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용호 May 19. 2019

4. 어둠 속에 한 줄기의 빛이 있을까.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기 시작했다. 점장님이 내가 일하는 모습을 보더니 매니저 할 생각이 있냐고 물었다. 나는 아침에만 일 할 거라서 괜찮다고 했다. 오후부터 내가 엄마를 모시기로 했다.



 10만 명 당 1명 꼴로 걸리는 루게릭병은 불치병이다. 치료제도 없다. 아빠는 엄마에게 몸에 좋은 건 하나씩 다 먹여 보자고 했다. 우리 집 창고에 약들로 가득해지기 시작했다. 산삼 같은 약초들이 흔하게 즐비해 있었다.



 어느 날 아빠가 작디작은 약통 하나를 들고 왔다. 창고에 쌓인 약들도 넘쳐나서 난감한 상황이었다. 그 약은 또 어디서 사온 거냐고 물었다. 아는 친구한테 산 거라고 했다. 얼마에 샀냐고 물어보니 20만 원이라고 했다. 말도 안 됐다. 껌통보다 작은 저 약통 하나가 20만 원 일리가 없었다. 인터넷에 검색했다. 2만 원도 안 되는 싸구려 영양제였다. 아빠의 친구는 다단계 사원이었다.



 화가 났다. 하지만 아빠에게 뭐라 따질 수 없었다. 절박해서 그런 거니까. 절망에 늪에 빠져서 사기를 당하는 줄 알면서도 혹시나 사기당한 약일지라도 효과가 있지 않을까 싶어 가시 달린 밧줄을 잡은 거니까. 어쩔 수 없었다는 걸 안다. 



 아빠에게 해야 할 말을 준비했다. 엄마가 그 약을 먹을 때마다 토악질처럼 준비한 말이 나올 거 같았다. 어거지로 참으며 그 말을 곱씹었다. 한 달이 지나서야 그 약통이 비어졌다. 마침내 아빠에게 말했다. 아빠. 친구에게 산 약은 아쉽지만 효과가 없어요. 다른 약을 알아봐야겠어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답변이었다.



 약으로는 효과가 없자 아빠는 물리적인 치료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호텔에 딸려 있는 조그마한 병원에 갔다. 의사가 전기 치료를 해보겠다고 했다. 병실로 갔다. 침대 하나와 이상하게 생긴 기계가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의사는 그 이상한 기계로 전기치료를 할 거라고 했다. 생긴 건 오래된 인두 다리미랑 똑같이 생겼다. 제조회사를 찾아보니 의료와 관련된 회사도 아니었다. 의사에게 이게 무슨 기계냐고 물었다. 그 의사는 한국에서 대단하신 분이 이번에 한 번 만들어 본 거라고. 환자분이 최초로 임상 실험 대상자가 된 거라며 휘황찬란하게 말했다. 이딴 임상 실험 같지도 않은 걸 돈을 바쳐 가며 받게 될 줄이야. 화가 잔뜩 났다. 하지만 엄마와 아빠의 희망에 찬 얼굴을 보니 뭐라고 할 수도 없었다. 그렇게 6개월 동안 그 치료 같지도 않은 치료를 받았다. 가끔은 속으로 혹시나 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아무 효과도 없었다.



 약으로도 물리적으로도 안됐다. 사실 방도가 없었다.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불치병이라는 걸. 하지만 아빠는 또 다른 방법을 찾아냈다. 바로 종교였다. 주님만이 엄마를 치료해줄 거라고 믿었다. 방방곡곡을 돌아다녀 치료의 은사를 받은 사람을 찾았다. 아빠는 그분에게 사정사정하며 엄마를 치료해달라고 부탁했다. 마침내 만나기로 했다. 아빠한테 어떻게 치료가 되냐고 물어봤다. 아빠는 기도로 치료가 된다고 했다. 안 믿었다. 그래도 기도만 하는 거니 엄마에게 잘 됐다고 했다.



 치료의 은사에게 기도를 받으러 가는 날, 나는 편의점 아르바이트 때문에 가지 못했다. 일할 사람이 없어 그 날만 저녁 파트까지 일했다. 몸의 피로가 가득 쌓였다. 검은 밤이 되어서야 집으로 갈 수 있었다. 터덜터덜 발걸음에 힘이 없었다. 



 집에 와보니 모두가 자고 있었다. 조용히 안방으로 갔다. 오랜만에 밖에 나갔다 온 엄마에게 고생했다고 손을 잡으며 말하고 싶었다. 어둠 속에서 엄마의 손을 찾았다. 그런데 보이지 않았다. 마루에 작은 불빛이 은은하게 안방을 밝히는데도 보이지 않았다. 놀라서 불을 켰다. 왜 엄마의 손을 못 찾았는지 그 이유가 침대 위에 놓여 있었다.



 엄마의 손이 검은색이 되어 있었다. 마치 반타 블랙으로 염색한 것처럼. 양손이 숨을 못 쉴 것처럼 퉁퉁 부어 있었다. 아빠를 깨워 이게 어떻게 된 거냐고 물었다. 아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소란스러웠는지 누나는 자기 방에서 뛰쳐나와 나를 끌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어떻게 된 건지 얘기해줬다.



 그 치료의 은사를 받았다는 인간이 이렇게 만들었다. 기도를 하면서 엄마의 양 손을 사정없이 때렸다. 엄마는 움직이지 못하는 손으로 가만히 맞기만 했다. 아빠와 누나는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 



 너무 화가 나서 처음으로 가족들에게 소리를 질렸다. 그동안 쌓이고 싸였던 화를 전부 냈다. 그러다 눈물이 났다. 속상해서 미칠 거 같았다. 어쩌다가 당하기만 하는 인생이 돼 버렸는지. 당해도 몸부림조차 칠 수 없게 됐는지.



 이렇게 당해도 우린 또다시 당하기 위해 없는 치료제를 찾아다닌다는 걸 안다. 멈출 수가 없다. 엄마가 낫거나 죽을 때까지. 계속 당하기만 해야 한다.





 “오늘도 병원에 다녀왔다. 돈이 셀 수 없이 빠져나간다. 내가 병원을 안 가고 치료를 안 하려고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밤새 생각해보니 남편이 가여워서 그만 할 수가 없었다. 내 자식들이 불쌍하지만 앞으로 살 날이 많으니 행복한 날들이 많겠지? 남편은 홀로 생활하면 나를 그리워하며 얼마나 외로워할까?” 

이전 03화 3. 내려 놓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