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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용호 May 19. 2019

6. 남겨진 기억들.


 엄마의 말이 어눌해졌다. 천천히 모레에 빠지는 개미지옥처럼 엄마의 말수도 줄어들었다. 항상 엄마와 수다 떠는 재미로 살아 었는데. 이젠 대화하기도 힘들어졌다. 집 안에 사람 소리가 사라졌다.



 엄마와 단 둘이 있었다. 엄마는 나를 불렀다. 그리고 녹음을 하나 하자고 했다. 엄마는 어눌해진 입으로 천천히 말을 하기 시작했다. 보통의 사람이면 금방 끝낼 말이었다. 하지만 엄마는 그럴 수 없었다. 이미 개미귀신이 엄마를 물고 있었다. 엄마는 최대한 발음을 또박또박하게 하려고 노력했다. 많은 시간이 소모됐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었지만 계속 듣다 보니 엄마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알았다. 유언이었다. 나중에 자신이 긴급한 상황이 놓인다면 절대로 인공호흡기를 달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녹음이 끝났다. 엄마는 아빠와 누나한테는 비밀로 해달라고 했다. 나는 알았다고 했다. 서로 말없이 울기 시작했다. 엄마의 유언을 지키고 싶지 않았다. 결정할 수 없었다. 하지만 언젠가 엄마가 말한 그 상황은 올 것이다. 싫어도 선택해야만 하는 운명이 되었다.



 하루는 엄마가 시를 쓰고 싶다고 했다. 나는 엄마가 말하는 대로 적었다. 어느 정도 쓰면 읽어주고 다시 수정하기를 반복했다. 한 편을 쓰는데 거의 보름이 걸렸다. 그렇게 2편을 썼다. 50대 아줌마가 쓴 시에서 순수한 소녀의 감수성이 느껴졌다.



 엄마의 일기장을 만들기로 했다. 단 둘이 있을 때 엄마에게 일기를 쓰자고 권했다. 첫날부터 문제가 생겼다. 일기를 쓰다가 엄마는 화를 냈다. 하기 싫다며 꺼지라고 했다. 내가 엄마의 말을 못 알아 들어서 였다. 우리에게는 인내가 필요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엄마는 못 알아듣는 나를 봐주며 열심히 일기를 썼다. 나중에는 엄마가 먼저 쓰자고 할 정도로 열정적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엄마의 입은 움직이지 않았고 한 문장을 쓰는데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리게 되었다. 엄마는 많이 지쳐갔다. 일기의 장문은 점점 단문이 되어갔다. 단어 하나에 점점 많은 의미가 담겨졌다. 엄마는 이제 알았을 거다. 내가 왜 일기를 쓰자고 했는지. 언젠가 이 일기장은 유언장이 된다는 걸.



 이제 엄마는 서있기도 힘들어졌다. 항상 누워만 있게 되었다. 집 밖으로 나가는 날을 달력에 별 모양을 칠 정도가 되었다. 집에만 있는 엄마는 무슨 생각을 할까 궁금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엄마의 일기장을 봤다. 엄마는 많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 모든 생각의 주제는 하나였다.



가족.



 “밤에 딸과 오랜만에 얘기를 했다. 여러 가지 얘기를 했지만 분명히 변하지 않겠지만 조금은 바뀌겠지? 사실 생각하면 이것도 잘하는 일이 아닌가? 미안하고 고맙고 말로 어찌 다 할 수 있을까.

 20대에 할 일을 껑충 뛰어넘어서 없어진 것처럼 내 인생이 아니라 가족의 삶을 공유하면서 내 의지와 상관없이 살고 있지 않은가. 모두가 힘들지만 내 딸이 더 많이 힘들어한다. 그런데도 다 알지만 조금만 잘못하면 다른 사람보다 내 딸한테 더 많이 화를 낸다.

 내 아들은 컴퓨터로 일을 한다고 대문 밖을 나가지 않는다. 나는 걱정된다. 우선 밥을 제대로 안 먹고 운동도 안 한다. 아들의 몸이 망가지는 소리가 들리는 거 같다. 저렇게 지내다가 잘 못 될까 걱정이다. 시간 배정을 잘해서 건강한 생활을 했으면 좋겠다.”




부르다가 부르다가

온몸으로 소리쳐도

안개처럼 사라지네


들을 새라 들을 새라

솜방망이 틀어 먹고


일분만 도도리 표

눈물 씨앗 만들었네


쪼그라든 몸과 마음

벙어리 냉가슴


저산 끝에 걸터

앉아 있는 해

빨리 가라 손짓하네


- 엄마의 시 1





같이 있어 좋아하는 바보상자 내 친구


얼음 땡 된 나를 위해 화려함을 뽐내네


눈물 나면 달래주고 슬퍼하면 웃게 하는 

고마운 내 친구


누웠으면 옆에 있고 옆을 보면 앞에 있는

바보상자 내 친구


심심할까 날밤새니 토끼눈이 되었네


- 엄마의 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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