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글을 쓰는 이유

매일을 일상을 특별하게 할 수 있는 열쇄 하나

by 반루이 Van Louii
girl-2364013_1280.jpg 아이들은 항상 '왜'라고 묻곤한다

간혹 어린아이들을 보게 되면 어른들과는 확연히 다른 점이 하나있다. 질문이 많고 단편적으로 무엇을 알 때마다 왜라는 질문을 꼭 한다는 점이다. 대중교통을 이용 중 보게되는 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부모들의 모습을 생각해보자. 어린아이의 끊임없는 질문에 대답하다가 나중엔 지쳐버리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 측은한 마음이 들기까지하다. 철학의 나라 프랑스에서는 갓난애기가 가장 먼저 뱉는 단어가 (엄마를 제외하고) ‘왜(pourquoi)’라는 통계를 보았다. 하지만 그렇게 모든 것에 궁금증과 호기심을 가지는 경향은 나이가 들면서 아쉽게도 곧 사그라들게 된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며 왜라는 질문의 횟수가 하락하면서 수업에 대한 참여도 또한 떨어지는 것이 대부분 사람들에게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작가 또한 어느날 질문이 사라진 스스로를 깨닫게 되었다. 기획과 마케팅의 업무상 왜라고 묻는 태도가 없으면 성장에 한계가 있다라는 사실이 절실히 느껴진 때였다. 그리곤 다시한번 왜라는 질문의 중요성을 다시 상기했던 일이 있었다. 스스로에게 변화를 주고싶은 마음에 한 달간 스스로에게 실험을 해보기로 했다. 어린아이처럼 왜라는 질문을 최대한 많이 해보기. 다만 너무 산만해지는 것을 막고자 특정한 시간에 특정한 주제만 하기로 했다. 마침 유명인들의 갑작스런 죽음에 충격을 여러번 받았던 터라 인생에 대한 질문을 해보기로 했다. ‘우리는 인생을 왜 살까?’ 라는 질문을 캐묻기 시작했다.


물론 어려운 질문이 있었지만 이 질문의 나름의 대답을 할 수 만 있다면 인생에 있어 굉장한 만족감과 풍성함을 느끼며 살아 갈 수 있을거란 확신이 있었다. 그리고 그 확신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내면속에서 더 굳건해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하고 있나' 싶다가도 생각의 생각이 질문의 폭을 계속 넓혀가면서 평소에 생각하고 행동했던 반경이 너무나 좁았구나 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내가 모르는 사람들도 이 좋은 경험을 같이 나누었으면 좋겠다라는 마음에 글을 쓰게 되었다.


사실 인생의 의미를 찾는 일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늪속에서 허우적 거릴수록 더 빠져들고 마는 느낌이다. 일단 '인생'과 '의미'라는 단어 자체부터 호락호락한 단어가 아니다. ‘테니스를 왜 치는가’라는 질문은 쉽다. 테니스가 뭔지도 알고 내가 테니스를 치는 의도도 분명하다. 근데 ‘인생을 왜 사는가’라는 질문은 일단 인생이란 미스터리한 단어에 그 단어를 붙이는 것 자체가 무언가 엄청난 여정의 시작을 알리는 느낌이랄까.


난 등산이나 트레킹을 좋아하는데 간혹 주변에서 이렇게 물어보신다. 산이라는 거 그거, 어자피 내려올거 왜 올라가냐고. 등산을 싫어하시는 분들이 주로 이렇게 물어보신다. 그럼 나는 그분이 농담조로 물어보셨으니 농담조로 대답해 드린다. 인생 어자피 죽을꺼 왜 사냐고. 물론 연배가 높으신 분들께 이렇게 애기하지 않는다. 반쯤 농담으로 한 질문이기는 하지만 어렴풋하게나마 대답을 한사람은 한명도 없었다. 만약 분명한 대답을 했더라면 대한민국은 철학계의 거장 비트겐슈타인을 능가하는 철학자를 갖게 되는 것이다. 이런 종류의 질문이 전공인 철학자자분들은 너무 생각이 많아서 그렇다 치고 다른분야의 전문가들은 인생의 의미라는 질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미국의 샌프란시스코 연방준비위원회의 Ken Kasa라는 경제학자는 다음과 같이 글을 썼다. 경제학자들이 생각하기에 인류가 직면한 가장 어려운 3가지 질문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삶은 의미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라는 것이다. 경제학자들도 머리를 절레저레 흔들게 만드는 질문이라면 정말 어려운 질문임에는 틀림없다.



