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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용호 May 19. 2019

5. 미안해요. 세상이 그렇네요.

 택배 하나가 왔다. 상당히 낡은 박스였다. 누가 보면 그냥 쓰레기인 줄 알고 버릴 거 같았다. 생긴 것처럼 한쪽 구석에 뒀다. 엄마와 점심을 먹고 같이 TV를 보는데 어디선가 위잉~ 하는 소리가 들렸다. 벌레소리였다. 손을 움직이지 못하는 엄마에게 있어서 모기 같은 벌레는 치명적였다. 벌레가 엄마를 물기 시작하면 엄마는 포기라는 단어를 어금니에 물었다. 빨리 벌레를 찾아야 했다. 대문을 봤다. 닫혀 있었다. 벌레가 들어올 일이 없었다. 혹시나 창문들이 열렸나 확인했다. 전부 닫혀 있었다. 다시 위잉~ 하는 소리가 났다.



 어디서 들리는지 귀를 기울였다. 찾았다. 아까 받은 낡은 박스에서 난 소리였다. 생긴 것처럼 바퀴벌레가 딸려 온 게 아닐까 싶었다. 박스를 밖으로 들고나가 열었다. 열자마자 기겁했다. 나도 모르게 던져 버렸다. 벌들이었다. 누군가 장난으로 보낸 거 같았다. 



 받는 이를 보니 아빠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아빠에게 전화를 걸어 물었다. 아빠. 혹시 이 사람 누군지 알아요? 이 사람이 장난으로 벌을 보냈어요. 아빠는 껄껄껄 웃었다. 알고 보니 이 벌들은 아빠가 주문한 거였다. 벌침으로 엄마를 치료할 거라고 했다.



 다음 날 아침, 24시간 동안 일을 하고 온 아빠는 힘없는 모습으로 집에 왔다. 오자마자 엄마를 침대에 눕히고 벌들이 들어있는 박스를 가슴팍에 안았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벌들을 하나씩 꺼내 집게로 침을 뺐다. 그리고 신중하게 엄마의 양 손과 다리에 침을 놓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의 양 팔 그리고 다리가 퉁퉁 부어올랐다. 그냥 보기에도 좀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아빠는 그림자가 깊게 진 눈을 깜빡거리며 다시 침을 노려고 했다. 이건 아니다 싶어 아빠를 말리려고 했다. 그런데 엄마가 먼저 말을 꺼냈다. 이제 그만하자고. 나는 괜찮다고. 미소를 띤 얼굴로 아빠를 지긋이 바라보며 말했다. 그 말에는 정말 많은 의미가 담겨 있었다. 아빠는 엄마의 그 말을 무시하고 싶었을 거라 생각한다. 아빠는 눈물을 흘렸다. 엄마도 같이 눈물을 흘렸다. 난 조용히 안방을 나와 문을 닫았다. 



 그 날 저녁, 아빠는 노을처럼 붉은 낙엽들을 한 가득 들고 왔다. 엄마에게 한 번 밟아보라며 바닥에 장성스럽게 깔았다. 엄마는 서질 못했다. 앉아서 낙엽들을 밟았다. 발을 이리저리 움직이는 모습이 마치 어린아이처럼 신나 보였다. 그리고 아빠는 촉각만이 남아있는 엄마의 손에 낙엽들을 올려놓고 손가락 하나하나에 접어주며 만지게 했다.



 그 낙엽들은 이제 말라비틀어졌지만 아직까지 우리 집에 남아있다. 엄마가 자주 사용하던 유리병에 넣어 두었다. 그 유리병은 이전에 개떡을 만들 때 사용하던 쑥가루가 들어 있었다. 유리병을 볼 때마다 따뜻해졌다. 붉은 낙엽들에게서 아직 누군가의 온기가 남아 있는 것처럼.





 “남편이 회사에서 끝나고 과자를 한 보따리로 사 왔다. 그리고 밤에 이렇게 말했다. 나는 다시 태어나도 너와 결혼할 거다. 미안하고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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