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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늘 Feb 12. 2021

디저트 귀신

마늘단편 - 맛없는 맛집 소설 







 내가 이렇게 맛있다는 디저트 집만 찾아다니게 된 계기가 있는데 그 시작은 바로 내 첫사랑 때문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교 때까지 딱히 튀는 것도 없고 늘 어딘가에 묻혀 어눌하게 살아가던 나는 (사실 나는 꽤 멋지게 살았다고 생각하지만 어릴 때 동창들이 당시 그들이 보는 나의 현실에 대해 최근에 이야기해 주었고 나는 그것을 직시하기로 했다) 늦게 첫사랑이 찾아왔다.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모두 남녀공학을 다녔지만 딱히 이성에 관심을 가지기보다는 피겨라던가 게임, 그리고 잡지를 스크랩하는 일 따위에 즐겼다. 어릴 때 동성, 이성을 모두 포함한 나의 친구들 중 나와 비슷한 취미를 가진 사람이 없었고 그래서 나는 늘 이단아 같은 취급을 받았던 것 같다. 당시에는 그들이,


"와, 이런 피겨도 있어? 널 닮았는데?"


"응? 그런 게임도 있었나? 쿠소게임 같은데? 마치 너처럼? 하하"


"오빠는 인기 많겠어? 이렇게 피겨들이 많으니... 오빠반 여자들이 질투하겠는데? 호호"


했던 말들이 나와 내 삶을 비꼬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부러워서 하는 말들이라고 착각을 하고 살았던 듯하다. 학업성적도 그리고 학교에서의 나의 언행도 마치 버뮤다 삼각지대에서 사라진 잠수함처럼 모두의 공기에 묻혀있었기에 나에게 관심이 있거나 나를 좋아하는 이성도 없었다. 그리고 나 역시 방과시간에는 틈틈이 인터넷으로 피겨와 게임들에 대해 검색을 했고 방과 후에 숙제를 마치면 어김없이 게임 등에 집중하느라 이성에 신경을 쓸 틈이 없었다. 그래도 나는 남자였고 소소한 사랑의 감정은 프린세스메이커 같은 육성 시뮬레이션 게임을 통해 받곤 했다. 나름 평탄하게 고등학교까지 졸업한 나는 전반적으로,


"아, 그런 학교가 있었나? 이름을 들어보긴 한 것 같은데."


정도의 평을 듣는 대학교에 입학을 했다. 정해진 과목과 동아리 활동을 할 수 있는 중고등학교와는 다르게 대학교에서는 다양한 취미활동을 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대학교 내에서 뿐 아니라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를 통한 다양한 커뮤니티 활동을 자유롭게 할 수가 있었다. 나는 대학교에 입학을 하자마자 학교 내의 피겨 동호회와 콘솔 게임 동호외에 가입을 했다. 그리고 sns를 통한 몇 개의 커뮤니티에도 가입을 해서 활돌을 하게 되었다. 대학교에서도 같은 과 친구들 사이에서는 유령 같은 존재였지만 동호회나 온라인 커뮤니티 모임에서는 차차 내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어릴 때부터 오타쿠처럼 혼자서만 쌓아온 나의 취미활동들에 대한 깊이가 비슷한 친구들 사이에서 드러나게 된 것이다. 그나마 소질이 있던 글 쓰는 재주와 어렸을 때부터 닦아왔던 잡지 스크랩 실력으로 나는 여러 동호회와 소모임에서 크고 작은 매거진들을 만들어 발행했고 어느새인가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이런 나를 신처럼 추앙하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그런 때 운명처럼 나의 첫사랑이 나타났다. 온라인 소셜 활동 중 쿠소게임 모임에 처음 나오는 한 여학생이었다. 나보다 두 살 어린. 대학교에 갓 입학한 신인이었다. 온라인 소셜 모임은 <잊혀 가는 쿠소게임을 찾아서>라는 다소 진부한 이름의 모임이었다. 쿠소게임이란 일본 게임비평에서 많이 쓰이던 말로 단어를 직역하면 똥 게임이라는 뜻이다. 심플하게 이야기해서 망한 게임으로 정말 재미가 없거나, 말도 안 될 정도로 최악의 퀄러니 혹은 난이도의 게임 등을 합쳐 이야기하는 말이기도 하다. 콘솔게임이라는 한정적 동호회적 특성과 그 게임들 중 쿠소 게임이라는 더 특이한 조건이기에 우리 모임에는 2년 간 여성이 단 한 명도 없었다. <쿠소망가> 라는 아이디를 쓰던 그녀는 온라인 채팅창이나 게시글, 댓글 등에서도 덕후들이 잘 쓰는 말을 썼기에 그 누구도 그가 여자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러던 그녀가 첫 오프라인 모임에 등장을 했고 그녀가 문을 열고 우리 자리 쪽으로 와서,


"여기가 <잊쿠게> 모임 맞나요? 저 <쿠소망가> 인데?"


라는 말을 했을 때 모임에 미리 와있던 5명 (늘 모이는 3명과, 종종 오는 2명) 은 우리도 모르게 입이 크게 벌어졌고 아무도 그 질문에 답할 수 없었다. 특히나 내 입은 2차 세계대전에서나 나올 법한 항공모함이 왔다 갔다 할 정도로 입이 벌어졌다. 너무 오랫동안 벌어진 입에서는 줄줄 바닥으로 침이 떨어졌고 전래동화 금도끼 은도끼의 연못이 만들어질 정도였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슴에서 쿵쿵 소리가 났다. 몸이 더워졌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모임지기님이죠? 쿠쿠님?"


그녀가 내 눈을 보고 묻자, 나는 바로 고개를 떨굴 수밖에 없었다.





여기까지, 

언젠가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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