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쥐 같은

마늘 단편 - 그와 그녀의 이야기

by 마늘






내 별명이 <이 박쥐 같은 놈>인 것에는 이유가 있다. 나에게는 어릴 때부터 무척 친했던 친구 둘이 있다. 그 친구들은 나와 함께 같은 유치원에 다녔고, 같은 초등학교, 같은 중학교를 졸업했다. 고등학교에 들어오면서부터 남녀공학이 아닌 성별이 구분된 학교로 갈리면서 우리들은 잠시 떨어져 지냈지만 고등학교 졸업 후 우리의 친분을 알고 우리를 믿던 부모님들이 우리 셋 모두를 뒤셀도르프에 있는 대학으로 유학을 보내면서 우리는 다시 깊은 우정을 유지할 수 있었다. 대부분 이런 혼성의 우정은 사춘기 때 서로를 사랑하거나, 짝사랑을 하거나 해서 망가지기 쉬운데 (물론 끝까지 연애에 성공해서 결혼하기도 하지만) 우리는 고등학교 때는 떨어져 있어서였던 탓인지 크게 한쪽에 편중되지 않고 셋의 우정이 유지가 되었다. 하지만 우리들의 조용했던 사춘기와 사랑의 균형은 우리 셋이 뒤셀도르프의 한 집에서 살면서 깨지게 되었다. 사랑의 시작은 대학교에서 그녀를 인종 차별하던 한 영국인의 만행을 참지 못한 내 친구가 그 영국인의 엉덩이를 걷어찬 데서 시작이 되었다. 내 친구는 그가 엉덩이를 걷어찬 영국인과 영국을 우상시하는 허세 가득한 그의 친구들에게 정말 죽도록 맞아서 1달간 집에 누워있었다. 그녀는 자신과 국가의 명예를 대신해 영국친구의 엉덩이를 걷어찬 그를 한 달간 열심히 간호했고 나는 그들을 대신해 매일같이 학교에서 영국인 친구와 그의 추종 세력들의 눈치를 보다가 시력이 나빠졌다. 내가 그러건 말건 한 달간 간호하고 간호를 받으며 서로 간의 사랑이 깊어진 그들은 낮이건 밤이건 뜨거운 사랑을 나누었고 나는 바로 문 옆 내 방에서 인간의 목소리가 얼마나 날카롭고 높은 데시벨까지 올라갈 수 있는 지를 알게 되었다. 그의 몸이 건강해지자 그들의 데시벨은 더 높아졌고 어떤 때는 돌고래가 내 옆방에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 둘과 무척 친했던 나지만 내 학업까지 방해받는 건 좀 화가 나서 그들을 조용히 불렀다.


"얘들아, 셋이서 대화한 지 좀 오래된 것 같아 맥주나 한 잔 하자고.."


내 말을 끊고 그녀가 말했다.


"얼아, 우리 이사를 가야 할 것 같아. 우리 자기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뒤셀도르프가 잘 안 맞는 것 같네. 너도 알잖아. 우리 자기가 얼마 전 사고도 있었고. 서로의 부모님께는 잘 말해두면 될 것 같고 우리도 너에게는 좀 미안하니 앞으로의 3개월 정도의 집세는 우리가 내고 갈게. 그 사이 너도 혼자 살 집을 알아보는 게 좋을 것 같아. 아 참. 우리는 런던으로 갈까 해. 너도 함께 가서 지금처럼 우리와 함께 있을 수 있다면 더 좋고."


그녀의 대답에 나는 마음이 가벼워졌다.


'런던이라. 얼마 전 양치를 안 해 누렁니라는 별명과 함께 심한 구취까지 있는 그 영국 놈에게 실컷 두들겨 맞고 영국이라니. 게다가 자기라니...'


평생을 친구처럼 지내온 친구들이 서로 자기라고 부르는 걸 듣고 있자니 속이 매스꺼워졌다. 하지만 나는 이 뒤셀도르프의 생활이 이제 막 적응되었고 매일같이 집 관리를 나 혼자 해온 것도 익숙해져서 바로 대답했다.


"아니, 나는 여기서 졸업할까 해. 독일어도 이제 슬슬 귀에 들어오고."


"아, 그래. 그럼. 언제든 런던에 오고 싶다면 알려줘. 우리도 너 보러 종종 뒤셀도르프에 올게. 유럽은 하나니까. 하하."


친구 얼이는 호탕하게 웃어댔고 그것이 2016년의 마지막 그의 모습이었다.

그들은 떠났지만 떠난 직후부터 매일 전화가 왔고 나는 그들과 전화를 하며 친구 없는 뒤셀도르프에서의 유학생활을 이겨냈다. 처음 런던으로 갔을 때는 늘 그들이 전화해 셋이 스피커폰으로 전화를 하곤 했는데, 언젠부터인지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니는 그들의 전화를 따로 받게 되었다. 얼이는 학업과 그녀에 대한 고민, 그녀에 대한 상담이 전화의 주된 내용이었고, 그녀는 패션, 런던의 로열패밀리, 그리고 그녀가 늘 판타지를 가지고 있던 런던의 남자 이야기가 나에게 전화로 수다를 떠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1년 정도가 지났을까. 결국 그녀는 그를 떠났다. 그도, 그녀도 사랑을 시작할 때, 우리 셋이 같이 사는 방에서 매일 밤 돌고래 소리를 낼 때는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그녀는 헤어진 직후부터 매일같이 술을 마시기 시작했고, 그는 미친 듯이 등산을 하기 시작했다. 이별의 슬픔이 둘의 생활을 바꾼 것은 좋은 일일 수도 있고, 나쁜 일일 수도 있지만 나에게는 힘든 일이었다. 둘을 시소에 놓고 재봐도 시소가 움직이지 않을 정도로 둘과 똑같이 절친한 친구였던 나는, 한동안 런던에 체류하면서 아침 일찍 일어나 그와 함께 등산을 하고, 새벽에는 그녀와 미친 듯이 술을 마시게 되었는데 그래서 <이 박쥐 같은 놈>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나는 이 별명을 좋아했다. 하지만 별명 콘테스트에 나갈 만큼 멋들어진 별명은 아니어서 여기 있는 친구들에게만 소소하게 소개해보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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