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바티스트 시메옹 샤르댕(1699~1779)
샤르댕의 정물화와 나의 캔들 사진의 동시성
1763년 <브리오슈>는 장 바티스트 시메옹 샤르댕의 작품이다. 대략 250년 전의 그의 그림에서 사진을 보는 것 같다. 정물화는 사진을 대신한다. 이리저리 움직이며 작품을 남기기 위해 구도를 잡았을 그가 보인다. 18세기 프랑스에서 그가 있던 시기는 루이 15세 재위 기간이었다. 이때 미술계는 로코코(Rococo) 화풍이 성행한다. 장식적이고 우아하며 화려한 양식의 미술이다. 귀족들의 드레스와 레이스 장식이 우아하게 흐르는 그림이 성행하던 시기에 그가 그린 것은 정물화였다. 그는 다른 사람들과 관계 맺기를 어려워해 움직이지 않는 정물화에 집중했던 것일까. 누구나 그런 시기가 있다는 것을 나는 안다. 그의 시대에서 위계의 가장 밑바닥에 있었던 정물화에 집중한 이유를 나의 경우에 빗대 글로 남기고자 한다. ‘좋아하면 쉽게 지치지 않는다.’ ‘When you love something, you don't easily get tired of it.’라는 말이 이 글의 주요 문장이 될 것이다. 영화의 예고편의 마지막 장면처럼 기억해 주기를 바라본다.
2018년 소이플라워 캔들 자격증. 언니의 권유로 함께 자격증반에 등록했다. 꽃도 모두 소이 왁스(Soy wax)로 만들었다. 소이(soy)는 ‘콩’으로 콩 추출물로 만든 왁스를 말한다. 인체에 해가 되는 파라핀왁스를 삼가고 자연 친화적인 양초를 만들 수 있다. 소이 왁스를 녹이고, 섞고, 식힌다. 베이킹 깍지로 꽃을 하나하나 만들고 굳힌다. 왁스를 녹이고 일정 온도가 되면 향료를 넣는다. 나는 향료가 강하게 들어가면 두통이 오는 예민한 코라서 정해져 있는 향료의 양의 2/3를 넣는다. 향료를 넣어 섞은 뒤 컨테이너에 붓는다. 컨테이너(container, 캔들을 담는 용기)에 아주 천천히 부어야 기포가 생기지 않고 이리저리 튀지 않는다. 마음이 바쁘면 늘 일을 그르친다는 것이 이 장면에서 나오는데, 빠르게 부으면 기포뿐만 아니라 표면이 울퉁불퉁해지니 아름다운 작품을 위해서 천천히 진행한다. 베이킹 깍지로 파이핑 해둔 꽃이 단단해지고 마르면 부어둔 캔들에 올릴 차례다. 이때, 캔들 컨테이너에 부어둔 소이 왁스는 하루를 넘겨야 굳기 때문에 전날이나 이틀 전에 만들어 두어야 한다. 미리 만들어 둔 컨테이너 캔들 위에 꽃을 올린다. 하나의 캔들 작품을 만드는 데 이틀에서 사흘이 걸린다.
나는 배움이 더딘 편이다. 자격증 수업 마지막 날까지도 예쁜 꽃은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수업 종료 이후부터 서점에서 소이 캔들 관련 책을 샀다. 그리고 밤낮으로 만들었다. 영어 강의를 계속할 때였다. 아침 7시 첫 강의를 시작으로 1시까지 연속 강의를 했다. 1시에 점심을 먹고 강의 준비도 한 다음 책도 보고 자격증 수업에서 배운 내용을 복습했다. 5시 반, 다시 일터로 출근해 저녁 6시부터 9시 저녁 강의했다. 밤에 집으로 돌아와 계속 연습했다. 복습의 복습을 12시까지 계속했다. 그때는 부모님과 함께 살 때였다. 문이 달린 다이닝룸(Dining room: 옛날 집이라 집에 큰 문이 달린 식사하는 방이 따로 있다)을 통째로 내가 사용했다. 처음에는 방에서 만들었는데 냄새가 아무래도 나다보니 가족들이 불편해했다. 그래서 큰 창이 있는 다이닝룸으로 캔들 공방으로 만들어버렸다. 가족 모두가 불편함을 감수해 주어 가능했다. 대략 300개 넘게 만들었던 것 같다. 만들면서 듣던 박정아의 라디오에서는 내 사연이 읽혔다. 사진과 함께 사연이 읽혔고, 너무 예쁘다며 놀라워하셨다. 감사의 의미로 방송국에도 보냈다. 미국에서도 연락이 와서 동영상을 찍어 수업했다.
