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교대하는 언니는 나보다 2살 위로 5년이 넘었고, 청소미화 담당 언니는 72세인데도 이곳에서 10년이 다 되어 간다고 했다. 한 직장에서 이처럼 오래 일을 하는 거 보면 나쁜 곳은 아니지 않겠냐는 매니저 말도 일리는 있어 보여 이 나이에 이런 일 하나 감당 못할까?라는 생각을 했다.
서울의 사대문 안에서 유일하게 불가마가 설치되어 있는 이곳은 헬스장을 비롯해서 골프연습장, 스크린 골프장도 있으며, 요가, 줌바댄스도 성황리에 운영되고 있는 곳이었다. 소나무를 켜서 6개월 이상 말린 장작으로 불을 때는데 연기가 나지 않고 불가마 내부에 하얀 꽃이 피면서 우리 몸에 좋은 음이온이 발생되어 아토피에 좋고, 비염, 관절염 등등이 나았다는 이용자들의 후기가 꽤 많았다. 그래서인지 사우나에는 한증막을 하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고 회원들도 한증막을 매우 즐겼다. 몇몇 회원은 아침에 들어와서 하루 종일 한증을 하고 찜질방에서 놀고 저녁때 가는 일이 허다했다.
일을 시작하고 2주 정도 지나 대표의 면담이 있었다.
"이모님, 며칠 일을 해보셨는데 어떠세요?" 물어보는데 내 대답은 형언키 어려워
"아, 이런 세상도 있구나 했어요." 하니
내 말을 들은 대표는
"으하하하하~그러세요?" 뭐가 그리 우스운지 호탕하게 웃으며
"여기는 아줌마들이 대부분이고 또 말이 많은 곳이니 말조심만 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처음 뵐 때부터 인상이 좋으셔서 바로 같이 일하자고 했는데, 지금처럼 하시면 되고 오래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말하는 대표에게 그러겠다고 했다.
사우나를 다녀만 보았지 일해보는 것은 처음이라도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지 별 것 있겠냐는 마음이었다. 모르던 계산기(포스)를 배우고 물건 판매 기록과 장부 정리하는 것을 며칠 배우고서 혼자 24시간을 지내는 일인데도 불구하고 마음만 사기충천해서 어렵다고 느끼지 않았다. 일머리야 배우면 안 되는 일이 없었기에 초긍정 마인드의 나로서는 즐겁게 일하자였다.
코로나가 심해지면서 일반 손님도 줄고 회원들은 몸을 사려야 하는 입장에서 최대한 연기했다가 나왔다가 다시 연기하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여전히 주위에 사업장이 있는 회원들은 새벽부터 나와 운동하고 씻고 화장하고 출근했다. 업장 주변은 정부종합청사 뒤편의 경찰청 주변이기도 해서 식당들이 주를 이루는 지역이었으며 적선동과 서촌, 통인시장, 세종마을 먹자골목이 있어서 백반집, 빵가게, 한정식, 참치집을 운영하는 여사장들이 많았다. 젊은 직장인부터 주상복합 건물인 관계로 아파트 주민들과 주변의 아파트 거주하는 분들이 대부분 회원들이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연세 많으신 어르신분들도 꽤 많았다.
어르신들은 연륜이 있어서인지 점잖으시고 다들 좋은 분들이셨다. 나름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서인지 마음씀도 넉넉하셔서 수고한다며 음료를 사서 주시기도 하고, 과일 등을 갖다 주시는 등 친절하게 대해 주셨다.
사우나를 즐기러 오시는 분들이 다 어르신들 같으면야 일하는 것이 하나도 힘들지 않겠지만 사람 사는 세상이 또 그렇게 만만한 것은 아니었다. 식당의 여사장들은 직원들을 거느리고 일을 해서 그런지 안 그런 분도 많지만 대개 자신의 종업원 대하듯 이것저것 잔심부름을 시키기도 했다.
하루는 나이도 지긋하고 머리는 사자머리 같은 한 분이 들어왔는데 락카 앞에서 옷을 벗어 털고 있기에
"손님, 옷을 터시면 안 됩니다. 다른 분들 불쾌하세요." 했더니 버럭 소리치며
"뭐라고? 옷을 좀 털면 어때? 뭔 먼지가 난다고?" 하며 탈의실 안이 떠나가도록 고함을 쳤다.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고 새로 온 직원 기 죽이려는 의도 같았다. 큰소리가 나자 미화 담당 언니가 달려가더니
"아휴 언니, 왜 그래요. 진정하고 어서 씻으러 들어가기나 해요. 새로 와서 뭘 몰라 그래요." 하고는 내게 온다.
"언니 내가 모르긴 내가 뭘 몰라요? 아니 상식이잖아. 자기 집도 아닌데 예의도 없고 완전 몰상식 한 사람이잖아요?" 라며 따졌더니
"어휴 가만있어, 저 사자 할머니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데. 내버려 둬. 이 곳엔 별 사람 다 있어" 한다.
속은 부글부글 끓지만 어쩌겠나 난 나이를 먹을 만치 먹었는데도 정말 인간사 아무것도 모르는 초짜인 모양으로 비친 듯 그 언니는 말했다.
탈의실엔 욕탕 쪽 파우더 룸 앞에 작은 평상 하나, 찜질방 입구 쪽으로 큰 평상이 매점 앞 쪽에 놓여 있다. 보통 평상엔 손님들이 앉아서 쉬거나 물건을 가져다 놓고 정리도 할 겸 말 그대로 평상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혼자서 드러눕거나 하면 다른 손님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라서 누워서 오래 있는 분이 계시면 말씀드려 거두게 한다. 보통 미화 담당 언니가 다가가
"언니 여기서 누우면 안 돼요." 하면 대부분 일어나 자리를 비켰다.
