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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신영 Apr 23. 2023

밑반찬 만들기

얘 전엔 몰랐어요.

여행을 다녀와서 나흘동안 정신없이 근무하다 보니

반찬이 똑 떨어졌다. 한 끼 먹는 밥을 그야말로 김치 한 가지로 먹게 생겼다.

마침 휴무일, 뭐라도 만들어야 할 것 같다. 휴무일에 만들어야지 생각하며 집에 있는 호두와 볶으려고 잔멸치를 사서 휴게실에 가니 누군가가 멸치는 견과류와 볶으면 안 된다고 말한다.

오잉?

왜?

반찬가게에 가보면 너도나도 호두나 아몬드를 넣어 맛나게 볶아서

대에 진열되어 있지 아니한가?

또 그동안 하율이에게 보낼 때마다 호두가 몸에 좋다고 꼬박꼬박 넣어 볶았는데.

"언니, 텔레비전에 박사님들이 나와서 얘기하대요. 통마늘 넣고 볶아야 좋다고.."

바로 검색해 보니 호두나 아몬드 등에 칼슘의 흡수를 방해하는 피트산 성분이 많고, 피트산 성분은 단단한 씨앗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내는 천연 식물 항산화제며 일종의 알갱이 보호용 독성 물질인데 사람에게 큰 해를 끼치는 것은 아니지만 장내에서 칼슘 흡수를 방해하고, 그밖에 마그네슘, 아연, 철분 등의 미네랄 흡수도 방해한다고 나온다.

즉시 딸에게 전화를 해서

"하율이 멸치 볶음 줄 때 호두 다 빼고 멸치만 줘라. 호두는 그냥 따로 먹게 하고, 너도 따로 먹어~"

왜 그러냐고 묻는 딸에게 칼슘이 어쩌고 저쩌고... 하며 열심히 설명을 하는데

"엄마, 하율이 호두 안 먹어요. 멸치는 잘 먹는데.ㅎㅎㅎ~" 한다.

"??? 하하하하하~"

동생뻘인 동료랑 마침 휴무일이 같아 그동안 모아둔 옷가지와 인형등을 캐리어에 담아 놓고 만나자 했더니

볶은 통깨랑 껍질 깐 더덕, 중멸치 머리 때고 내장을 빼서 조리만 하면 되게끔 가져왔다.

이 동생은 근무하면서 손님들이 버리고 간 일회용 비옷, 우산, 아이스 링크에 버려지는 장갑을 모아 시골에 보내고 있는데, 그 일을 알고부터 근무지 쓰레기통이나  주변에서 나오는 것들을 모아 갖다 준다.

이곳에서는 물건이 흔해 버려지는 것들이 농사짓는 곳에서는 요긴하게 쓰이기 때문에 조금만 수고하면 필요한 이들에게  도움이 된다니 뿌듯한 마음이 되어 좋다.

이 동생은 지난겨울에 시골서 올라온 김장김치도 가져왔다. 더덕도 처음엔 그냥 가져오더니 손에 즙이 묻는다고 껍질을 벗겨온다. 난 무슨 복이 이렇게 많은 걸까?

참깨도 볶아다 주는데 혼자 먹어야 일 년 내내 줄어들지 않아 막내가 오면 나눠 주기도 한다.

이번에도 딸에게도 주라며 넉넉히 볶아 왔다.

껍질 벗긴 도덕, 통깨. 손질한 중멸치.
견과류 대신 통마늘과 꽈리고추를 넣어 볶는다.

오늘은 오랜만에 물김치도 담가서 사이다처럼 톡 쏘는 시원한 국물을 먹어 보고 싶다.  물김치는 우리 몸에 이로운 유산균이 듬뿍 들어 있다니 자주 담가 먹어야겠다.

딸들과 있을 때는 자주 담갔었는데 혼자서 귀찮다고 안 했다. 좋아하면서도.

 김치도 간단히 맛김치로 담아 먹으면서 게으름을 떨었다.

약식으로 담근 물김치.

예전 같으면 물김치 육수에 홍고추, 양파, 사과, 배, 마늘을 믹서기에 갈아서 찹쌀죽에 넣은 다음  베보자기에 꼭 짜서 국물을 만들었는데 이젠 양파, 마늘, 사과는 그냥 썰어 넣어 국물에서 맛있게 우러나라고 명령해 본다.

참 이상하기도 하지. 가족이 먹을 음식엔 온갖 정성을 들이면서 자신이 먹는 거엔 조금 소홀해지는 심리는.

더덕을 살짝 볶아서 영년장에 무침.

전에 가져온 더덕은 생으로 고추장 양념에 무쳤는데 냉장고에 오래 있게 되면서 물이 생긴다. 이번엔 프라이팬에 살짝 볶아 익힌 후에 양념장에 무친다. 물김치 담고 남은 재료로 피클도 담는다. 피클 만들기도 아주 쉬워졌다. 예전엔 소스를 끓여 붓고 이삼일 뒤에 따라 내어 다시 끓여 식혀 붓기를 서너 차례 한 뒤에 먹을 수 있었는데 요즘은 피클용 소스가 많이 나와 손쉽게 만들 수 있어서 엄청 편해졌다.

밥이든 반찬이든 하루 한 끼만 소비하기 때문에 냉장고에 오래 저장이 되어 맛이 없기도 하다. 저녁은 회사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하기에 요즘은 반찬도 갖고 다닌다. 사실 현미밥을 먹기에  밥만 가지고 다니다가 이제는 반찬도 조금씩 담아 가지고 다닌다. 완전 저녁 도시락을 갖고 다니게 된 것이다.

"언니, 안 귀찮아?" 하며 동생들이 묻는다.

"안 귀찮아. 반찬이 안 없어져서 그래."

"하긴, 먹는 사람이 없으니..." 그런다.

자주 식재료를 선물하는 동생에게  멸치 볶음과 더덕 무침을 한통씩 담아 출근길 지하철 역에서 만나 건넸다.

"니 먹지  얼마나 된다고  이걸 해 와요. 앞으론 것도 못 주겠네." 한다.

이튿날 만나서

"입맛에 맞았는지 모르겠네?" 하니

"남편 도시락 반찬 넣어줬어요. ㅎㅎ~" 하면서

"남편이 수고롭게 이걸 해 오셨나? 앞으론 못 드리겠네 하더라고요." 한다.

"혼자 다 못 먹어. 나눠 먹으면 좋잖아~"

직장에서 때론 힘들기도 한데 가족 외에 진심으로 걱정해 주는 사람들이 곁에 있다는 것은 큰 복인 것 같다.

이 동생은 동료애 이상의 동기간의 정을 느끼게 해 준다. 친자매가 없는 나로서는 많이 의지가 되기도 하는데 나뿐만 아니라 몇몇의 동료에게도 멸치, 더덕도 한 상자씩 사서 손질해  나눠주는 마음이 넉넉한 사람이다.

진정으로 염려해 주며 힘이 되는 동생들이 있다는 것은 앞으로도 꾸준하게 일을 할 수 있는 든든한 조력자이며  힘의 원천이기도 하다.


*피트-산 ; 나무 열매나 곡류의 외피에 많이 함유되어 있는 천연의 식물성 항산화제. 무기질류의 소화 및 흡수를 저해하는 작용을 한다.

*photo by young.

*다음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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