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맞았다고 떠들썩하니 들뜰 수도 없는 상황은 시국이 어수선하고 연일 강추위로 인해 즐기던 산책도 나가지 못하게 되어서다. 그저 숨죽이고 살아야 하는 것이 최선인 것 같은 요즘 조용히 새롭게 독서에 매진하며 시간을 보낸다.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면 큰 사고 없이 잘 살아 냈고 값진 경험들을 눈물 나게 했다는 것이 가장 인상에 남기도 한 일 (새로운 직장에서의 일)은 다음 기회에 쓸 생각이다.
막내딸 덕에 다시 서울 생활을 하며 새로 글쓰기에 전념하기 시작한 일, 몇 해 전 부산에 내려가 자릴 잡고도 모교회를 나가지 못하고 교회와 멀어졌었는데, 고향 친구 덕에 개척교회 나가게 된 일도 가장 소중하게 자리 잡는다.
Daum의 브런치를 알았어도 그곳에 내가 글을 올리게 될 줄은 몰랐다.
글 쓰는 것을 잊지 않기 위해 문학 블로그라는 이름을 달고 가끔씩 이것저것 글을 올리던 내게 막내는 용기를 북돋워 주며 브런치에 작가 응모를 해보라고 일일이 코치해줬다.
글은 어렵다, 완벽하게 써야 대중에게 발표할 수 있는 것이다라는 생각으로 가득한데... 딸은 요즘은 크게 얽매이지 않아도 되고 언제든 다시 고쳐서 올릴 수 있다며 우선 시작을 해야 글을 쓸 수 있지 않겠느냐고 차근차근 얘기해 줬다. (머릿속의 고정관념- 완벽해야 한다. 그러나 마음을 느긋하게 먹어 보기로 한다.)
요즘은 무거운 글보다 재밌고 사이다 같은 글을 좋아하는 시대라는 얘기도 해주면서(그렇다고 무겁고 진지한 글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고 그만큼 다양해졌다는 말이에요) 막내의 차근차근한 가르침으로 브런치 작가 응모를 하게 되었고 삼사일 되던 날 브런치 이모티콘이 반짝하고 떴다. 브런치 작가에 당선되었다는 메일을 받고 참 좋았다. 안도한 마음의 하나는 이제 게으름 피우지 않고 글을 쓰게 되겠구나였다. 뭔가 시작을 하면 끈기 있게 하는 성격인데 약간의 게으름으로 그동안은 글쓰기보다는 몸을 움직이는 일에 더 시간을 할애했던 것 같다.
애지중지하던 호야가 떠나고 마치 공황 상태가 온 것 같은 상황에서 다시 직장을 구하려 하니 이미 나이가 들었어도 너무 들은 것을 실감했다. 모집 광고를 보고 면접을 같이 다녀준 아는 동생이 나라에서 무료로 직업 교육을 해주는 것도 있으니 고용복지센터에 가서 알아보는 것은 어떠냐고 이야길 해준다.
야호! 그런 것도 있냐며 당장 달려갔다.
고용센터 직원과 상담 후에 국비로 할 수 있는 교육을 먼저 정해서 정해진 교육기관의 서류를 구비해서 오면 된다고 친절하게 알려 줬다. 난 요리에 관심이 많아서 요리하는 것을 즐겼다. 오븐을 살 때 딸려 온 요리책을 보고 요리를 만들어 가족들, 이웃에게 즐거움을 주었었으니 체계적으로 배우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요리학원부터 먼저 찾아가 상담을 받았다. 사실 딸들은 엄마 요리 배우지 않아도 충분하다. 이제 힘든 일은 하지 마라며 반대를 했던 생각을 하며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각 층의 안내 문구에 패션학원이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아! 이거다. 어렸을 때부터 관심이 있던 분야라서 애들이 어릴 때 가정용 미싱을 사고 잠깐 재봉하는 것을 배워 간단한 옷을 만들고 소품을 만들었던 생각이 나서 패션학원 문을 열고 들어갔다.
