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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신영 Jan 04. 2022

눈물 바람의 주일이 지나고

언니! 간증干證해야겠네

주일 하루 눈물 바람을 하고 월요일을 맞았다.

신년  주 첫날, 난 무엇을 해야 할까?

우선 서울시 일자리 지원한 것이 될지 안 될지 가늠하기 어려워 주민센터로 발걸음을 옮겼다.

담당자에게 문의하니 개인에게 문자가 오지 않으면 탈락된 거라고 한다. 실망의 빛이 얼굴에 나타났는지

"아직 오전이니까 오후까지 기다려 보세요." 한다.

아, 이것도 경쟁자가 많은 모양이구나. 그동안 1년 넘게 놀았는데 다행히 서울시에서 500개의 일자리를 만들어 준다고 신청을 하라 해서 지난달에 지원을 했다.

순진하게도 당연히 1월부터는 일자리가 내게 주어 질 줄 알았다. 1 지망으로 지원한 구청의 여권 민원과와 2 지망으로 지원한 박물관 도서 쪽이 안되더라도 허드레 일 같은 쪽이라도 올 줄 알았던 나는 얼마나 세상을 모르는 사람인지 또 한 번 실감할 뿐이었다.

오후까지 문자가 오려면 기다려야 하니 우선 집을 알아보러 다시 나가 보기 전에 이 쪽 분야를 잘 알고 있는 지인에게 문자를 보냈다. 찾아 가면 만날 수 있느냐고 하니 퇴직해서 어제 짐을 다 챙겨 왔다고 답이 온다.

이런저런 말을 주고받다가 만나서 점심을 먹기로 약속을 정한다. 아는 부동산 언니가 있으니 연락을 해 놓겠다. 예산이 얼마 되느냐. 어느 선까지 하면 되느냐 물어본다.  경제 사정을 포함해 일목요연하게 답을 했다. 몇 가지 가능한 방법을 제시하면서 집 구해 줄 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한다. 천군만마를 얻은 듯이 이삼일 동안 소화 불량에 걸려 열이 오르고 두통에 시달렸던 것이 사라지는 느낌이다.


약속한 점심시간에 만나 근처 설렁탕 집에 가서 뜨끈한 국물로 속을 채우고 카페로 들어가 몇 개월 만나지 못했던 그 사이의 일들을 얘기하며 준비해 간 파우치와 무릎덮개용 손수건을 선물하니 환히 웃으며

"전에 준 것도 너무 잘 쓰고 있는데..."

"여행 갈 때 속옷 몇 벌 넣으면 딱 좋을 거야."

"꼭 여행 가야겠네."

하하하~ 서로 웃으며 본론은 집 구하기. 내 앞에서 바로 전화를 걸어 부탁한다.

"며칠 이 동네 다 돌아봤는데 너무 비싸서 아무래도 지방으로 내려가야 할 것 같다."라고 하니까

"지금 빈 집이 하나 있으니 차 다 마시고 한 번 가보자."

그동안 뭐하고 지냈냐. 난 그냥 농땡이 부리고 살았다. 작년에 일 그만두고 브런치에 글 쓰며 놀았다. 브런치가 뭐냐며 묻는다. 그런 거 모르고 있었다면서. 은근히 독자 한 명 만들게 생겼네 하며 앱을 열어 설명하고 글과 사진을 보여 줬다. 내 원칙은 관심 있는 사람에게만 설명을 한다는 것.

"어머, 어머. 언니는 세상에... 이 사진도 다 언니가 찍은 거야? 어떻게 해야 볼 수 있어?"

그녀의 폰을 열어 어플을 깔고 구독을 누르고, 알림 설정까지 해준다.

 엄청 좋아해 주는 그녀에게 고맙다며 커피까지 풀로 쏜다. 집도 구해 준다니 내 걱정 모두를 해결해 주는데 커피값이 아까울쏘냐.

