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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신영 Jan 03. 2022

너희도 은혜가 보이니?

오리의 물구나무서기

신년 첫 주일 예배에 참여하기 위해 들어 선 예배당에 들어가 자리에 앉아 기도하는 순간 눈물이 맺혔다.

요즘 마음이 많이 힘들었는가 보다. 지금까지 어려운 중에도 늘 지켜 주신 주님의 은혜에 절로 눈물이 났다.

교인이 얼마 되지 않아 전교인 찬양을 하는 오늘의 찬양곡은 <은혜>이다.

예배 시작 전에 연습을 하는데 첫 소절부터 흐르는 눈물이 아롱져 글씨가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마스크 속에서는 콧물까지 흐르고 있다.


내색을 않으려 애쓰며 살아온 지난날들이 주마등처럼 떠오르며 마치 파노라마처럼 살아온 삶의 나날이 펼쳐지며 매 순간마다 위기를 헤쳐 나갈 수 있던 것은 보이지 않은 그분의 손길이었음을 고백하게 된다.

하나님이든 부처님이든 누구나 자신들이  믿는 그분을 떠올리며 살아가고 있음을 안다. 난 그저 그동안 영악하지 못하고 현명하지도 못했으며 냉철하지도 못한 자신을 스스로 원망할 때가 많았다.

왜 이다지도 어리숙하고 눈치까지 없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전부 내 맘 같은 줄 알고 행동했기에 남이 나를 욕하는 줄도 모르고 살아온 적도 많다는 것을 안다.

그래도 요즘은 자신을 돌아보며 깨달아가고 있다.

숙고의 시간도 많이 갖으며 말을 아끼며 살고 있다. 좋으면 좋다고, 싫은 것은 죽어도 싫어서 굳어지는 얼굴이 되어 금방 표시가 난다. 그러할진대 마음속의 좋은 감정은 또 숨기지 못하고 바로바로 표현한다.

좋은 것은 폭풍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좋은 말만 하고 살아도 부족하기에 되도록 싫은 말을 하며 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독립을 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으나 턱없이 오른 집값 때문에 서민들의 고충은 말도 못 하는데, 그 한자리에 나도 끼어 함께 고민되며 위축되어 심란한 나날을 보내고 있으니, 예배 중에 당연히 눈물 많은 나는 그저 눈물만 맺힐 뿐이다. 세상 어디를 둘러보아도 내 한 몸 편히 누일 곳이 없어 막막할 뿐이다.

오늘따라 설교 말씀도 복福은혜恩惠에 관한 말씀인데 첫 줄부터 눈물샘을 또 자극한다.

 합독하는 성경 말씀에 '...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

<은혜>의 찬송, 은혜의 말씀까지 예배의 시간을 보내고 권사님들께서 사주시는 점심과 맛있는 커피까지 먹고 막내 집으로 가기 위해 교회 차를 타고 삼송으로 향했다.

"다리 건너 내려 주세요~"

"걸어가시게요? 아파트 쪽으로 가려고 했는데."

"네, 날이 좋아서 걸을래요~"


산책을 좋아해서 집 근처에서 내리지 않고 조금 먼 곳에서 내리는 나는 요즘은 철새인 오리와  기러기들이 많이 오는데 그 애들이 궁금하고 다시 보고 싶었다. 엊그제 치과에 다녀오면서 보았던 왜가리 오빠도 다시 한번 보고 싶은 것이다.

기러기는 서삼릉 옆 종마장에 가면 떼로 몰려와 풀을 뜯는 모습이 장관인데 기러기 떼 보러 서삼릉도 한번 가봐야겠다.


날은 더없이 좋아 백로와  오리들이 소풍 나와 오종 종종 모여 있다.

따스한 햇살에 몸을 맡기고 백로와 오리들이 졸고 있기도, 날갯짓도 하며 어울려 놀고 있다. 평화로운 풍경에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예배 시간 내내 눈물로 얼룩졌던 마음이 사르르 눈 녹듯 사라지니 혼자서 쑥스럽고 부끄러운 마음이 된다.

"집사님 이제 울지 말아요. 좋은 일 있을거예요."

차에서 내릴 때 장로님께서 집은 잘 구해질 것이라고 염려하지 말라고 격려를 해주셨다.

그래요. 다 그분의 뜻이 있을 거예요. 그동안 고 싶을 만큼 힘들었을 때도 지켜 주셨는데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몇 백배 좋아져서 이렇게 잘 지내고 있는데, 또 마음이 약해졌나 봅니다.


모래톱엔 대백로 두 마리가 산책하는데 고개만 보이는 것마저 이토록 아름다웠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언제나 한 마리만 잘 보였는데 저 큰 백로가 두 마리나 보이다니, 행운처럼 느껴진다.

늘 왜가리 한 마리, 가마우지 한 마리 자주 보였는데 오늘은 얘들이 소풍 나오기에 더없이 좋은 날인 가보다.

얼마 전 어지럽히던 퇴적층과 물가에서 자라던 자잘 버들가지 숲, 마른 갈대들을  정리하느라 포클레인 소리가 소란했었는데, 어느새 말끔히 정리되고 물길은 넓어지고 시야가 확보되어 철새들 놀이터가 아주 좋아졌다.

너른 물 마당이 마음에 드는지 멀리서 놀러 온 친구들과 헤엄도 치고 물구나무서서 물속을 구경하는 오리들.

귀요미들을 바라보다 훌쩍 날이 저물어 가고 있었다.

오리는 물구나무서기 놀이에 빠져 있고 나는 그 오리 구경에 빠져 빠져 자꾸만 물가로 발을  옮기다가 아차, 애들이 겁을 내겠구나. 돌아 는데 물속에 머리를 집어넣고 무슨 구경을 하는지 몹시 궁금했다.

그 옆에서는 작은 물고기 한 마리 낚아채어 날아 간 친구를 쫓아 티격태격, 작은 백로들은 뺏으려, 안 뺏기려 하다가 돌아서기도 하는 것이 포기도 빠르다. 그래 너희들은 참 착하기도 하구나. 사람도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 서로 물고 물리며 빼앗느라 얼마나 혼탁했는지 모르는데 부디 재밌게 놀며 배불리 먹으렴.

백로와 오리가 어울려 놀듯 우리도 사이좋게 이 세상을 살아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제 나 자신의 걱정도 내려놓자.

그동안 지켜주신 은혜가 충만하여 아슬아슬하게 모든 것을 넘겨 온 것은 사실이다.

장로님 말씀대로 이제 눈물은 그만, 올 한 해 차분한 마음으로 노력하여 더욱 단단한 사람이 되자.

많은 사람들이 힘들고 외로운 이 시대에서 나만이 힘들다고 투정을 부릴 수 없는 것 아닌가.

새해를 맞아 찬란히 떠오른 햇살이 온누리를 밝히며 희망을 쏘는데 발을 맞춰 힘차게 나가보자.

오리 물구나무서기

*photo by 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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