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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용호 May 19. 2019

9. 4월 16일.

 그 전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한 동안 누나는 화나 있었다. 그래서 집 안은 냉전이었다. 



 누나와 아빠의 잡담 소리에 눈을 떴다. 시간을 보니 3시간도 못 잤다. 항상 같은 반복이다. 황혼에서 새벽까지 엄마를 간호하고 낮에 잘 수밖에 없으니까 조용히 해달라고 부탁했었다. 하지만 저 둘은 항상 크게 떠든다. 잠을 포기하고 일어났다. 그리고 마루로 나와 힘없이 허공을 보며 말했다. 남이 잘 때 조용히 좀 해달니까. 왜 나는 밤마다 누나랑 아빠랑 안 깨게 조용히 엄마를 해주는데, 왜 다들 그러지 않는 거야? 그제야 집안은 조용해졌다.



 엄마한테도 조용히 시켜달라고 부탁했었다. 엄마는 필사적으로 조용히 하라고 말하고 싶었을 거다. 하지만 엄마는 아무 말도 못 해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만 봤을 거다. 엄마는 나에게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누나는 요즘 스트레스가 많다고 했다. 밖에서 혼자 글을 쓰고 싶다고 자주 말했었는데 일찍 일어난 김에 누나에게 외출을 권유했다. 누나는 엄마에게 배고프면 밥을 주고 가겠다고 했다. 엄마는 괜찮다고 거절했다.



 엄마가 앉아 있고 싶다고 했다. 나는 엄마를 앉혀 줬다. 하지만 만약에 엄마가 고개가 숙여져 숨을 못 쉬는 상태가 된다면 소리 하나 내지 못해서 위험했다. 엄마는 그런 숨 쉬지 못하는 상황이 될까 무서워 나한테 옆에 있어달라고 했다. 나갈 준비를 하던 누나가 그럼 자신이 엄마 앉아 있을 때까지 같이 있겠다고 했다.



 엄마가 나를 불렸다. 눕고 싶다고 말했다. 더 앉아 있으라고 권했지만 그냥 눕겠다고 했다. 엄마를 눕혔다. 누나는 외출했다.



 아빠가 방에서 나왔다. 운동을 간다며 엄마에게 뭐 먹고 싶은 거라도 있는지 물어봤다. 엄마는 뜬금없이 냉면이 먹고 싶다고 말했다. 내가 며칠 전부터 엄마한테 냉면이 먹고 싶다고 말했었는데. 하지만 아빠는 엄마가 뭐라고 말했는지 이해를 못했다. 내가 엄마 대신 아빠에게 냉면이라고 말했다. 아빠는 네가 먹고 싶은 거 말고 엄마가 먹고 싶은 걸 말하라고 했다. 나를 의심했는지 다시 물어보라고 재차 강조하고 또 강조했다. 엄마는 아빠에게 화난 표정을 짓자 아빠가 알았다며 저녁으로 냉면을 사 오겠다고 했다. 엄마는 오늘 내가 기분이 안 좋은 걸 알고 냉면을 주문한 거 같았다. 엄마에게 물었다. 혹시 나 때문이야? 엄마는 눈을 한번 깜빡였다. 맞다는 뜻이다. 그리고 아빠는 밖으로 나갔다.



 아빠가 나가고 엄마와 같이 입 운동을 했다. 최근부터 엄마와 “아. 에. 이. 오. 우.”를 발음 연습을 했었다. 박수소리로 4/4박자를 치며 재미있게 했다. 엄마가 뭐 부탁이라도 하면 “아. 에. 이. 오. 우.” 3번 또는 5번 시도해서 그 안에 성공하면 해주겠다며 꾸준히 연습을 유도했다. 엄마는 연습하고 입이 좀 나아지는 걸 느끼자 혼자서도 연습을 했다. 그 모습에 우린 감동해서 어린아이처럼 펄쩍펄쩍 뛰었다. 우리가 엄마의 작은 소리만 들려도 바로 달려 나갔는데 말 연습을 할 때마다 우리가 달려오자 많이 웃었었다.



 무한도전이 할 시간이라 소파의 누운 엄마의 반대쪽에 누웠다. 아까 제대로 자지 못한 잠이 몰려왔다.



 대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눈을 떴다. 무한도전이 끝나 있었다. 엄마를 봤다. 다행히 살아 있었다. 아빠는 비빔냉면을 곱빼기로 2인분 사 왔다. 평소 같으면 바로 일어나 냉면을 외치며 뛰어다녔을 텐데 잠이 덜 깨서 누워 있었다. 그러다 벌떡 일어났다. 냉면을 외치면서 달려갔다. 내가 순수하게 좋아하는 모습을 볼 때 엄마가 가장 해맑게 웃었다. 



