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 가면, Mask
탈, 가면, Mask
호랑이와 양
재미있는 그림이다. 코이치로 타카기의 그림에는 바위 위에서 한발로 중심 잡는 호랑이의 머리를 한 넥타이 맨 반인반수가 있다. 그 옆으로 붉은 혀를 내밀고 두 손을 모아 합장하는 자세로 무릎 꿇고 있는 양 머리의 반인반수가 있다. 크림색 하늘에 하얀 구름이 있는 하늘 아래 다섯 봉우리의 산새들이 나란히 보인다. 발아래로 보이는 잡초들과 풀 사이로 보이는 흙길이 무얼 말하는 걸까.
호랑이의 모습을 한 사람들이 있다. 얼굴은 굵직한 선으로 시원한 이목구비에 목소리가 크고 강해 보인다. 그런 사람들을 마주할 때 사람들은 마음의 준비를 한다. 뭔가 모를 큰 것에 대한 대비랄까. 외형은 사람의 깊이를 가늠하기 어렵다고들 하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사람에 대한 경험이 있어 쉽사리 다가서기 어렵다.
나는 누군가에 머릿속에 호랑이의 모습을 하고 있는가, 양의 모습을 하고 있을까. 질문에 대한 답은 참으로 여러 가지였다. 10대 20대 30대 속에서의 나는 웬일인지 남의 시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한해 한해 다른 사고를 갖게 되는 것에 대한 신선함으로 요즘은 알게 모르게 먼 훗날에 대한 기대가 무르익는다.
호랑이 탈
나에게 호랑이 가면의 시절이 있었다. 호랑이 가면을 쓰고 국내를 벗어나 외국으로 나가 있었다. 작은 체구,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은 나라, 여성의 몸으로 호랑이 탈 쓰기를 자처했다. 한국에서는 부모님 말씀 잘 듣는 순한 양으로 살았다면, 외국에서는 나를 지킬 수 있도록 호랑이 가면을 착용했다. 매서운 눈과 잘 웃지 않는 강인함으로 사람들에게 쉽게 보이지 않도록 애썼다. 강한 여성. 강인한 한국 여자아이. 강단이 있는 아이. 나와 친구가 되어 시간이 흐른 뒤 사람들은 첫인상에 관한 이야기를 늘 그렇게 해주었다. 첫인상과 알고 본 내 모습이 달랐다는 것이다.
호랑이 가면의 편리성을 점점 알게 되었다. 부모님의 말씀을 늘 따르는 듯 살았지만, 내면에는 고집이 있었던 내가 부모님이 없는 나라에서 선택한 나의 모습은 과연 가면이었을까, 진정한 나였을까. 내가 선택한 나의 모습을 부정하고 싶던 날이 많았다. 어찌 다 좋고 다 나쁘리. 내가 선택한 것에 대한 책임은 그렇게 따라왔다.
양의 탈
양의 탈을 쓰고 산 시간도 있었다. 그런데 의외의 결과를 보여주었다. 마음은 더욱 약해지고 그 모습에 맞추려 행동하게 되었다. 강박이 생겼다고나 할까. 호랑이의 탈을 쓰고 살던 시간이 후회스러울 때마다 나는 양의 모습을 한 사람들에 대한 부러움이 생겼다. 온순하고 구김살 없어 보이며 결핍 같은 건 없을 것 같이 살아온 사람들. 그들이 양의 모습을 한 사람들이다.
그들과 같아지려 노력한 시간이 있었다. 결론은 그 시간도 호랑이 탈을 쓰려 노력했던 시간도 모두 해봐야 했던 시간이었다. 인생은 물과 같아서 어떤 특정한 틀에 가두면 잔잔해진다. 가두어 둔 물은 잔잔하고 풍파도 느낄 수 없어 안전해 보이나, 어느 날부터 이끼가 끼고 썩는다. 흘러가는 물이 인생이라면 가두어진 물은 감옥이다. 윗물이 다시 아랫물로 아랫물이 윗물로 오르며 내리고 흘러가며 섞이지 않으면 생(生)을 잃은 것이기에 더 이상 인생(人生)의 참된 의미가 아니다.
때론 호랑이의 탈을, 때때로 양의 모습을 하고 살아가기로 했다. 사람들을 대할 때 모습이 조금 다를 수밖에 없음을 인지하기로 했다. 무례하고 이기적인 사람들에게는 호랑이 탈을 쓰기로 했다. 쉽고 빠른 용서와 이해를 조금은 덜 하기로 했다. 마음을 약하게 만들던 양의 탈도 가끔은 꺼내두기로 했다. 약한 마음을 드러내는 날도 강한 소신을 표현하는 날도 지나고 보면 흐르는 강물처럼 내 인생이 만든 물길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