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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신영 Oct 09. 2020

가을 선물

요즘 퀼트를 다시 하면서 인형도 만들어 보고,

필요한 동전 지갑도 만들었다. 부엉이가 달려 있어 딸에게 주니

너무 좋아했다.

우선 앙증맞은 모습에 귀엽고 사랑스러운 동전 지갑이 인기였다.

스냅 지갑도 예뻐서 많이 만들고 싶으나, 조금 어렵고 힘들다.

그리고 스냅을 사야 하는 불편이 따른다.

부엉이 동전 지갑은 천의 색깔을 잘 맞추어 만들어 가지고 있는 여러 종류의 지퍼에서 적당한 것을 달면 되기 때문에 우선 손쉽다.

그래서 동전 지갑을 한 개 더 만들기로 하고 밤새워 만들었다.

그녀가 좋아하는 보라색 천을 고른다.

천을 색깔 맞춰 자르고 배열도 해보면서

부엉이 만들 천을 짙은 색, 옅은 색 찾아가며 도안을 그리고 오려 놓는다. 잎사귀 천과 함께.

준하 맘을 주기 위해서다. 

준하 맘은 앞동 101호에 사는 43세의 여자.

막내 남동생 나이와 똑같다.

성도 안 씨다.

그래서 언니 동생 하기로 했다.

그녀는 6월에 이사 왔다.

5월 내내 집수리를 했다.

집수리 과정에서 이웃들과의 마찰 때문에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

이 빌라 단지는 사람들의 마음이 퍽 폐쇄적이고 인간미가 없다.

이웃이 이사 와서 집수리를 하는 동안 자신들의 집에 불이익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자신들의 집 보다 두드러져 보일까 봐라는 생각이 들어 눈에 불을 켜고 하나하나 간섭을 했다.

데크를 고치는데 자신들과 너무 동떨어진다고, 어울리느냐며 반박을 하고, 구청에 신고를 해댔다.

뜰에 있는 소나무 가지 하나 잘라 냈다고...

구청 직원이 와서 보곤 기막혀하고 돌아갔단다.

너무 하찮은 일에도 핏대를 세우며 삿대질을 하고 열을 냈다.

어이가 없는지 준하맘은 아무 말도 안 하고 그냥 지켜보기만 했던  기억이 난다.

조금이라도 젊은 사람이 집을 예쁘게 꾸미기 위해서, 이것 저것 디자인에 맞게 자재를 쓰는데도 예쁘게 보어 넘기지 않고, 사사건건 시비를 걸었던 이웃들.

특히 이층의 나이 많은 할머니는, 나이에 맞는 포용력은 아랑곳없고 아들 며느리와 함께  악다구니를 쓰며 얼굴을 붉혔다.

나이 든 사람의 존경심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 할머니 때문에. 나이 어린 그녀의  아이들은 나쁜 이웃사람들이라는  경계심만 커졌다.

앞집에서 그들을 바라보며 참으로 어처구니없음을 느꼈었다.

잘 사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빌라의 사람들이 어쩌면 너그러움도 없고 팍팍한지 다만 놀랠 뿐이었다. 

꽃을 좋아하는 그녀는 꽃도 많이 가꿔 마루를 깔고, 운치 있게 원목으로 난간을 두른  기둥마다에

화분을 매달고, 꽃을 심었다.

오가는 사람들은 저절로 기분이 좋아질 것 같은데...

이쁜 집을 바라보는 마음은 언제나 흐뭇하다. 꽃무늬 커튼이 보인다거나, 하얀색 레이스 커튼이 살짝 드리워진

예쁜 창 너머로 보이는 사람들은 마치 동화 속 사람들처럼 여겨지기도 하지 않는가? 

그 준하 맘이 갖은 마음고생을 다 하고,

집수리를 할 때마다 마주칠 때 조용한 웃음으로 인사를 나누던 그녀와 여름을 나면서 가을을 같이 맞았다.

호야랑 산책이라도 나가다 마주치면

"차 드시러 오세요~"

미소를 머금은 조용한 얼굴로 목소리도 가녀리게 울려 나온다.

그러면 그 목소리에 이끌려 거절을 못하고(늘 바쁘니까) 

"호야 산책시키고 들를게요" 

호야는 낯선 이들에게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데도 그녀에게는 며칠 가지 않아 마음을 활짝 열었다.

중3 딸, 초5 아들, 유치원 아들. 삼 남매가 밝게 호야를 좋아한다.

그들도 이사하자마자 사모예드 강아지를 데려 왔다가, 이웃의 민원으로 도로 갖다 주는 아픔을 겪었기에, 호야는 마냥 그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가끔 준하맘은 문자를 보낸다.

