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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늘 May 13. 2020

장난전화

마늘 단편 - 걸어야 보이는 더 많은 것들




이른 새벽 전화벨이 울렸다. 보통은 내가 늦게까지 술을 마시거나 일을 하는 것을 알기 때문에 친구들이나 가족은 어지간해서는 전화하지 않는다. 이런 새벽의 전화는 실로 오래간만이었는데 보통 이런 경우 전화의 내용은 두 가지 중 하나다. 잘못 걸었거나, 혹은 누가 죽거나 안 좋은 일을 당했거나. 하지만, 오늘 새벽의 전화는 그 둘 다 아니었다. 나는 잠에서 덜 깬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현장은 언제쯤 나오시나요?" 

'현장? 현장?!' 

나는 비몽사몽, 곤드레만드레 기억을 더듬었고 문득 어제 온 손님 한 명이 생각났다. 여덟 시 즈음 강아지와 함께 바를 찾은 그는 큰 덩치와는 어울리지 않는 모기 목소리로 내게 말을 건넸다. 

"핸드폰이 고장 나서 그런데 전화 한 통 할 수 있을까요?" 

나는 바로 전화를 건네주었고 밀린 설거지를 하러 주방으로 들어갔다. 설거지를 마치고 주방에서 나오니 그는 내게 전화기를 다시 건네주며 

"잘 썼습니다. 발베니 한 잔은 스트레이트에, 글랜리벳 한 잔은 온 더 락 잔에 물 반 잔, 그리고 미즈와리 해서 주세요. 얼음은 따로 부탁할게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사나이가 말한 대로 술을 준비해주었다. 그리고 삼십 분 즈음 지났나 그 사내는 자리에서 일어나 계산을 하며, 

"혹시라도 오늘 밤이나 내일,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오면 약속된 장소, 서울 금천구 시흥동으로 오면 된다고 말해주십시오." 

나는 그러겠노라고 답하고는 계산을 마쳤고 그는 바에서 떠나갔다. 

'현장? 현장?!' 

나는 마치 로봇처럼 그 사나이가 한 말을 따라 전화를 건 사람에게 말했다. 

"어제 전화를 건 사람은 제가 아닙니다. 어제 오신 손님이 핸드폰이 없다고 해서 제가 핸드폰을 빌려드렸는데요, 혹시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오면 금천구 시흥동에서 만나면 되겠다고 말씀하셨네요." 

그렇게 말하고 나니 전화기 너머로 큰 한숨이 들렸다. 

"저희, 지금 금천구 시흥동에서 한 시간째 기다리고 있습니다. 인력소에서 인부들을 다 빼와서 지금 이삼십 명 정도가 여기서 기다리고 있는데 아직까지 안 오시면... 혹시 그 손님 전화번호 아시는지요?" 

"아니요. 처음 오신 손님이라 제가 아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다시 한숨이 들렸다. 

"인상착의 좀 알 수 있을까요?" 

라는 물음에 나름 성심성의껏 대답을 해주었다. 사내는 마지막으로,

"바 오픈 시간은 언제죠? 너무 답답해서 이따가 술 한 잔 하러 가야겠습니다." 

"주소는 문자로 보내드릴게요. 저희는 와인과 위스키만 판매합니다. " 

"네, 그놈의 장난전화 한 사람 (여기서는 심한 욕을 했다.) 덕에 인부들도 하루 종일 시간을 버리게 될 것 같아 미안해서 모두 데려가서 한 잔 해야겠습니다. 술과 안주 많이 준비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나는 전화를 끊자마자 바로 잠이 들었고 장난전화를 건 검은 강아지 사내와 인력소의 대장과 주먹싸움을 하는 꿈을 꾸었다. 그 사이에서 누구 편을 들어야 내가 등이 안 터질까 고민하던 찰나 잠에서 깨어났는데 꿈이 하도 생생해서 왠지 오늘 밤은 평소보다 술을 덜 마시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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