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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안 Dec 26. 2020

커피 루왁

커피 루왁.

생을 즐기는 주문




손님도 없는 책방에서 홀로 핸드드립 커피를 만들었다.

이걸 책방을 찾은 누군가와 나누어 마시면 참 좋으련만.

거리두기 단계가 높아져  사람 보는 게  하늘 별따기만큼이나 어렵게 되었다.

책방에 오는 사람은 거의 없다.

경험이 많은 책방들은 온라인 배송이나 작게라도  읽는 모임 콘텐츠를 만들어 실낱같은 숨통을 트여가고 있지만  나 같은 어리바리한 초보 책방지기는 그마저도 아직은 할 줄 몰라 어렵다.


내가 책방에서 할 수 있는 거라곤  청소와 책 읽기가 대부분이다.

아무도 오지 않는 책방 구석구석을  쓸고 닦고 책에 먼지가 앉을세라 타조털 떨이개로  사부작 거리며  털어주고  단장한다.  청소의 마지막은 항상 화장실이다.  화장실은 그곳에서  밥을 먹어도 싫지 않을 정도여야 한다는 것이 평소 지론이라서  거품 품은 수세미로 깔끔히  닦고 정돈하 아침 청소마무리된다.

누가 본다고 그렇게까지 하느  할는지 모르나  어느 연예인이 했다는 말처럼  누군가가 아니라

나 자신이 알고 있으니  대충 하며 게으르고 싶지 않다.

오늘도 조용하다.

음악만이  정적을  흩어주는 책방에서  화분에  흠뻑 물을 주고  의자와 테이블을 쓱쓱 닦다가..

문득 카모메 식당의  주인공 사치에가 생각나서 웃음이 났다.

그녀도 홀로 테이블을 닦았지.  한 달 넘도록 손님 없는 공간에서.


카모메 식당은 30번 가까이 본 영화다.

처음 그 영화를 보았을 때 기분을 기억한다.

영화 자체도 당연히 좋았지만 그런 각본을 쓴 작가의 재능이 부러운 건 말해 뭐할까.

불편하고 억지스러운 갈등 없이 누구에게도 뾰족한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대사 한마디 장면 하나하나가  마음을 순하게 해주는 다정한 영화였다.

손님이 없지만 무릎걸음을  거르지 않고 수영을 다니는 주인공의  변함없는 일상도 보기 좋았다.

서점에서 만난 낯선 여행객 미도리를 자신의 집에서  머물게  하며  기꺼이 품어주는 넉넉함도,

커피 분쇄기를 찾으러 도둑처럼 스며든 전 주인의 발칙함을 묻어주는 온기도 참 좋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좋았던 건 그녀가 커피를 내리려 준비하면서 주문을 거는 모습이었다.


커피 루왁.



그 말속에 사치에의 모든 진심이 담겼다고 나는 영화를 반복해 볼 때마다 생각했다.

단지 커피의 맛만을 좋게 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을 향한 그녀의 정성과 배려, 그리고 자신 삶에 대한

굳은 다짐 같은 것이  함께 전해지는 괜찮은 주문이었다.

비록 손님 없는 텅 빈 공간을 지키고 있으나  흔들리지 않고 살아가겠다는 그녀만의 결기 같은 주문.

살아가면서 자기만의 주문 같은 것이 있으면  왠지 즐거울 것 같다.

지치고 힘들 때, 흔들리고 무너질 때, 스스로 뿐만 아니라 다른 이를  일으켜 세워 주는 응원 같은  절대 주문이  있으면  어떨까 싶은 마음이다.


아직은 서툰 핸드드립 도구로 커피를 내리며  나는 사치에처럼 커피 루왁이라고 말해보았다.

커피 맛의 깊고 오묘함을 잘 간파 못하는 문외한이라서  아쉽지만,

기분 탓일까.  커피가 맛있게 느껴지는 듯했다.

그렇다면 나는 책에 대한 주문을 하나 만들어 볼까 싶다.

누군가 들어와 책을 고르고 나에게 가져오면 책에 슬며시 손가락을 대고 주문을 걸어주는 것이다.


부디, 이 책을 읽으며 코로나 블루 시대의 안갯속 같은 일상을  꿋꿋이 걸어가 주오.라는 의미를 담아서.

하얀 노트에 이것저것 끄적여 보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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