보니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없던 때라, 육아를 잘하지 못하는 나 자신을 미워했다. 그런 예민했던 시기에 남편과 나의 육아관은 자주 마찰했으며, 서로를 존중할 줄도 이해하려 들지도 않았다.

심리적으로 지배하려 했던 사람은 아니었을 텐데, 싸울 때마다 그의 비수 같은 말들이 엄마로서 자격이 없는 사람으로 자신을 스스로 몰아가게 했다.

나의 유약한 부분을 쥐고 흔들어 승리를 거머쥐는 ‘적’으로만 보였다.     



우주에서 바라본 둘     


점을 찍어 그림을 완성하고 나니 우주다. 우주에서의 둘의 싸움은 점이었을까?

작고 큰 싸움이 계속된 육아 4년의 세월, 나와 남편의 차이를 자석처럼 당겨 붙여준 시간에는 나의 편지가 있었다. 

남자는 늘 짧게 이야기해 주어야 이해한다는 부모님의 말씀과는 다르게, 각자의 길을 생각하며 차분해진 나의 서너 번 장문의 편지는 그의 오랜 나쁜 습관에서 그를 벗어나게 했다. 

지금의 남편은 8년 전에 비하면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 그에게 장문의 편지들을 미리 전달했더라면, 우리는 그때 싸우지 않고 잘 지내왔을까. 




우리는 사람이니까 실수할 수 있어.

나는 그중에서 실수를 많이 하는 사람일지도 모르지만, 난 내 아이에게 실수를 인정하고 성장을 가르쳐줄 수 있는 엄마이며, 앞으로도 그럴 거야.     

귀하는 너무 완벽주의자 경향이 있어.

내가 제대로 사랑했고, 결혼 생활의 8년, 결혼 전 연애 기간 1년 반을 보았을 때 그런 면모가 많이 보여. 그것으로 인해서 과거나 앞으로 올 미래까지도 부모는 완벽해야 하고 늘 올바른 면모를 보여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려 보여.

나는 귀하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믿어주었으며, 기다려 주었거든.     


부모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야.

왜냐면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이지.

우리의 부모도 완벽한 분들이 아니야.

나의 부모님은 나에게 ‘실수할 수 있어. 시간이 걸리더라도 또다시 실수해도 인정하고 다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를 가르쳐 주셨어.     


부부싸움을 하지 않는 집이 있을까?

부부싸움 자체가 나쁠 수 있지. 늘 좋다는 이야기는 아니야. 하지만, 부부싸움은 어느 부부나 때론 할 수 있다고 생각해.

카페에 가서 우리 아이에게 나는 실수했다고 사과했어.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하는 엄마 밑에서 커가고 있으니, 아들은 멋진 어른으로 성장하거라 믿어.

원초적인 엄마로부터의 사랑과 믿음을 아이에게 심어주고, 엄마도 인간이기에, 실수할 수 있음을 알려주며 이해받고 용서받는 것이 부모라고 생각해.     


의견의 대립이 계속 일어나는 부부 사이에서 싸움이 두려워 회피하는 가정 속에서 아이가 바로 자랄 수 있을까?

싸움이 그저 나쁘다고만 바라보는 귀하의 시각이 다소 이해되지 않아.     

너의 회피에 마냥 슬퍼하고 울고만 있을 수 없는 나는, 이제 4년 차 엄마가 되었네.

귀하가 나의 남편이 되어주고, 그 8년의 세월 동안 다사다난했지만, 부디 나를 지겨워하지 않았길 바란다.     

인간은 누구나 실수를 해.

나는 우리 아들이 실수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아이로 키우고 싶어.

그렇다면 아이에게 ‘우주’인 우리가 실수하더라도 사과하고 서로 함께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완벽하게 어느 하나 결핍 없이 키운다는 건,

싸움이 시작되었지만 서로 회피하며 조용히 지낸다거나, 서로의 실수, 틈 하나 보여주지 않으며 행복한 집? 그게 가능하다고 보는가.     

결핍이 없을 수 없는 인간에게 너무 가혹한 것 아닐까.

귀하의 완벽주의자 성향이 아이에게 있어 결코 좋기만 한 결과가 되지 않음을.

이번 기회, 친애하는 귀하에게 알려주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내가 완벽하지 않은 것이 기정사실이라면, 귀하도 완벽할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해 보자.

완벽할 수 없으니 실수하고, 사과하는 것이며, 서로 화해하는 것이네.

겁에 질린 표정이 누그러지고 (물론 마음 생채기는 남을 수 있겠지만) 회복탄력성(resilience)의 힘을 길러두면, 아이가 인생길 어디선가 넘어졌을 때 ‘아. 우리 부모도 실수했고, 사과하여 다시 나아갔어.’라고 생각하기를 기도해.     


귀하의 완벽주의 성향은 회사에서 좋은 빛을 낼 거야.

하지만 아이를 양육하는 데 있어서 완벽한 부모가 되기 위해 완벽하지 않은 인간이 흉내를 내는 것은 독이 된다는 부분도, 조금은 살펴보길 바라.

귀하는 귀하가 나보다 더 나은 인간상이라 여길지 모르지만, 그것 또한 부인에 대한 경외심, 남성 우월감을 느끼고 있다는 부분을 몇 년의 결혼 생활을 통해 느꼈기에, 이 부분도 나의 글을 통해 인지하면 좋을 것 같아.     

귀하는 책을 누구보다 많이 읽는다 하니, 내 언어를 이용해 산문처럼 써서 전달해 본다.

나의 글이 너에게 긍정적으로 해석되길 바라. 싸우자는 글이 아니며, 나는 귀하를 만나 지금까지 열렬히 사랑해 왔고, 성심은 고운 사람이라 자부할 수 있어. 나는 진심, 귀하에게는 좋은 사람 쪽이었다.

집단으로부터 배척당한 10대. 그리고 학교를 벗어나 세상에 던져진 10대. 그걸 또 가능케 해준 시각이 넓은 부모님 밑에서 운 좋게 죽지 않고 살아남은 나를 사랑해 준 귀하가 힘든 부분이 많았을 것으로 생각해. 항상 고맙게 생각한다.     

나도 내 나름의 사랑을, 귀하의 부인이 되기 위해 감내한 세월을, 부족한 역량으로 사랑을 위해 달려간 나의 외로운 길을 알아주길.     


어떤 싸움에서건 나는 항상 미안하다 하지만 그것이 시시비비 가리지 않고, 나름 우리 관계를 위해 최선을 다한 것임을.

귀하가 먼저 토닥여 주고 안아줬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늘 남지만, 나의 열 달품은 아이가 있으니 포기하지 않고 나아갈 생각이야.

나와 함께, 계속 실수해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 걸어가는 모습을 아이에게 알려줄 수 있으면 한다.     

주말부부 이야기는 앞으로 하지 않을게. 귀하에게 엄청난 상처가 된 말 같아 미안해.

시시비비를 가리지 않고 사과해 볼 줄 아는 어른이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귀하가 조금 더 편해지기를.


귀하를 진심으로 위하고 사랑했던 아내가. (2023.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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