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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용호 Feb 12. 2019

12. 여전히 입술을 깨물죠.

11월 6일, 넷째 날

 그날을 기억한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는 너희들의 관계를. 우스갯소리로 ‘텐트에 배낭을 담아갈까?’라는 생각도 했다. 시작부터 잘못된 우리의 만남을.


 애당초 이건 예견된 운명이었다. 알고는 있었지만. 모른 척하고 싶었지만. 운명의 끈을 놓고 싶지 않았다. 그때, 반품했다면 이 슬픔을 몰랐을까. 아니면 처음부터 무작정 떠난 이 여행의 시곗바늘을 돌려야 할까. 아니다. 과거를 그만 해 집자. 과거에서 얻을 건 실패와 성공의 교훈이다. 하지만 지금 상황을 이겨낼 유사했던 경험은 없다. 그저 임기응변으로 이겨내야 한다.


 상태를 확인했다. 배낭의 왼쪽 어깨 끈 절반이 너덜너덜해진 상태였다. 텐트는 배낭이 버틸 수 없는 무계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대로 텐트를 떠나보내야 할까. 아쉽다. 너무 아쉬워서 쉽게 남겨두고 떠날 수 없었다. 내가 상상했던 국토대장정의 일부분은 이렇게 도려낼 수 없었다. 하지만 현실과의 타협이 필요했다. 확실한 건 텐트와 배낭의 끈을 다시 수선한다고 해도 반복되는 상황이 발생할 거다. 극단적으로 생각해본다면 그 장소가 고속도로나 밤길이 일수도 있다.


 여기 까지다. 내일의 텐트는 없다. 안타까운 마음에 텐트를 두 손으로 꽉 잡고 어디에 두고 떠날지 묫자리를 찾았다. 쓰레기통에 두자니 누나가 사준 거라 좀 그랬고, 어딘가 함부로 두기에는 찝찝했다. 시선이 방황하기 시작할 때 발견했다. 생이별이 아닌 잠깐의 이별할 수 있는 방법을.


이곳이다. 이곳은 사과박스가 가득했다. 트럭에서 중년부부가 사과박스를 열심히 나르고 있었다. 과수원에서 가정집으로 이렇게 보내지는 구나. 교과서에서만 보던 유통과정을 보니 참으로 흥미로웠다. 이곳은 바로 우체국이다. 이곳에서 택배를 붙이면 집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 운도 좋다. 코너를 돌자마자 우체국이 있다니 말이다. 안으로 들어가 배낭을 내렸다.


 배낭의 상태를 보니 여기서 텐트 이외의 물건을 더 보내야 했다. 텐트가 없어지면서 필요 없어질 물건들을 골랐다. 코펠, 버너, 수저, 침낭이었다. 하나하나 박스에 넣었다. 텐트는 박스보다 훨씬 커서 그 상태로 보내기로 했다. 그러다 내 손이 정지해버렸다.


 다른 건 다 보낼 수 있었지만 차마 침낭은 보낼 수 없었다. 앞으로 숙박은 찜질방에서 보내기로 했다. 하지만 마을마다 무조건 찜질방이 있는 건 아니다. 다른 숙박시설을 이용할 수 있지만 그건 내가 싫었다. 만약 그 날 저녁에 찜질방을 못 찾는다면 차라리 야외에서 자고 말 거다. 그렇다면 최소한 이 침낭은 있어야 되지 않을까 싶었다. 택배를 붙이고 우체국을 나왔다. 배낭에 침낭을 매단 채. 실수로 다른 것을 두고 마을을 떠났다. 간식거리를 사겠다는 계획을.



 한편으론 좋았다. 이전보다 확실히 가벼워졌기 때문이다. 오늘은 내 인생에서 가장 많이 걷는 날이 될 것이다. 내 인생에서의 최초 기록은 뉴질랜드 통가리로 국립공원에서 26.4km였다. 이 곳은 호주에서 만난 민우와 갔던 여행지였다. 날씨가 좋아 반팔 반바지를 입고 갔었는데 사람들이 죄다 패딩을 입고 있어서 의아했다. 나중에 알게 됐다. 이 공원의 코스가 고산지대를 지나간다는 것을. 다행히 민우는 가방에 잠바를 챙겨 왔었다. 하지만 나는 없었다. 가진 거라고는 오른손에 든 셀카봉 하나였다. 오르면 오를수록 거센 바람과 함께 추위가 내게 달려왔다. 점점 내 몸이 얼어 관절들의 움직임이 둔해졌다. 살려고 구름을 해치며 달렸다. 마치 실미도 684부대처럼.


 그다음 기록 경신은 전에 말했던 마카오에서 29.1km. 마지막으로 엊그제 도착한 해남읍까지 34.4km였다. 그리고 오늘은 40km가 넘을 예정이다. 앞으로 이 이상의 기록은 안 세우고 싶다. 