수십 년 직장생활을 하고 정년퇴직을 하고 난지 하루 이틀, 아직도 아침이면 출근하던 습관으로 꿈인지 생신지 가늠이 잘 안 된다고 한다. 무릎덮개용 면 손수건을 만지작 거리며

"나도 재봉틀 배우기로 3개월 과정 신청했어. 아는 분이 하도 좋아서 성남에서 하게 됐다." 고 한다.

"잘했어. 배워두면 좋아. 심심하지 않아."

얘기 도중에 부동산에서 전화가 왔다.

'올수리 되었다고? 냉장고 세탁기 다 있다고? 알았어 한 군데 들려서 그 집을 보고 부동산으로 갈게.'

전화로 나누는 대화를 들으니 괜찮은 곳이 나온 것 같다.

"비어 있는 집이니 한 번 보고 그쪽으로 가자'"

며칠 부동산을 돌아보고 전화해보고 했던 나보다 이 방향으로 역시 빠삭한 그녀 답게 앞장서서 걷는 그녀를 쫄래쫄래 따라가며 마음속엔 이미 가전제품이 다 있는 올수리 되어 있는 집으로 가닥이 잡혀 간다.

그녀가 데리고 간 집은 예산을 조금 웃돌기도 했지만, 혼자 지내기엔 방이 3개라서 너무 넓다. 난 원룸이어도 좋은 상황이어서 작업실과 침실만 있으면 좋다며 말을 했다.

"이 집은 너무 크다. 내가 제일 못하는 게 청소랑 정리하는 거야. 그리고 가전제품을 전부 사려면 힘들겠어."

"그래, 알았어. 부동산으로 가자."

가다 보니 엊그제 들려서 한 참 얘기를 나누었던 교회 옆의 부동산이다. 옆 동네도 괜찮다고 했더니 그럼 전부 연락해(함께 공유한다고 한다.) 놓으면 월요일쯤 연락이 올 수 있으니 기다려 보자고 하던 곳이다. 그래도 문전 박대하지 않고 어느 정도 얘기를 들어주던 부동산 여사장님이라서

"여기 왔다가 한참 얘기하고 갔던 곳이야."

"그래요? 아는 언니인데 교회 권사님이셔." 한다. 부동산 상호가 옆의 교회 이름과 똑같다.

인연도 있으려면 이런 인연이 있는 거구나. 서로 놀랍다.

자동차를 타고 새해 첫 번째로 나왔다는 그 집으로 향한다.

지하철역과도 그다지 멀지 않아 다행이고 산책하기 좋은 고분군과 호수 산책도 충분한 걸음으로 다닐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우선 집이 깨끗해야지...

빌라가 많은 곳으로 가 그 동네의 부동산 관계자가 올 때를 기다렸다가 문을 열고 들어 가 보았다.

수리를 한지 얼마 되지 않아 집은 깨끗하고 재봉틀을 놓고 작업할 수 있는 방, 침실. 내가 원하는 방 두 개에 다행히 가전제품이 에어컨까지 다 갖춰져 있다.

대부분의 짐은 큰 애 집에 있지만 가져올 수 없으니 막내 집에 있는 물건들만 가져오면 되니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을 것 같다. 함께 간 그녀는 한 푼이라도 아끼게 해 주려고 관리비를 조금만 깎아 달라고 중개사에게 부탁을 하지만 난 이 정도에도 흠감할 뿐이다.

돌아 나오면서 이 무슨 조화인가.

어제까지 집이 없어 눈물, 콧물 바람이었는데 하나님의 은혜를 실감하는 것이다. 눈물로 기도하면 들어주신다고 하더니...

추운 겨울 묵묵히 꽃눈을 달고 봄을 기다리는 희망의 목련 .

"하나님이 언닐 많이 사랑하시네. 언니, 간증干證해야겠다."

"그래 할게, 해야지." 하며 둘이 부둥켜안고는 다시 눈물이 글썽거렸다.

