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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지틀조선일보 Aug 07. 2018

[원작 vs. 영화] 은교

2010년 소설가 박범신은 개인 블로그에 미발표 장편 소설의 연재를 시작했다. 스스로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미친 듯이’ 써내려 간 소설은 작가의 젊은 날을 회복시켜준 듯했고, 한 달 반 만에 완성되어 마침표를 찍었다. 태생부터 독특한 이 소설은 출간과 동시에 화제를 몰고 온 소설 ‘은교’ 였다.

 위대한 시인이라 칭송받던 이적요가 죽은 지 일 년이 되는 날, Q변호사는 유언에 따라 그가 남긴 노트를 공개하기로 한다. 하지만 노트에는 이적요가 열일곱 소녀인 은교를 사랑했으며, 제자였던 베스트셀러 작가 서지우를 죽였고, 서지우의 모든 작품을 이적요가 썼다는 충격적인 고백이 담겨 있었다. 이적요 기념관 설립이 한창인 시점에서 공개를 망설이던 Q변호사는 은교를 만나고, 서지우 역시 기록을 남겼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은교에게서 서지우가 남긴 기록을 받은 Q변호사는 그들에게 벌어졌던 일들을 알아가게 된다.


소설은 섬세하지만 몰아치듯 질주하는 필치로 어린 소녀를 둘러싼 노작가와 젊은 제자 사이의 갈등과 애증, 그리고 집착을 내밀하게 보여준다. 혹자는 70세 노인이 갈망하는 파격적인 성애 묘사에 ‘포르노그래피와 구별할 수 없다’고 평하기도 하지만, 소설은 나이와는 상관없는 이적요의 욕망을 통해 ‘인간 내면의 욕망을 잘 그려냈다’는 찬사를 받고 있다.

사진=영화 '은교' 스틸컷

소설은 2012년 영화로 다시 태어난다. 수려한 영상, 자연스러운 전개, 배우들의 호연 등 영화는 외적인 부분에서는 딱히 흠잡을 데가 없어 보이지만, 원작에 비해서는 아쉬움이 짙게 남는다. 열일곱 소녀를 사이에 둔 사제간의 삼각관계에 치중한 나머지 원작이 보여준 내면의 물음이 흐지부지해졌기 때문이다. 


영화는 "너희 젊음이 너희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라는 명대사를 남겼으나 원작의 내밀함을 재현하는 데는 실패했다. 화제가 된 신인배우 김고은의 노출도 너무 잦고 과해 꼭 저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을지 의문을 남게 한다.


젊음과 늙음, 삶과 죽음 등 존재에 대한 깨달음을 전해주는 ‘은교’. 이왕이면 더 깊은 울림이 있는 소설을 읽어보길 권하고 싶다.

                 

통플러스 에디터 김정아 jungya@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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