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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늘 Feb 07. 2020

맥주 폭탄

마늘 단편 - 걸어야 보이는 더 많은 것들 






 나는 남은 맥주와 와인을 모두 가지고 뒤셀도르프 중심가의 NH 호텔에서 나와 뒤셀도르프 공항으로 향했다. 많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이 술들을 호텔에 두고 가자니 내가 일주일간 머물던 호텔의 그 허연, 고약한 하우스 키퍼 놈이 (매일 아침 꼬박꼬박 배게 아래 넣어 둔 팁은 잘도 가져가면서, 방 청소는 띄엄띄엄하던) 내 피 같은 돈으로 한 병, 두 병 산 내 술들을 기분 좋게 마셔버릴 것 같아서였다. 공항에 도착한 나는 이 술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조금 난감해졌다. 술은 액체류라 비행기에 가지고 탈 수는 없기 때문이다. 아직 비행기가 이륙하기까지는 1시간 정도 남았으므로 나는 일단 기본 짐은 모두 부치고 난 뒤 공항 밖의 벤치에 앉았다. 그리곤 내가 머물렀던 호텔의 고약한 하우스 키퍼 놈을 욕해대며 한 병씩 마시기 시작했다. 며 칠 전 먹다 남은 치즈와 감자칩, 너겟 같은 것도 좀 챙겨서 왔는데 일단 가볍게 맥주병부터 비우기 시작했다. 독일산 맥주 두 병을 비우고는 반 병 정도 남은 끼안띠 지역 와인을 오픈했다. 세 병인 줄 알았던 술이 와인 병을 포함해 일곱 병이었다는 것을 나는 내가 여섯 병째 술을 마실 때 알게 되었다. 이미 내 주량 이상의 술을 마셨고 공항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눈 윙크도 하고 손가락으로 하트를 만들어 추파를 던질 만큼 취한 나는 마지막 와인 한 병을 남기고 정신을 바로 잡아 술 마시는 것을 멈췄다. 그리고는 공항 안으로 들어와 누구에게도 피해가 가지 않을 화장실의 변기에 홀로 앉아서 비행기가 올 때까지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이윽고 비행기가 도착할 시간이 되었고 나는 화장실에서 나와 비행기를 타러 게이트로 향했다. 걸어서 삼십 초 거리인 게이트에 거의 다다랐을 때 누군가 억센 손으로 내 어깨를 붙잡았다. 뒤를 돌아보니 공항 보안요원과 경찰 둘이 서있었는데 그들은 나에게 영어로 길게 무언가를 이야기했다. 영어가 짧아 그들이 빠르게 이야기하는 말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던 나는 만국 공통 제스처인 어깨 들썩이기를 한 번 했고, 그들은 내 모습을 보고 화가 더 났는지 내 양팔을 잡고 눈을 가렸다. 그리고는 나를 데리고 어디론가 가기 시작했다. 

‘누군가 매일 이렇게 나를 들고 다니면 살이 더 찌겠지.’ 

라고 생각할 무렵, 나는 한 방에 도착했다. 그들은 결박한 나를 의자에 앉혔다. 눈가리개가 벗겨지고 잠시 눈이 부셔 눈을 몇 번 깜빡인 나는 희미하게 앞이 보이기 시작했고 곧 내가 있는 곳이 사방이 막힌 방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방에의 테이블 위에는 내가 공항 밖 벤치에 남긴 와인 한 병이 놓여 있었다. 주위에는 의사들이 입는 흰 가운을 걸친 몇 명의 사람들이 희 장갑을 끼고 나를 쳐다보고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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