그녀는 나를 보고 영이 맑아 보인다는 과분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똑똑한 그녀가 직장에서 퇴직할 때까지 수많은 사람들을 상담하면서 어느 정도의 관상을 볼 줄 안다고 한 말이 떠오른다. 걱정하지 말라고 다 잘 될 거라고 했던 말까지.

하루 전까지 암울했던 기분에 지배했던 두통까지 날려 보내고, 편안한 마음으로 두 딸들에게 차례로 전화를 넣어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해줬다.

엄말 편히 모시지 못해 미안하다는 딸.

"내가? 아직 젊은데, 무슨?????"


그녀는 언니 이제 조용히 머리 식히고 글 쓰고 정리해서 출판사에 공모도 하고 그러라며 내일처럼 좋아해 준다. 그녀 덕분에 가장 큰 과제였던 집 문제가 해결이 되었다.

다시 일자리를 찾기 위해 복지회관으로 발길을 돌렸다. 중간에 전화 온 카페 친구는 일자리와 집이 어떻게 되었냐며 묻는다. 친구의 칠순 중반의 오빠는 고양시에서 쓰레기 줍는 어르신 일자리로 3시간씩 노인들을 만나 대화 나누는 일이 좋아서 신났었는데 잘렸다며 동생에게 아는 사람 많으니 취직을 시켜 달라고 왔더란다.

"사람들 하는 말이 맞네. 일자리 줄었다는 게. 그 일 해 먹고살던 사람들은 실직해서 어떻게 살아가냐?"라고 한숨에 땅이 꺼질 것 같다.

취업을 안 하고도 여태 살아왔듯이 앞으로도 살아갈 수는 있겠으나, 아직까지 글쓰기로 전업을 못한 나의 사정도 있는 것 같다. 마냥 게을러서 출판사에 공모도 한번 해보지 않았고 편안하게 유유자적 창릉천을 거니는  백로나 왜가리, 물오리들 마냥 살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그들의 세계를 들여다보면 살기 위한 치열한 싸움이 있을진대 겉으로 보는 평화로움이 진실 평화로움이 아닐 것이라는 먹이 다툼, 그들의 삶의 현장일 텐데...

나도 겉보기엔 한없이 평화로워 보인다. 글 다운 글도 써내지 못하면서 작가라는 명함을 내밀고 있으니 가당찮다. 며칠 전에 어느 작가분이 그동안의 글을 손보고 목차 만들어서 책을 한 권 만들라고 말을 한다. 그래서 성향이 맞을 만한 곳에 투고하라고 조언을 해줬다. 자신은 자잘한 응모전에만 상을 탔기 때문에 출판사 응모는 엄두도 못 내고 있단다. 이번에 신춘문예에 응모해서 당선되면 그동안 쓴 글 손봐서 출판사에 응모를 하려고 했는데 낙선했다고 한다.

"작가님은 신춘문예 당선 작가니까 충분히 메리트가 있지 않느냐."라고 말을 하지만 나 자신 나의 실력을 너무 잘 알기에 엄두도 못 냈고 생각도 못하고 있다. 그런데 집을 내 일처럼 발 벗고 구해준 그녀도

"언니, 이사하고 나서 조용히 글만 쓰세요. 김형석 교수도 글이 막힐 때는 바닷가의 집무실에 가서 머리도 식히고 집중해서 글을 쓰신답니다. 언니도 집만 안정되면 언니 하고 싶은 일 하면서 글만 쓰세요." 하며 당부 아닌 당부를 하고 갔다.


새해엔 안정을 찾고 좋은 글을 쓸 수 있을까?

부산으로 삼송 창릉천으로 마음이 허허로우면 훌쩍훌쩍 떠났던 방랑의 내 기질이 이제 차분해지려나?

아니 지금도 집순이 노릇을 잘하고 있는데 작심하고 한 번 해봐야 하는 숙제를 가슴속에 담아 본다.

*photo by 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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