 점점 어두워졌다. 이제 고속도로는 흔한 길이 되었다. 매일 걸으니 자동차의 굉음이 익숙해져 귀를 막지 않아도 됐다. 하지만 어둠이 내린 밤의 고속도로는 차원이 달랐다. 어둠 속에서 달려오는 차들은 총이 날아오는 것만 같았다. 총은 빚나 갔지만 이미 내 몸엔 총알이 박힌 기분이었다. 발걸음을 재촉했다. 고속도로를 빠져나오자 수많은 가로등이 있는 사거리가 나왔다. 세금을 낸 보람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사거리를 지나자 가로등 하나 없는 도로가 나왔다. 내 세금은 여기까지 인가 보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삼 차선 도로였고 차들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이 또한 잠시였다. 삼 차선 도로를 지나자 시골길이 나왔고 인도가 없어서 좁은 차도를 걸었다. 불길한 마음이 증폭했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핸드폰의 라이트를 켰다. 내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 이걸로는 부족했다. 배낭에서 손전등을 꺼냈다. 핸드폰 라이트는 앞으로 손전등은 뒤로 비췄다. 뒤에서 오는 차들에게 내가 있다는 신호를 보내기 위해 하향 등으로 비췄다. 밤길은 지옥길과 같았다. 다시는 걷고 싶지 않았다. 겨울의 밤은 빠르고도 길었다.





 오래된 작은 건물들이 하나씩 보이더니 마침내 나주에 도착했다. 영산강 위로 긴 다리를 건넜다. 이 강은 어둠에 덮여 비록 완벽한 찬란함을 보여주지 못했지만 인간이 창조한 빛으로 공생의 아름다움을 뽐냈다. 힘들어 죽겠지만 다리에서 보는 야경에 취해 잠시 즐기다 갔다.


 도시 내로 들어가자 이색적인 광경을 보였다. 특이하게 무당집이 많았다. 포천에 이동갈비 골목이 있고 의정부에 부대찌개 골목이 있듯이 나주는 무당 골목이 있나 싶었다.



 텐트가 없는 배낭 뒷자리에 피로가 매달려 있었다. 그림자마저 무겁게 느껴졌다. 시야 끝에서 찜질방 간판이 보이기 시작했다. 시간을 보니 8시 20분이었다. 몸은 괴롭고 배는 곯았다. 가는 길에 국밥집으로 들어갔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사람이 어느 정도 있었다. 다들 후줄근한 옷차림이었다. 그들은 오늘의 마무리로 여기에 온 게 아니라 내일의 시작을 위해 온 것만 같았다. 항상 먹는 순댓국을 시키려고 했다. 하지만 유독 눈에 들어오는 메뉴 하나가 있었다. 내장탕이었다. 갑작스럽게 폭발한 호기심에 내장탕을 시켰다. 미국에 사상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게 심드렁하고 그날이 그날 같고 궁금한 게 없으면 이미 죽은 것이다.' 힘들어서 죽은 줄 알았는데 난 살아있었다. 생기 넣은 입김으로 주문했다.



 “내장탕 하나요!”





 밑반찬과 함께 내장탕이 나왔다. 내가 좋아하는 하늘초 장아찌를 한 입 베어 먹고 숟가락으로 내장탕의 내용물을 끄집어 올렸다. 정말 이름 그대로 내장만 들었다. 잠시 실망을 했지만 국물 맛이 실망을 잊게 했다. 오랜 시간 푹 고와서 상당히 진한 맛이 났다. 독특한 붉은색을 띤 김치를 한 입 먹었다. 신기하게도 달달한 볶음김치 맛이 났다. 하지만 확실히 볶음김치는 아니었다. 깍두기는 딱 알맞게 익어서 뜨거운 국물과 조화가 잘됐다. 맛을 깊게 음미하고 싶었지만 허기진 배를 채우느라 좀 급하게 먹었다. 그러다 물 한 통을 다 마셔버렸다.  



  찜질방에 도착했다. 오늘 41km를 걸었다. 스스로에게 대견했다. 내 눈앞에 오른손 엄지손가락을 추켜올렸다. 건물이 상당히 컸다. 안으로 들어갔다. TV를 보던 아주머니는 내 복장을 보더니 찜질복을 꺼내며 말했다.



 “찜질 맞죠? 근데 바닥이 별로 안 뜨거워요.”

 “상관없어요. 그게 중요한가요.”

 “손님 중에 하도 뭐라 하는 분들이 많아서요. 주말에는 따뜻한데……”



 따지는 소리에 찌들었는지 상당히 소극적인 분이었다. 찜질복을 받고 신발장으로 갔다. 벽과 바닥이 전부 대리석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인테리어 비용이 상당히 많이 들어 보였다. 목욕탕으로 들어가 짐을 넣었다. 지난번과 고통은 거의 같았지만 한 번 격은 고통이라 이번에는 기어서 가지 않았다. 절대로 그때 눈이 마주친 어린아이 때문은 아니다.


 거창한 크기에 비해 사람이 많이 없었다. 일하시는 분 빼고 나와 3명이 다였다. 뜨거운 물에 몸을 담갔다. 몸의 피로가 다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그냥 이대로 자버리고 싶어질 정도였다. 충분히 목욕을 즐기고 찜질방으로 갔다. 고요했다. 으스스할 정도로 찜질방은 잠잠했다. 알고 보니 나 혼자였다. 이게 아주머니가 안 뜨겁다고 한 이유구나. 사람이 없는데 온도를 높여 적자를 낼 수 없지 않은가. 숨소리마저 메아리칠 거 같은 이곳에서 한 구석으로 자리를 잡고 누웠다. 추워서 매트를 이불 삼아 덮었다. 그리고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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