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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탱강사 Dec 09. 2019

박제된 비극

다이빙 여행 | 난파선 다이빙의 천국, 축 - 4

축은 제2차 세계대전의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이 미국을 공격하기 위한 배를 정박해 두던 곳이다. 일본이 점령한 남태평양의 섬들 중에서도 태평양 한가운데 깊숙이 위치한 데다, 거대한 환초 지형 때문에 광활한 태평양 바다 위에서 미국을 공격하기 위한 전초 기지가 되기에 딱 맞는 곳이었다.



지도에서만 봐도 충분히 그럴만하다고 생각했었는데, 다이빙을 하러 가면서 보는 바다의 풍경을 보니, 과연 해군 기지가 되기에 천혜의 바다인 것 같았다.


날씨에 상관없이 늘 잔잔하고 평온했던 바다. 환초에 둘러싸여 있어서 그런 듯.


그러다 보니, 여기에는 일본의 주력 해군인 전함이나 잠수함, 보급 수송선 등이 상당량이 정박해 있었다. 1944년 2월 17일, 헤일스톤 작전 (Operation Hailstone)으로 불리는 미군의 공습이 시작되었고, 단 이틀 만에 이곳에 정박해 있던 일본군의 배들과 방어 시설들은 공습의 제물이 되어, 약 40척의 배들이 그대로 침몰해 버렸다.


축의 난파선과 다이빙 포인트를 설명해 둔 지도를 샀다.


그렇게 많은 배들이 침몰한 곳이어서 그런지, 우리가 다이빙을 하러 갈 때는 어떤 목적지를 정하고 간다기보다는 가다가 멈춘 곳에서 물속을 들여다본 후, 이번에 다이빙할 배가 무엇이라고 정하는 느낌이 들 지경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난파선 다이빙의 "천국"이라는 역설적인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 처절한 전쟁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외면하기 어려운 죄책감이 들 수밖에 없다.


매 다이빙마다 바뀌는 배들에 대해서 짧게나마 설명을 듣고 입수를 하는데, 말이나 글로 전해지는 이야기보다는 역시, 물속에서 잠들어 있는 배와 그 속에 고스란히 드러나는 상흔을 직접 보는 것이 과연 무게감이 다르게 다가온다.


이번에 다이빙할 난파선(?)은 "Betty Bomber"라는 이름의 비행기
물이 흐렸지만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는 비행기가 보이자 묘한 기분이 들었다.
물속에 잠들어 있는 비행기를 보는 것은 신비로운 경험이다.
인간에게는 비극이 잠들어 있는 곳이지만, 작은 물고기들에겐 새로운 보금자리가 되었다.
비행기와는 거리가 좀 있는 곳에 조종석이 통째로 혼자 떨어져 나와 있다.
누군가가 늘 간직하고 다녔을 젓가락
내용물은 뭔지 모르겠지만 (모양과 색깔을 보면 의약품일 듯) 침몰한 그날 이후로도 병 안의 내용물과 공기는 그대로 있다.
옆으로 누운 배 위에는 우연인지 흩어져 있는 전등과 전화기
배 안의 넓은 공간에 비행기가 있었다. 침몰한 배 안에 또 비행기라니.
배 안 곳곳에는 전쟁을 위해 준비해 둔 무기들이 그대로 있었다.
으스스한 기운을 풍기는 방독면들
가끔씩 눈앞에 나타나는 폐유 방울들. 마치 마르지 않는 검은 눈물 같다.
산호와 물고기들에게 완전히 뒤덮인 거대한 포탑


난파선 다이빙을 하면서 찍은 동영상 몇 개

http://youtu.be/P1HetKZVKEo

"Betty Bomber"라는 이름의 작은 비행기


http://www.youtube.com/watch?v=7JinCfnRZwY

"Patrol Boat 34"라고 하는 비교적 작은 배의 내부 진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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