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늘 단편 - 걸어야 보이는 더 많은 것들
고등학교 때 전교 꼴찌를 나랑 번갈아 가면서 하던, 차승원을 닮아 별명이 하승원(하 씨다) 에게 오래간 만에 연락이 왔다. 그는 고등학교 때 성적과는 전혀 무관하게 의료기기와 과학장비들을 세일즈 하는 나름 15년 된 탄탄한 중견기업의 대표였고 일이 년에 한 번씩 차를 추가 구입할 때마다 나에게 어떤 차를 사면 좋을 지에 대해 진지하게 물어보는 (레트로 한 페라리를 살까? 최신 페라리를 살까? 같은) 친구였다. 차에 그다지 관심 없는 나에게 왜 차에 대해 그리 물어보는지 예전에는 궁금했지만 어느새 나이가 들다 보니 '아, 그냥 나한테 자랑하고 싶었던 거구나.'라고 넘어가게 되더라는. 여하튼 오래간만에 이 친구에게 연락 온 이유는 무척 신기한 장비를 스웨덴에서 가져왔으니 사무실에 한 번 놀러 오라는 것이었다. 마침, 시간 여유도 있고 해서 어떤 의미로는 바보들의 성지라는 카이스트 근처의 친구 회사로 향했다. 친구가 보여준 장비는 셀링크라는 회사의 세포와 조직 관련 3D 프린터였다. 심플하고 굳이 많은 설명이 필요 없는 장비였지만 그래도 굳이 조금 설명을 해보자면 인간의 손, 발, 귀 같은 신체의 외형은 물론이고 간이나 폐, 대장 등을 입력값과 세포의 배양을 통해 똑같이 만들어 내는 프린터라고 했다. 뭐, 간암에 걸린 사람은 이 프린터로 건강한 간을 만들어 바꾸어 끼면 된다는 이야기. 무척 현실적이며 비현실적인 이야기에 친구가 한 마디 더했다. "유럽 쪽은 임상실험이 진행 중이야. 한국에서는 아직 임상은 안되고 외과의 등의 교육을 위해 간 등을 만들어 쓰는 건 가능하데. 인간은 모든 병에서 쉽게 해방되고 어찌 보면 불사의 삶도 가능할 수 있지만 세계적으로 인간의 삶과 도덕적인 이유로 임상 등에 대해서는 말이 많다나 봐. 종교적인 이유도 있고." 두어 시간 정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우리는 점심을 먹으러 향했고 친구가 사준 부대찌개는 두어 시간의 경험을 깡그리 날려버릴 정도로 더럽게 맛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