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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켈리류 Jun 23. 2024

김창열 <물방울>, 2013

거꾸로 보면

이탈리아 미술관에서 의자에 앉아 사람들이 없는 틈을 타 재빨리 등을 기대고 거꾸로 그림을 감상한 적이 종종 있었다. 이상한 자세에 엄마는 쿡쿡거리며 지켜봐 주셨다. 경비원이 오고 있노라면 미리 일러 주시기도 하셨다. 김창열의 2013년 <물방울> 작품을 가만히 바라보다 뒤집어서 보게 되었다. 마치 희미하게 멀리 보이는 두 사람의 Profile (프로필; 옆 모습) 같다. 옆 모습이 서로 마주 본다는 것은 ‘대화’를 한다는 것이고, 내가 대화할 때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듣는 것’이었다.


A good listener is not only popular everywhere, but after a while he gets to know something. _Wilson Mizner 미국의 극작가

남의 말을 경청하는 사람은 어디서나 사랑받을 뿐 아니라 시간이 흐르면 지식을 얻게 된다.


어릴 때 주장이 강한 편인 나를 양육하며 아버지와 어머니는 주장이 강해서 오는 장점이 무언가를 생각하셨다고 한다. 한국 사회 정서상, 주장이 강하다는 것은 어쩌면 위험한 도구를 먼저 들고 서 있는 행위로 오인되기 쉬웠기 때문이다. 그런 나에게 영어의 세계는 생각을 적절히 이야기해야 더 이점이 있는 사회의 언어였기에 잘 어우러졌다. 자신의 주장을 이야기한다고 해서 상대의 마음을 읽으려 노력하지 않는다면, 예의가 없는 사람이 되어 버리는 것은 그쪽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Be a good listener.” (잘 들어주는 사람이 되어야 해. 혹은 남의 말에 귀를 기울여라) “He is such a good listener.” (그는 매우 잘 들어주는 사람이야) 잘 들어주는 사람에게 찬사를 보내는 것은 개개인의 주장이 많은 사회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세우는 일만큼이나 우선시 되는 대화의 자세이다. ‘역지사지(易地思之)’ 易 바꿀 역, 地 땅 지, 思 생각할 사, 之 어조사 지. 상대편의 처지나 입장에서 먼저 생각해 보고 이해하라는 뜻이다. 동양의 ‘역지사지(易地思之)’는 서양의 ‘Good listener’와 닮았다. 잘 들어주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입장에서 이해하여 보는 것인데, 동서양의 단어들이 이렇게 모이니 언어를 공부하고 16년째 영어교육 하는 직업을 가진 나로서는 기분이 좋다. 거꾸로 보면, 상대방의 그림도 마음도 다른 각도로 한 번 더 관찰하고 한 박자 쉬며 달리 보는 여유가 생긴다.     


싸움에서 눈물이란

김창열의 그림을 거꾸로 바라보다 다시 거꾸로 툭 하고 떨어진 물방울을 보며 나는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서 오래도록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둘의 대화에서 무언가 풀리지 않아 한 명의 눈물이 거꾸로 툭 하고 흐른다. 대화하다 눈물을 흘리는 쪽은 싸움에서 지는 쪽이라 일컬어지기에, 나는 매번 싸움에 지는 쪽이다. 억울함의 눈물 한 방울, 두려움에 가슴 두근거림의 눈물 한 방울, 어떻게 네가 나에게라는 크나큰 실망의 눈물 한 방울. 그 방울 방울이 모여 큰 눈물이 되어 툭 하고 떨어진다. 싸움의 기술은 현재도 그리 많지 않다. 싸움을 잘하는 누군가로부터, 글로, 책으로, 영상으로 배우고 생각해 보는 시간도 가졌지만, 나는 싸움을 잘하는 쪽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그저 역지사지의 이야기만 머리에 기억하고, Good listener가 되어보며 손해가 가는 일임에도 일일이 싸워 이기는 사람이 되기 어려웠다. 눈물이 의미하는 모든 언어는 때로는 패배이겠지만, 나에게는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림에도 상대는 그러지 못할 때 흘리는 하나의 실망감이 큰 것, 그것이다. 앞으로도, 나의 싸움은 눈물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을 것 같다. 나의 눈물을 보고도 당황하지 않는 상대와 싸움 할 가치가 있을까. 아끼는 마음의 증거는 상대의 마음을 흔들어 놓고 흘리는 ‘눈물’을 확인할 때다. 나와 싸움에서 누군가가 눈물을 흘린다면 당장 멈추고 안아줄 마음이 있다. 눈물을 무기로 이용하는 사람들을 제외하고 사람의 눈물은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님을 나 스스로가 알기에. 상대방을 그만큼 아끼는 마음으로 보았으며, 아껴 왔기에 할 수 있는 행동일 것이다. 울기에 너의 말이 다 옳다는 말이 아니다. 아끼던 상대라면 더욱이 잠깐은 휴전의 시간을 갖는 것도 일리가 있는 말이 아닐까. 싸움의 종류는 다양하지만 내가 말한 싸움은 ‘나와 함께 마음을 나눴던 사이’에서 싸움을 말한다. 다른 싸움에서 나는 글쎄, 상대의 눈물에 동요되지 않는 냉혈인이 되는 날도 가끔은 있지 않을까 싶다. 거꾸로 보았을 때 서로를 마주 보는 상대와 다시 본래의 그림으로 두고 본 물방울을 연결 지어 보는 싸움의 눈물을 이야기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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