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
배 꽃
4월이면 배꽃을 보러 안성과 평택, 천안 배 농가로 가야겠다. 이대원의 <배꽃>을 바라보다 어느새 번아웃이 오던 시기가 매번 봄이라는 사실을 알고 미리 대책을 세워야겠다. 배꽃길 드라이브가 좋다고 해서 찾아본다. 안성 이화1길 배꽃길 드라이브다. 이화, 배나무 이, 꽃 화, 梨花. 도로 이름이 이미 ‘배꽃’이다. 국내 배 주산지 중 하나라는 안성에는 과수농가가 많다. 하얗게 피어나 흐드러지게 마음을 쏙 빼앗아 갈 것 같다. 배꽃 향기와 함께 멀리멀리 퍼져서 번아웃이 날아가기를.
나무에 우수수 팝콘같이 피어나 환상적인 벚꽃. 유명한 벚꽃길이 내가 사는 아파트 옆 냇가를 따라 있다. 그 길 끝에는 도서관이 있다. 집을 찾을 때 남편과 내가 보는 것이 도서관이 근처에 있는가였는데, 자연을 벗 삼아 있는 길을 따라가니 도서관 가는 길이 더 신난다. 벚꽃이 질 무렵 피어나는 배꽃을 보러 내년에는 안성으로 가야지. 마음이 벌써 이리도 설레는 걸 보니 마음공부를 하는 내가 지혜로워진 것 같아 좋다. 안성에서 평택으로 혹은 천안 성환읍까지 지방도를 따라 운전해 가면 계속 펼쳐지는 배꽃을 감상하기 좋다.
자연 그리고 학습, 자연학습
이대원의 <배꽃>을 또 가만히 바라본다.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 시절 처음 수채화를 배운 기억났다. 나무 그리기 좋아했다. 상을 받은 그림에는 어김없이 나무가 그려져 있었다. 나무 아래 불어오는 바람을 좋아했고, 나뭇잎 사이로 보이는 흔들거리는 햇볕을 사랑했다. 다섯 가족이 함께 약수터로 물을 길어 매주 갔다. 잔꾀가 많았던 나는 늘 무겁다며 페트병 두 개만 가방에 넣고 갔다고 한다. ‘덜덜덜’ 소리를 내며 큰 물통을 넣고 바퀴 카트를 끌던 어린 남동생을 봐도 누나다움을 보여줘야겠다는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그저 하고 싶은 사람이 하면 되는 것 아닐까. 경쟁심리도 없던 아이였다. 부모님의 칭찬에 목말라하지도 인정을 받고파 눈치를 살피던 아이도 아니었다. 중요한 건 가벼운 어깨와 산에서 나눠 먹는 김치에 식은 하얀 쌀밥. 얼마나 꿀맛이던지 아직도 그 맛이 기억난다.
매주 그렇게 물을 길으러 간 이유가 뭘까. 아이가 셋. 활동량을 위해, 개개인의 성취감을 위해서였을까. 그저 식수가 필요해서였을지도 모른다. 그 산자락에 있던 도서관이 나의 인생에 큰 변곡점이 돼주었다. 물을 긷던 약수터와 산길이 학교를 관두고 혼자였던 나의 산책로가 되어주었다. 자연과 벗 삼는 기회를 자주 가지는 것이 나의 육아 신조이다. 키즈카페나 놀이공원보다 캠핑과 바위에 앉아 도란도란 수다가 좋다. 자연을 가까이 해보니, 힘든 날 조용히 위로받더라. 세상이 친절해지더라. 내 아이도 자연으로부터 위로받기를.
Tree, 크리스마스트리
벌써 9월이다. 한해의 절반을 넘기고 곧 만연한 가을이 오면 내가 좋아하는 겨울이 온다. 왠지 모를 이 설렘은 집에 크리스마스트리를 장식하면서 시작하곤 했다. 이사를 온 지 3년, 트리를 몇 바퀴 돌려 장식한 전구만 떼어와 거실 벽에 장식했다. 트리가 없는 것이 너무 아쉽지만 육아하며 물품이 늘어나다 보니 최대한 비우는 것을 택해서다. 불이 반짝이는 트리 전구도 존재감이 크다. 5가지 종류로 불빛이 다르게 들어온다. 캐럴을 틀어두고 영어 노래가 울려 퍼지면 그렇게나 따듯한 느낌이다. 포근하다.
한해의 가을과 겨울은 더 빠르게 흘러가는 것 같다. 더위에 하루 세 번도 샤워하는 날들이 지나면, 따듯한 옷을 입고 느리게 걷는 가을 겨울이 온다. 넘어지면 안 되니까. 열심히 살다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는 한 해를 마무리하는 몇 개월의 시간. 켜켜이 쌓인 시간을 모두 모아 기억의 숲을 이루는 시간. 나는 늘 가을과 겨울을 기다리며 혹독한 봄과 절망의 여름을 보내는 느낌이다. 먼 훗날 이생을 떠나는 계절이 가을과 겨울의 어느 날이었으면 좋겠다. 캐럴이 흘러나오면서 천천히 걷는 사람들의 배웅을 받을 그 어떤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