그런데 어느 날 찜질방에서 나온 체격도 우람한 분이 찜질방 옷을 올려 허연 배를 드러내 놓고 한참 동안 누워 있길래 눈치를 보다가 참을 만큼 참았다 싶어
"언니 찜질방에 가서 주무세요. 여기서 이러시면 안 돼요." 하니 건물이 흔들릴 것 같은 벼락 치는 소리로
"내가 여기 누워 쉬지도 못하냐? 알바 주제에 뭘 간섭이냐? 힐링하러 왔는데 기분 망쳤네. 사람이 많으면 몰라 사람도 없는데 잠시 누워 있지도 못해? 한 20분 정도밖에 더 누워 잤어? " 하도 목소리가 크니 리셉션에 있던 직원도 뛰어들어오고, 찜질방에서 잠시 쉬고 있던 미화 담당 언니가 달려왔다. 덩치는 산만한 여자가 울그락 불그락하며 소리를 치니 일단 달래 놓고 원래 여기는 눕는 데가 아니라고 얘기해 줬다.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서 규정대로 했을 뿐이고 정직원이라는 말도 못 하고 차근차근 설명도 못하고 어이가 없이 멍할 따름이었다.
대개 회원들은 저렇게까지 안하무인격은 아닌데 가끔 오는 뜨내기손님인 경우 저런가 보다. 몇 개월이 지나기 시작하자 이곳의 생리가 점점 나와 맞지 않는 곳이란 것을 깨닫게 되었다. 세상을 몰라도 너무 모르고 겁 없이 덤빈 것을 깨달은 것이다. 대중이 이용하는 곳일수록 예의를 지키고 공중도덕과 질서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날까지 살아왔다. 자신들의 집 안방에서나 해야 하는 행동을 서슴없이 대중시설에 와서 하는 행동을 이해를 못했다.
사우나 매점에서 일을 하면 투명 인간처럼 있어야 하나? 서비스업종에서 일하는 사람은 인격이 없는 사람인가?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며 회의가 오기 시작한 것이다.
걸핏하면 탕 안에서 머리 염색을 하거나 속옷을 빨아 건식 사우나에 널어 놓는다거나, 속옷을 머리 말리는 척하며 살짝살짝 눈치 보며 말리는 회원들은 그래도 애교에 속할 정도이지만 대놓고 뻔뻔하게 하는 회원도 적지 않았다.
또 핸드폰으로 통화를 큰소리로 길게 한다던가, 유튜브 동영상을 이어폰으로 듣지 않고 날것으로 듣는다거나, 냉커피를 시키고 매점을 비우면 안 되는데도 목욕 자리까지 갖다 주지 않는다고 불평을 하고, 작은 음료 하나 살 때에도 그들은 상대방을 존중하거나 배려하는 마음이 전혀 없는 말투와 행동을 하는 것이었다.
결정적인 일은 한 밤에 일어났다.
이곳은 새벽반, 오전반, 한낮반, 저녁반, 늦은 저녁 반등으로 사람들이 들고 났다. 늦은 저녁 반에 오는 회원 중 헬스를 마치고(11시 마침) 목욕, 사우나를 하는 젊은 여자였는데(30대 중반 정도) 항상 12시가 넘어야 욕탕에서 나오고 헤어드라이기로 속옷을 말렸다. 하루는 참다못해
"회원님 속옷은 말리지 말아 주세요. 머리 말리는 것인데."
"왜요? 왜. 안돼요?" 이 사람도 기차 화통을 삶아 먹었는지 목소리가 째지듯이 컸다.
"생각을 해보세요. 머리 말리는데 속옷 말리는 것 보면 다른 회원들이 기분이 좋겠어요? 그리고 드라이기 고장이 자주 납니다"
"아니 내가 빨아다 말리는 것도 아니고 운동하다 땀이 나서 찝찝해서 잠깐 말리는 건데 고장은 무슨 고장이 난다고? 카운터에 있으며 국으로 그냥 있지 뭘 참견하고 그래?"
"회원이면 품격 있게 행동하셔야지"
"품격? 그래 너는 얼마나 고상하냐? 카운터에 있는 주제에?"
"나? 고상한 사람이야." 했더니 온갖 쌍욕을 해대길래 상대 안 하고 마감하면서 정리하는 중에 카운터 밤 근무하는 직원이 전화를 했다. 무슨 일이냐며 별 일 없냐고 목소리가 바깥에도 들리는데 그 이상한 여자 아니냐고 물었다. 얼마 전에 밤 근무하는 직원에게 별일 아닌 일로 쌍욕을 하며 갑질 했던 그 여자였다.
마침내 그 여자는 찜질방 손님이 쫓아와 시끄러워 잠을 잘 수가 없다며 한 소리하자, 그제야 입을 다물더니 끝까지 회원한테 그 정도의 편의도 못 봐주냐 씩씩대며 눈을 흘기고 나갔다.
친구에게 그만둬야겠다고 했을 때 이래서 내게 안 맞는 곳이라고 했던 모양이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것은 그냥 허울 좋은 옛말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둑질과 강도질 안 하고 남에게 폐 끼치지 않고 살면 그것이 다인 줄 알았던 나 자신이 조금은 어리석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를 배려해주고 인격적으로 대하면 이 사회가 좀 더 밝아지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해보지만 아주 작은 그런 곳에서까지 내가 회원인데, 내가 돈이 많은데, 나이가 많은데 하며 군림하려 드니 꼴불견이 아닐 수 없다. 옛말에 [빈수레가 요란하다] [벼는 익을수록 숙인다]는 어렸을 때부터 많이 들어왔던 평범한 속담이 떠 오르는 것은 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