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침반

by 주안

"선생님~ 나침반이 계속 흔들려요.

고장 났나 봐요."

눈물이 쏟아질랑 말랑 했다.


아홉 살 때 일이다.

수업시간 준비물로 처음 나침반샀다.

그것은 자그맣고 파란 종이 상자에 담겨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문방구에서 바로 뜯지 않고 주머니에 살살 넣었다. 얼른 교실에 들어가 차분한 마음으로 나만의 나침반을 보고 싶었다. 교실 문 앞 다다라 급하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먼저 와 계신 선생님께 인사도 대충 했다. 가방은 거의 팽개치듯 던져두었다. 내 신경은 온통 주머니 속 나침반에 있었다.


6남매 막내인 나는 새 물건을 사는 일이 좀처럼 없었다. 위에서 아래로 물리고 물려 헌 것이 되어 받기 일쑤였다. 그런데 웬일로 집에 나침반이 없어 새것으로 살 기회가 생겼으니 어찌 기쁘지 않았겠는가. 내겐 물림 할 동생도 없으니 아무에게도 주지 않고 나만 가질 수 있는 몇 안 되는 새 물건이었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상자를 열어 책상 위에 조심히 놓았건만 바늘이 줏대 없이 간질거리며 흔들렸다. 몇 번을 다시 놓아도 상태는 똑같았다. 교실로 뛰어올 때 너무 흔들려서 그런가 싶어 잠깐 시간 여유를 주었음에도 바늘의 떨림은 멈추지 았았다. 안 되겠다 싶어 좀 전까지 관심 밖이던 담임 선생님께 쭈뼛거리며 다가갔다. 어서 이 사태를 알리고 도움을 받는 것이 낫지 싶었다. 그런데 선생님과 눈이 마주친 순간,

이유모를 설움 같은 게 치밀어 올라 자꾸 눈물이 고였던 것이다.



"아니야, 나침반 바늘은 계속 흔들리는 게 정상이야. 흔들려도 가리키는 방향과 중심이 정확하면 전혀 문제없어.

자, 보렴. 북쪽을 여전히 향하잖아. 고장 난 게 아니니까 걱정 마"


그제야 숨이 쉬어졌다. 내 머리를 쓰다듬는 선생님의 따스한 손길을 느끼며 나침반을 다시 보았다. 그랬다. 쉼 없이 흔들리면서도 방향은 정확했고 오차범위를 거스르지 않았다. 뚫어져라 바늘을 보았던 그날의 기억이 생생하다. 하지만 그 기억보다 더 선명하게 각인된 것은 따로 있었으니, 나침반을 챙겨 자리로 돌아가려던 나에게 건네신 선생님의 한마디였다.


"사람도 살다 보면 흔들리는 거야. 그런데 중심과 방향만 정확하면 되는 거야. 너도 그런 사람이 되거라."


선생님은 아셨을까. 그 말이 아홉 살 제자의 가슴판에 스며 불도장처럼 새겨 지리란 걸. 나침반 바늘의 모습과 선생님의 말씀이 뒤엉켜 나의 의식을 강하게 잡아챘다. 40여 년이 흐른 지금도 선생님의 말투와 느낌을 간직하고 있다. 내겐 참 고마운 일이다.


살아보니 크고 작은 일들로 몸과 마음이 휘청일 때가 많다. 그것이 세상사는 자연스러운 굴곡인걸 알면서도 덜컥 겁이 나기도 한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그럴 때

선생님 말씀이 떠오르곤 한다. '그래, 중심을 잘 잡으면 수없는 떨림에도 불구하고 문제없는 거다' 라고 중얼거리게 된다.


당시 담임선생님은 이혼을 하고 홀로 딸을 키우고 계셨는데 그 시절에 흔치않은 일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단단한 분이셨다. 어쩌면 그날 나에게 하신 말씀은 자기 자신을 향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세월이 지난 후 나는 생각했다. 그때 샀던 나침반은 몇 년 뒤 이사하면서 잃어버렸다. 선생님과도 타 지역으로 전학 가면서 헤어졌다. 하지만 말씀은 여전히 내 안에 잘 있다. 중심을 딱 잡고서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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