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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용호 May 19. 2019

7. 고생 끝에 보는 미소란.

 우리 가족은 지쳐 있었다. 아마 세상에 우리 가족만 덩그러니 있었다면 그대로 쓰러져 버렸을 거다. 하지만 우리 가족의 호흡이 가빠질 때마다 어딘가에서 희망의 손길을 내밀어 줬다.



 엄마가 다니던 한양대병원에서 임상실험이 있었다. 루게릭병을 늦춰줄 수도 있는 약이었다. 비용은 심각했다. 그런데 첫 병원비를 자신의 돈으로 써달라며 우리에게 100만 원을 준 분이 있었다. 같은 교회에 다니던 장로님이었다. 그때 당시 검은손 사건도 있어서 종교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았다. 편견의 목각에 눌려 절대 빠지지 않는 녹슨 못에 박힐 뻔했다. 그 장로님이 없었다면 말이다. 친인척도 아닌데 어떻게 큰 도움을 줬을까. 신을 믿지 않지만 이건 확실히 종교의 힘이었다. 



 엄마를 제외한 우리 가족은 요리를 해본 적도 없었다. 심지어 라면조차 엄마에게 부탁했었다. 엄마가 병에 걸리고 나서 우리는 못하는 음식을 만들기 시작했다. 음식은 단 한 번의 오차도 없이 항상 망했다. 맛이 없었다. 환자가 먹을 음식이 못 됐다. 이 사정을 어떻게 알았는지 큰 엄마가 반찬을 해줬다. 그것도 수년 동안 말이다. 큰 엄마는 친척이지만 피가 섞이지 않았다. 피가 섞인 친척들도 이렇게 해 준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도 큰 엄마는 엄마를 위해 항상 몸에 좋고 갓 비싼 음식을 해줬다.



 친척들 중에서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분이 있었다. 대구에 살던 고모였다. 사실 엄마가 아프기 전에는 대구에 친척이 사는지도 몰랐다. 대구 고모는 우리에게 양파즙을 매번 보내 줬었다. 식당에서 일하던 대구 고모는 양파즙을 보내려고 자신의 끼니도 제대로 먹지 못했었다. 그러다 영양실조로 쓰러졌다는 걸 한참이 지나서야 알았다. 왕래가 없었는데 정말 미안했다.



 우리 집에 가장 많이 방문했던 삼촌이 있었다. 어릴 적부터 엄마와 재일 친했었다. 삼촌은 올 때마다 병원비를 보태줬다. 삼촌의 아내인 외숙모는 안마사였다. 그래서 항상 올 때마다 엄마의 전신을 마사지해줬다. 가끔은 우리도 고생한다며 마사지를 해줬다. 친척들 중에 유일하게 같은 기독교 사람들이라 우리 가족이 많이 의지했다.



 어느 날, 택배로 뉴케어라는 영양식품이 우리 집에 도착했다. 어디서 온 걸까 알아보니 한국 루게릭병(ALS) 협회에서 보내준 후원이었다. 누나가 신청한 거라고 했다. 그때 당시에 엄마가 음식을 씹기 힘들어 몸이 많이 약해져 있었는데 이 영양식품 덕분에 어느 정도 회복할 수 있었다.  그 외에 다른 의료기구들도 우리에게 보내줬었다. 사실 나는 이런 기부 단체나 협회를 믿지 않는다. 당한 게 너무 많았다. 내가 유일하게 믿는 곳이다. 받은 만큼 돌려주고 싶다. 언젠가 이 곳에 도움을 줄 것이다.



 엄마가 이 병에 걸리기 전까진 루게릭병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주변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도 몰랐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도 모를 거라 생각한다. 그런데 TV 속에서 아이스버킷 챌린지라는 걸 연예인들이 하기 시작했다. 얼음물을 뒤집어쓰고 기부를 할지 아니면 다른 세 사람을 지목할지 정하는 이벤트였다. 엄청난 이슈였다. 전 세계적으로 하는 이벤트라서 세상 사람들이 루게릭병에 알게 되었다. 신기했다. 아무도 모를 우리의 이야기를 사람들이 알게 돼서. 감사했다. 우리가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는 걸 들어줘서. 아이스버킷 챌린지를 안 좋게 보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당사자로서는 너무 좋았다. 



 그중에서 가장 고마운 사람이라면 우리 누나가 아닐까 싶다. 누나는 어릴 적부터 개인주의 성향이 강했다. 엄마가 병에 걸렸을 때도 여전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누나는 변했다. 엄마 없이 살려던 누나는 이제 엄마 없이 못 산다고 말했다. 엄마를 위했다. 사람이 변할 수 있다는 걸 누나를 보고 깨달았다. 하지만 그 성격은 잘 지워지지 않아 가끔가다 미쳐 날뛰기도 했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엄마와 나는 누나 몰래 웃곤 했다. 



 누나가 없었다면 엄마는 일찍이 세상을 떠났을 거다. 라고 엄마가 늘 말했다.








 "나는 아직 살아있다. 햇빛을 너무 안쬈다. 요즘 마음이 우울하다. 어떻게 하면 빨리 하늘나라로 갈까 생각한다. 그러다가 갑자기 남편과 아이들을 보면 정신이 번쩍 든다. 희망의 끈을 잡고 싶은데 보이지 않는다. 언제쯤 소식이 들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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