magic-cube-1976725_1280.jpg 매일의 일상에 '왜' 라고 묻는다면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난해한 질문이 그냥 넘어가기에는 너무 중요한 질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신기한 사실은 삶에 이유에 대한 해답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분명있다는 것이다. 별로 부유하지도 않고 외모도 출중하지는 않은데 곁에 있고 싶은 사람이 있다. 흔히 말하는 별볼일 없는 직업에 종사하시는 분들 중에서도 말 몇마디만 나누어 보면 끌어당기는 힘이 느껴지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이 내가 존경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분들은 무엇하나 그냥 지나가는 일이 없다. 한순간 한순간 그리고 만나는 한사람 한사람에게 진한 마음을 선사하시는 분들이다. 일도 인생의 하나의 연장선상에서 본다면 이런 분들은 우리가 왜 인생의 큰 질문앞에서 무기력하게만 있으면 안되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만 같다.


회사도 마찬가지이다. 같은 회사에 일하면서도 이유를 가지고 일하는 사람과 그냥 일하는 사람은 조금만 살펴보면 금방 구분할 수도 있다. 특출난 사람들은 스스로 하고있는 일에 대한 이유를 가지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그것이 강력한 동기를 만들어내고 강력한 동기는 꾸준한 열정과 자발적 효율성을 만들어 내는듯하다. 흔히 말하는 동기부여가 가지는 강력함은 이와관련된 수많은 연구와 자료들로 증명할 수 있다.


세상에 여러 기업들이 있지만 그중에 내가 좋아하는 회사들이 있다. 구글은 이 세상의 정보를 잘 정돈하여 전 세계 사람들에게 접근가능하고 유용하게 쓸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사명으로 일하는 집단이다. Tesla의 사명은 '전 세계의 교통수단을 지속가능한 에너지로 대체시키는 것‘이다.


기업뿐만이 아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위대한'예술인들 또한 같은 원칙이 적용된다. 서양 고전 클래식의 아이콘 모차르트는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다는 분명한 의지가 있었기 때문에 그의 작품들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그의 아버지의 강요에 순응하면서 돈벌이에 만족하는 순회연주자로 살다가 삶을 마감했을 것이다. 피카소 또한 그가 하는 일에 대한 분명한 이유가 있었는데 그것은 죽음에 대한 극복이었다. 그의 재능이 그림을 그리는 이유였다면 피카소는 여러 번 좌절을 겪었던 20대 때 이미 그림을 포기했을 것이다. 단순히 실력과 재능을 뛰어넘는 분명한 이유가 피카소를 평생 그림에 혼신의 힘을 쏟는 원동력이었다.


공통점이 분명 있다. 나에게 감명을 주고 내 안에 무언가를 꿈틀거리게 하는 사람들이나 집단은 왜 라는 질문에 대한 치열한 고뇌를 통과한 것이 분명하다. 삶의 이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자신에게 진실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기대하는 모습으로 살았다는 점’때문에 마지막 병상에서 후회하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과는 분명히 다를 것이다.




간단히 정리해보자. 분야를 막론하고 스스로가 ‘왜?‘대한 확실한 대답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그 일이 요구하는 일을 더 분명하고 탁월하게 만족스로운 방식으로 해결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라고 우리는 생각할 수 있다. 그 '왜'에 대한 대답은 그들을 더 역동적이고 창의적으로 만드는 힘의 원동력임에 틀림없다. 똑같은 원칙을 우리가 사는 삶에도 적용한다면 우리가 과연 어떤 삶을 살게 될지 상상하게 되고 가슴은 설레인다. 물론 그 질문은 대답하기 분명 까다로운 질문이지만 그렇다고 아예 시도를 못할 정도로 힘든 질문은 아닐 것이다. 대답을 찾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실마리들에 대해 같이 이야기 해보자. 다행이도, 우리는 실마리가 될 만한 정보가 상당히 많다. 그리고 그 사실들을 기반으로 우리는 우리만의 해석을 하며 대답에 더 가까워지는 자신을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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