당시 나는 밤잠을 못 이룰 정도로 좋아했다. 몸이 따끔할 정도로 몽롱한 상태가 계속되었지만, 웬일인지 신나있었다. 그리고 열심히 했다. 지금도 나는 그때와 다르지 않다. 좋아하면 공부하고, 아날로그 스타일이라 손에 익을 때까지 계속해 본다. 배움은 나를 살게 하고, 나는 배움을 좋아한다. 정말 힐링이었다.
When you love something, you don't easily get tired of it.
좋아하면 쉽게 지치지 않는다.
정물화의 대가가 된 샤르댕의 그림을 보고 있으니, 그가 남긴 120점의 정물화가 나의 캔들과 다르지 않다는 걸 느낀다. 그가 이리저리 구도를 생각하고 남겼을 정물화는 그의 열정이요 무언가에 대한 간절함이었을까.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가만히 있을 물건들에 생명력을 넣는 작업. 그리고 마침내 탄생하는 나의 캔들과 그의 정물화. 250년 전의 그의 작품 <브리오슈>에서 빵을 만들 때 제각각 모양을 지닌 브리오슈 중 선택되었을 그 빵을 바라본다. 그가 선택한 브리오슈는 내가 만든 캔들 중 어느 하나 똑같지 않은 그 캔들과 닮아있다. 그가 배치한 브리오슈 정물 옆 수프 그릇은 독일 마이센(Meissen)자기이다. 세계 3대 명품 도자기(마이센, 로얄 코펜하겐, 웨지우드). 내가 캔들과 함께 배치한 도자기는 웨지우드 자기이다. 엔틱 그릇과 빈티지를 좋아하는 나에게 그의 정물화가 주는 편안함과 화려함이 생명력을 불어넣은 것 같이 조화롭다. 브리오슈를 담은 그릇은 왠지 모르게 실버스탤링 접시 같다. 세계 각 지역을 다니며 모아둔 실버스탤링 쟁반과 접시들을 사랑해서인지 그렇게 보였다. 아무래도 고가의 독일 마이센 자기를 두었으니, 은접시가 아닐까. 금도금 장식을 한 프랑스 로랭(Lorraine)산 유리 술병(liquer decanter)과 흰 꽃이 달린 오렌지 가지, 브리오슈 빵, 이국적인 과일이 한데 어우러져 작품을 이루었는가.
반사된 빛 인상적인 명암법, 그의 임파스토 기법. 질감이 느껴지는 이 기법을 개인적으로 매우 사랑한다. 그리고 그의 정물에서 배경은 늘 정물에 집중할 수 있게끔 존재감을 줄이고 숨죽여 등장한다. 내가 좋아하는 어두운 우드톤과 블랙은 캔들 사진을 찍을 때 늘 나타난다. 배경의 화려함을 숨기고 물건에 집중하게 만드는 것인데 그의 그림에서 나의 캔들 사진과 공통점을 이렇게 찾아본다. 그의 취향 역시 나와 같구나!' 하며 왠지 모를 뿌듯함과 가까움을 동시에 느껴본다. 나도 샤르댕이 정물화에 미쳐 120점의 그림을 그린 것처럼 캔들을 짜고 붙이고 다시 잎사귀를 파이핑 하며 300개의 캔들을 만들던 시간으로 초대된 것 같아 마음이 뭉클하다. 그의 정물화를 더 찾아보며 수백 년 전의 그를 만나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