 때마침 누나도 집에 왔다. 누나는 엄마한테 배고팠냐며 냉면을 먹였다. 엄마는 배부르다고 했지만 누나는 너무 조금 먹었다며 더 먹으라고 권했다. 왜냐하면 엄마의 병이 늦쳐진 이유가 살이 쪄서였다.

 


 냉면을 먹고 나는 방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마루에서 발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나가보니 엄마가 숨을 잘 못 쉬고 있어서 기구를 사용하고 있었다. 엄마는 너무 배가 불러 숨 쉬기가 힘들다고 했다.

 


 무슨 일인지 이 또한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누나는 화를 내며 방으로 들어갔다. 요즘 이런 생활에 많이 지쳐 있어서 작은 일에도 누나는 화를 많이 냈다. 마루에는 엄마와 단 둘이 남았다. 엄마와 나는 서로를 보며 소리 없이 웃었다. 엄마에게 말했다. 누나가 요즘 힘들어서 그런 거 같으니 엄마가 이해해줘. 알았지? 엄마가 눈을 한 번 깜빡였다.



 밤이 되었다. 아빠와 누나는 자고 있었다. 엄마에게 자고 싶냐고 물었다. 엄마는 배가 불러서 잠이 안 온다고 말했다. 드라마를 좀 더 보겠다고 했다. 모든 드라마를 섭렵한 엄마는 아끼고 아낀 드라마 역적을 보겠다고 했다. 아직 안 본 드라마 역적 4편 다운로드했다.



 그 사이에 엄마와 대화를 했다. 왜 이런 대화를 했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엄마는 정말 똑똑하고 센스가 넘쳐서 그게 부러워. 그게 엄마한테 배울 점인 거 같아. 엄마는 나에게 눈짓과 고갯짓으로 네가 더라고 했다. 그 후로 덕담을 계속 이어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꿈같은 대화였다. 드라마 다운로드가 끝났다.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이제 드라마 다 받아졌으니까 드라마 재미있게 봐. 엄마는 같이 보자고 했다. 난 드라마를 좋아하지 않아 됐다고 방으로 들어갔다.



 중간중간에 엄마가 잘 있는지 확인했다. 내가 볼 때마다 엄마와 눈이 마주쳤다. 괜찮아? 엄마가 눈을 한 번 깜빡였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엄마는 이제 들어가서 자겠다고 했다. 화장실을 들렸다 방으로 데리고 갔다. 잘 잘 수 있게 자세를 잡아주고  내방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엄마의 작은 아우성이 들렸다. 아빠가 깨지 않게 엄마 귀에다가 속삭였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엄마는 아직도 배가 불러 잠이 안 온다고 했다. 엄마를 마루로 데리고 나왔다. 아직 덜 본 드라마 역적을 다시 이어서 봤다.



 시간이 지나고 엄마는 다시 방으로 가고 싶다며 불렀다. 웃음이 터졌다. 엄마에게 작게 말했다. 저기, 혹시 고문관이세요? 엄마가 웃었다. 다시 화장실을 들렸다가 방으로 데리고 갔다. 엄마. 이제 진짜 자는 거야. 알았지? 엄마의 자세를 다시 잡아줬다. 다시 내 방으로 들어갔다.



 얼마 안 있어 엄마는 또다시 작은 아우성을 냈다. 그리고 또다시 마루로 데리고 나왔다. 엄마와 일기를 썼다.



 태양이 뜨고 9시에서 10시 사이였을 거라 생각된다. 엄마는 이제 진짜 자겠다고 했다. 화장실을 들렸다 방으로 데리고 갔다. 아빠가 일어났다. 나에게 고생했다며 이제 자라고 했다. 나는 알았다며 엄마의 자세를 잡아 줬다. 그리고 엄마의 귀에다가 뭐라고 말했다. 아마 또 부를 거냐며 장난쳤을 거다. 엄마가 웃었다. 마지막으로 엄마는 미소를 지우며 눈을 감고 있었다.



 나는 잘 자라며 내 방으로 들어갔다. 잘 준비를 했다.



 10분 뒤



 엄마는 세상을 떠났다.





 “오늘도 무사히 하루가 지나갔다. 할 얘기가 많지만 다음에 해야겠다. 왜냐하면 마음이 바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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