결혼 후에도 계속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둘째 딸은 아기가 태어나면 엄마가 육아를 맡아 달라고 했다. 손녀 별 콩이가 태어나기 전에 시작한 패션학원에서 옷 만들기와 홈패션을 별 콩이가 태어나고도 몇 개월 더 공부했다.
예쁜 손녀딸에게 배내옷이며 각종 필요한 것들을 내 손으로 지어 입히고 싶기도 하고, 실력이 된다면 어른 옷도 만들고 나중에 형편이 되면 작은 공방이라도 차려야겠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배워 나갔다. 나이 어린 동생들과 배우는 일도 참 재밌었다. 열심히 한 덕분에 수료할 때에는 1등이라는 순위가 매겨진 수료장을 받았을 정도로~
그리고 연장으로 홈패션을 배워 생활에 필요한 소품들을 만들어 사용하는 데에 취미를 붙여 나날이 재미나게 지냈다. 그러면서 별콩이게 필요한 자잘한 것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침대 위에 놓을 매트며 첫 원피스, 첫 조끼, 첫 바지 등등 헤아릴 수 없는 옷들을 만들며 행복했다. 딸들과 사위의 파자마까지 영역이 넓혀져 갔다.
또한 성격이 뭐든 남들에게 주는 것을 좋아해 소품 하나 만들기를 배우고 나면 사용하기 좋은 것이면 나름 많이 만들어 주변의 지인들에게 선물하는 것을 즐겼다. 파우치, 스카프, 에코가방, 시장 가방 등 세 딸들에게 먼저 한 두 개씩 만들어 쓰라고 하고, 지인들에게 나눠주기 시작하면 꼭 필요한 것이라 좋아하니 그 맛에 다양한 소품들을 만들며 지내기를 몇 년 동안 계속했던 것 같다.
요즘은 작년부터 마스크를 만들어 사용하게 되니 마스크를 만들어 가족들과 사돈 가족들에게도 선물하고, 부산의 글 모임 지인들에게도 택배로 보내줬다. 손자수 까지 놓아 보내주니 액자에 넣어 놔야겠다고 했다. 그때는 미싱을 올려 오지 못해서 100% 손으로 다 만들었다. 손으로 만들면 미싱으로 만들었을 때보다 훨씬 고급지다.
그리고는 원석으로 마스크 줄을 만들기 시작했다. 평소에도 액세서리를 만들어 사용하는 내겐 마스크 줄 만드는 것도 액세서리를 만드는 일과 똑같았다. 마스크 줄을 만들어서 선물을 하면 열이면 열 모두가 목걸이 같다며 우선 목에 두른다. 예쁘다며 받는 이들 모두가 시중에서는 볼 수 없는 귀하고 값진 선물이라며 좋아했다. 역시 은은한 담수진주, 마노석, 호안석, 장미석, 옥수석 등은 만들어 놓으면 참으로 예쁘다. 좋은 원석에 반짝이는 크리스털로 매치시키고 매듭실을 이용해서, 안경걸이와 마스크 줄을 지치지도 않고 꾸준히 만들어 필요한 이들에게 기념일마다 챙겨 줬다. 엊그제 새해 선물이라며 친구에게 선물을 끝으로 마스크와 마스크 줄은 그만 만들어야겠다.
이제는 만들기보다 글쓰기에 주력하기로 마음먹었다. 독서도 더욱 많이 해야 한다는 것을 안다.
막내가 읽어 보라며 사주는 책들이 책꽂이에 한 권 두권 쌓여 간다. 브런치에 올라오는 작품을 읽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있는 내게 딸은 2020년 신춘문예 당선 시집을 읽어 보라고 건네며
"매년 신춘문예 당선 집, 문학상 작품집들을 사서 읽던 엄마가 생각 나. 이제부터 제가 사드릴게요. 엄마!" 하며 나를 꼭 안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