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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술관 Jul 12. 2020

저는 실패한 엄마입니다.

관계의 어려움을 배웁니다. 아이들로부터


 
“비가 올 때는 비도 맞고, 가끔씩은 일광욕도 하면서 자연 순리를 몸으로 느껴보길 바란다. ”
 
우리 몽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너기 전부터 매일 산책을 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그리고 야근으로 피곤에 지쳐있을 때도 몽이와 함께 산책을 나섰다. 그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선물이었다.
17년 동안 곁에 있으면서, 나는 그저 우리 몽이를 ‘강아지 1마리’로 인식했다. 어쩌다가 엄마가 바쁠 때 밥을 챙겨주거나, 애교를 피울 때면 이따금 만져주는 정도였다. 그런데 어느덧 몽이가 앞이 보이지 않으면서,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무지개다리를 건너기 일 년 남짓 남았을 때 나는 그의 존재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를 돌아보았다.
 
나는 그에게 어떤 존재일까? 그리고 그는 우리 가족과 가졌던 추억과 행복했던 순간 무엇일까? 순간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16년 동안 함께 있으면서, 그에게 너무 소홀했던 내 모습에 아쉬움이 눈물로 번졌다.    
 
계획을 세웠다. 몽이가 짧은 생애를 마감하기 전까지 코끝에서부터 느낄 수 있는 모든 기억을 오래 간직하게 여행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생애 처음으로 몽이와 함께 비행기에 올랐다. 이륙 순간 낯선 몽이의 모습 속에 아빠의 모습이 흘러나왔고, 제주도 푸른 바람 소리와 바닷가에서 올라오는 짠내에 코끝 찡긋거리는 몽이는 우리 남매에게 달콤함 휴식을 선물해주었다. 그렇게 몽이와 나는 하루를 열흘처럼 아껴 사용했다. 그리고 난 서울로 이직하게 됐다.
비록 떨어져 있지만, 매일 전화기 넘어 몽이 모습과 목소리를 들으면서, 못 보는 아쉬움 애써 달래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이른 새벽, 엄마로부터 전화 한 통이 왔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몽이가 눈을 감았다.”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빨리 슬픔이 빨리 다가올 주는 몰랐다. KTX를 타고 부산으로 내려가는 내내 눈물이 내 앞을 가렸다. 집에 도착했을 때 나를 반기며 꼬리를 흔들어 줄 것 같았던 몽이는 긴 잠을 청한 채 무지개다리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내 안의 슬픈 잔상을 그림으로 표현하면서, 그의 모습을 차곡차곡 디지털로 저장하고 있었다. 가끔씩 지쳐 쓰러져 혼자 있을 때 디지털 세상의 몽이와 소통하며, 심신의 허전함을 달랬다. 하지만 SNS 세상이나 출퇴근에 만나는 다른 강아지를 볼 때마다 몽이가 떠올랐다. 하지만 막상 강아지를 다시 입양하기에는 두려움과 부담이 컸다.
 
“또다시 이별이 찾아오면 어떻게 하지?”
“과연 이번에는 잘 키울 수 있을까?”
 
막상 키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현실을 돌아보면 두려움이 앞섰다. 그런 가운데 한해 버려지는 유기견이 10만 마리 이상 된다는 기사를 보게 되었다. 순간 나는 주마등처럼 흘러 과거의 나와 마주 앉아 있었고, 문득 유기견을 입양해야겠다는 용기가 생겼다. 무엇이 이끌렸는지 현실의 문제를 회피하기 싫었고, 그간 몽이와 서툴렀던 관계를 유기견을 통해 회복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SNS에서 늘 마주했던 안락사 직전의 유기견 2마리를 우선 구출했다. 물론 빠른 선택에 따른 두려움도 컸다. 하지만, 나의 선택에 후회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2월 1일 울산에서 올라온 유기견 2마리를 마중 나가기 위해 서울역으로 나섰다.
 
문이 열리고 나와 첫 마주한 ‘꿍내’와 ‘단내’, 나는 이들의 새 누나가 되었다.
 
“이제는 실패한 누나가 아닌, 매일 너희들과 행복을 나눌 수 있는 누나가 될게,  애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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