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대한 주관적인 의미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사람들의 공통점은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한
엄청난 확신이 있었다는 것과 그것이 그들이 삶의 이유였다라는 것이다.
반 고흐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에게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 삶의 이유였다.
그것이 아무도 그를 알아주지 않아도 그만의 길을 꿋꿋이 걸어 갈 수 있는 이유였을 것이다.
그의 동생 테오가 물심양면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은 생전에 거의 팔리지 않았다.
그만큼 당시 미술계에서 그의 존재감은 미미했다.
미래의 사람들을 위해 그림을 그린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정신질환까지
가지게 된 반 고흐의 삶을 본다. 반 고흐 자신은 이 세상을 떠나기 전 자기의
인생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졌을까? 그가 미술을 시작하기전, 잠시나마 종사했던
전도사 시절의 기억에서는 무엇을 느꼈었을까? 모든 것에 객관적인 의미가 있고 커다란
질서와 의미 아래 있었던 그 시절을 그는 어떻게 회상할까? 그림에 대한 자신안의 열정을 찾지 못했다면
그의 인생은 의미가 있었을까? 본인이 원하는 삶을 살아가면서 그는 무엇을 느꼈을까?
장 폴 사르트르는 존재가 본질에 선행하다는 그의 철학으로 대변되는 사람이다.
초월적인 무언가가 인간이란 존재에게 의미를 주는 것을 거절한 그는 사람들 스스로가
자신에게 주어진 자유를 활용하라고 한다. 그리고 그 결과와 고뇌에 대해서 책임을
지라고 한다. 커다란 포부를 가지고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세상을 변화시키던, 아니면
그냥 소소한 수입으로 집에서 게임하면서 살던 간 그 누구도 무엇이라 할 수 없다.
그가 자신의 자유를 인지하고 활용했다는 가정하에.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사르트르의 말이 2가지 이유로 설득력이 있다고 한다. 첫 번째 철학의 거의
유일하게 확실한 시작점인 개인의 의식에서 출발한다라는 점. 두 번째 사람의 존재를 신에게 복종하고
그를 위해 봉사해야 하는 수단으로 보기보다는 하나의 주체로서 인식한다라는 것이다. 내가 주체가
되어 자유를 실행하면서 사는 삶 그것 자체로 의미 있는 삶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좋은 것일까?
그렇다면 우리에게 주어진 이 피할 수 없는 자유로 우리는 무엇을 하고, 또 무엇이 되어야 할까? 그리고
결과적으로 그것에 만족할 정도로 우리 존재는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개체일까?
톨스토이 : 이 작품은 Micheal Aubert가 그린 반 고흐의 모작이군. 반 고흐의 원작이 완성된 년도를 검색해보니 1889년이라고 나오는데? 이 시기에 나도 소설을 쓰고 있었는데.. 감회가 새롭구만.
알베르 카뮈 : 어떤 소설들을 쓰셨는데요?
톨스토이 : 1889년에 <악마>라는 작품을 출판했었지.
알베르 카뮈 : 소설 이름을 들으니 도스토옙스키 님이 쓰신 <악령>이라는 소설이 생각나는군요 정말 좋아하던 소설이었는데.. 아무튼 <악마>라는 소설은 어떤 내용인가요?
톨스토이 : 뭐.. 말하기 좀 쑥스럽지만 내 젊었을 때 성적으로 많이 방탕했었네. 그것에 대한 반성의 의미로서 쓴 소설이네. 그러다보니 아무래도 성적 욕구에 대한 나의 부정적인 견해도 담겨 있고.
알베르 카뮈 : 저도 뭐 여자를 좋아하긴 했지만, 성적 욕구가 반성할만한 사항은 아닌 것 같은데요? 서로 좋은 시간 보내고 좋은 것 아닙니까?
톨스토이 : 자네는 그리스도교에 대해서는 탐탁지 않게 생각하니 그런 반응이 당연하지. 결국 자네에게는
어떤 것도 다 속박이라고 느낄 테니까 말이야. 자네가 쓴 이방인이라는 소설을 보니 주인공이 유일하게 화를 내는 장면이 가톨릭 신부와 이야기할 때 이더군. 결국 이문제는 사람들이 살면서 지켜야 할 객관적인 기준이 있는가에 대한 논의로도 이어질 수 있을 것 같으이. 사르트르 양반이 이야기한 것처럼 의미를 주는 초월적인 무언가는 배척하고 우리가 가진 자유를 최대한 누리면서 책임감 있게 살아가는 것이 정말 삶의 의미를 가져다줄까? 시간상 이 문제는 다음 작품으로 넘어가면서 이야기해야 할 것 같군.
알베르 카뮈 : 그나저나 작품 제목을 보니 아를에서 그려진 것 같군요. 해변가 도시에는 대체로 아름다운 여인들이 많죠.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