내가 꼼짝 않고 있으면

'비가 오시네요. 커피 생각이

나네요. 괜찮으시면

커피 한잔 주세요^^

준하맘~        '

이렇게 문자를 보내는 그녀에게 만사 제쳐 놓고 건너오라고 응답 문자를 보내면, 그녀는 한 달음에 건너온다. 

그리고 커피 한잔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다.

그래서 그녀가 우울증을 앓고 있는 것도 알게 되어 안타까운 마음이다.

그런 그녀에게 어느 날 부엉이 지갑을 만들어 놓고 그녀를 기다렸다.

"가을 선물이야" 하며 빈 지갑을 줄 수 없어

호야랑 산책하며 모아 놓은 꽃씨를 넣어 건네주었다.

맨드라미, 채송화, 수세미, 옥잠화, 씨앗등을...

내년 봄에 더 많은 종류의 꽃들을  가꾸어 보라는 나의 말에 환하게 웃으며 좋아하는 그녀.

"이렇게 힘들게 만든 것을 받아도 되나요?"

난 그저 행복하다고 말한다. 받는 사람이 기뻐할 것을 생각하며 만들기 때문에 아주 좋아한다고. 그러면 그녀는

"저도 바느질로 이것저것 만들어 보지만 정말 힘들어요..." 

가끔씩 산에 갔다 오며 새끼 밤톨, 도토리, 분꽃 씨앗, 제비꽃 씨 등을 받아다  그녀의 테라스 난간 위에 얹어 놓으면,

"내년 봄에 잘 가꿔야지"

하며 좋아한다. 

어제도 그녀는 기분이 엄청 많이 다운되어  학부형 모임에도 가지 않고 내게 오려고 나서는 중이라며 테라스에 서 있다가, 호야를 안고 나가는 나를 만났다.

얼른 데리고 들어와 차 한 잔을 마시고, 유부 초밥을 만들어 먹여 보냈다. 그리고 호야랑 공원에 갔다가 산수유 열매가 붉게 익어 따도 될 것 같아 그녀를 불렀다.  

산수유를 따면 마음도 밝아지고 혹 기분이 전환되지 않을까 해서...

햇살이 금싸라기 같이 쏟아지는 한 낮.

그 햇살이 산수유 붉은 열매를 더욱 투명하고 붉게, 빛이 나게 하는 그런 시간을 가까이 만져 보면 어떨까 해서... 흔쾌히 따라나서서 우린 같이 산수유 열매를 땄다. 요즘은 산수유 열매 음료가 사람들 몸에 좋다고 조금 늦게 따면 아줌마 부대들이 와서 다 따가고 없다고 웃어 가며. 


 산수유는 보통 10월 중순 상강 후에 수확을 하면 좋단다.

보통 씨는 빼고 과육만 말려서 쓰는데, 열매를 그대로

 말려 30~60g을 600ml의 물에 넣어 은근한 불에

30분간 달여 건더기는 거르고 찻잔에 따라 마신다.

산수유는 인삼, 오미자, 구기자, 감초, 계피 등과 배합해서

달여도 좋다.

"산수유 달여서 자기가 먹어야겠다.

마음의 불안에도 좋다고 하네"

"그래요?"

산수유는 허리와 무릎을 따뜻하게 해 준다.

과로하고 신체가 허약해서 오줌이 잦을 때(빈뇨)도 좋다.

여자들의 생리혈이 불규칙하고 많을 때도 조절해준다.

오줌싸개 아이들에게도 좋다.

그러자 곁에서 듣고 있던 그녀의 딸이

"만병통치약이네. 이것만 먹으면..." 하자

그녀가

"남자들한테도 좋대요."

"남자들의 발기부전에도 효가가 좋대." 말하자

( 이때 그녀의 딸이 '하하하... 박장대소를 하며 까르르 넘어간다.)

어제 따놓은 산수유를 씻어 테라스에 펼쳐 놓고 빛 좋은 가을 햇살을 끌어다 산수유를 말린다. 

어제의 다운된 기분이 오늘까지 산수유는 바구니에 그대로 뜰 한 귀퉁이에 버려져 있었다. 

어제 놓인 그 자리에 그대로.

어서 씻자. 내가 서둘러 일을 시작하자 그녀가 거들었다.

잣나무 밑에 아기 잣나무 몇 포기 퍼 온 것도 그대로...

삽을 들고 설치자 그것도 마무리.

아기 잣나무를 바라보며 이쁘다고 감탄하는 그녀를 뒤로 하고

돌아 섰다. 


이젠 됐다. (2005)

    

*photo by 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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