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버추얼콘텐츠 성공공식:인간다운 부족함 속 스토리 강조

휴먼스토리의 힘과 디지털휴먼의 현실

by 미술관

버추얼콘텐츠의 또 다른 성장공식 : 인간다운 부족함 속에 스토리가 필요

휴먼스토리의 힘과 디지털휴먼의 현실


케데헌(!).jpg

최근 케이팝데몬헌터스의 노래가 전 세계적 인기를 얻은 배경에는 감독과 성우의 진정성 있는 휴먼스토리가 있었다. ‘플레이브’ 역시 멤버들의 과거 직업과 무대에 서기까지의 여정이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반면 이터니티, 로지, 한유하, 루시 등의 디지털 휴먼들은 기술적 혁신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팬덤 형성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기술 완벽주의의 함정 : 혁신의 이름으로 놓친 본질

디지털휴먼(1).jpg

2021년 3월 펄스나인의 AI 걸그룹 '이터니티'가 화려하게 데뷔했다. 딥리얼AI 기술의 집약체라는 찬사와 함께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상 아이돌의 탄생이라며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LG전자의 김래아, 네이버웹툰(로커스)의 로지, 스마일게이트의 한유아까지 국내 대표 기업들이 앞다투어 디지털휴먼 시장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4년이 지난 지금, 이들 중 대중적인 팬덤을 형성한 디지털휴먼은 거의 없다. 반면 우왁굳이 기획한 '이세계아이돌'과 블래스트의 '플레이브'는 진정한 팬덤을 구축하며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다. 무엇이 이런 명암을 갈랐을까?

현재까지 디지털 휴먼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인물이기 때문에 대중의 인간적인 공감을 이끌어 내기엔 어려웠고 자칫 상업적인 목적으로만 비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 현실로 드러났다.


기술 시연용 캐릭터라는 꼬리표에 갇혀

AI심쿵챌린지(2).jpg
AI심쿵챌린지.jpg

펄스나인의 이터니티는 'AI심쿵챌린지 101'을 통해 국민이 직접 뽑은 상위 인물들로 구성됐다고 홍보했지만, 실제로는 기업의 딥리얼AI 기술력을 보여주기 위한 시연용 프로젝트에 가까웠다. 실제로 펄스나인의 이안 콘텐츠총괄이사는 한 매체에서"우리의 기술을 보여주기 위해 이슈를 만들고 싶었다"고 '이터니티' 탄생의 비화를 고백하기도 했다.

문제는 기술 완성도에만 집중한 나머지 정작 중요한 캐릭터의 서사와 매력 포인트가 부족했다는 점이다. 박지은 펄스나인 대표도 "온전하고 아름답게 생성된 가상인물을 가지고 합성하는 페이스 스왑이 쉽지 않았고, 5명이 동시에 군무를 이뤄서 페이스스왑 되는 것도 고난이도였다"고 기술적 어려움을 강조했지만, 정작 팬들이 궁금해하는 캐릭터의 성격이나 스토리에 대한 언급은 부족했다.

이는 디지털 휴먼 기술이 단순히 사람과 비슷한 형상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제품이 인간과 어떻게 상호작용 하며 기술 자체의 우수성보다 사용자와 관계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간 대기업을 비롯한 기술콘텐츠기업은 "얼마나 실제 사람과 비슷한가"에만 집중했을 뿐 "어떻게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부족은 다소 부족했다고 분석할 수 있다.


정보 전달의 ‘도구’에 머문 ‘디지털휴먼’

기술에 집중된 콘텐츠.jpg
디지털 휴먼 한계.jpg

대기업들이 만든 디지털휴먼의 가장 큰 문제는 캐릭터 자체가 목적보다 수단으로 취급되었다는 점이다. LG전자의 '김래아'는 제품 발표회의 진행자로 네이버웹툰의 '로지'는 브랜드 홍보 모델로 스마일게이트의 '한유아'는 게임 홍보 캐릭터로 활용되었다.

이들은 모두 세련된 외모와 설정을 갖고 있었지만 팬들에게는 "예쁜 광고 모델"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했다. 반면 '이세계아이돌'과 '플레이브'는 캐릭터 자체가 하나의 완성된 인격체로서 팬들과 관계를 맺었다.

여기에 일방적 소통의 한계도 나타났다. 이터니티의 경우 과거 한 매체에서 "실제 아이돌은 음악방송, 공연 등을 통해 팬들과 소통이 가능한 점에 대비해 이터니티는 현실에서는 만날 수 없어 SNS에 중심을 더 두어야 했다“며 팬들과 소통의 아쉬움을 강조했다. 그리고 대기업에서 만들어진 디지털휴먼 경우 또한 내부 법무팀과 마케팅팀의 검토를 거쳐 안전하고 무난한 메시지만 전달하는 "기업 대변인" 역할에 머물기도 했다.


이처럼 디지털휴먼의 성공은 기술 완성도가 아니라 매력적인 캐릭터와 스토리에 달려 있다. 기업들은 "얼마나 실제 같은가"보다는 "얼마나 사랑받고 소통할 수 있는가"에 집중해야 한다. 일방적 홍보가 아닌 쌍방향 소통이 가능한 플랫폼과 콘텐츠를 개발해야 한다. 아울러 팬들이 캐릭터의 성장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혁신적인 콘텐츠는 안전한 환경에서 나오지 않는다. 기업들은 디지털휴먼 프로젝트에 실험의 자유도를 부여하고, 단기 성과보다는 장기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높은 개발 비용 부담이 가져온 보수주의

디지털휴먼 제작건(1).jpg
디지털휴먼 제작건.jpg

디지털휴먼 제작에는 막대한 비용이 투입된다. 3D 모델링, 모션 캡처, AI 기술 개발, 콘텐츠 제작까지 수억 원에서 수십억 원의 투자가 필요하다. 대기업일수록 투자 대비 명확한 성과를 요구받기에 실험적이고 창의적인 콘텐츠보다는 "안전한" 콘텐츠를 선택하게 된다.

이렇다 보니 대기업은 풍부한 가용자금으로 기존 직원 가운데 일부를 투입해 신사업을 시작하지만 의사결정 및 사업추진 과정에서 속도를 내기가 어렵다는 구조적 한계가 디지털휴먼 사업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높은 개발 비용과 실패에 대한 부담감은 기업들로 하여금 기존 성공 사례의 모방에 안주하게 만들었고 이는 혁신의 부재로 이어졌다. 이터니티는 K-pop 걸그룹의 공식을 그대로 따랐고, 로지는 기존 인플루언서의 활동 패턴을 답습했다. 하지만 이미 검증된 형식만으로는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낼 수 없었다.

반면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환경에서 시작한 ‘이세계아이돌’과 ‘플레이브’는 기존에 없던 새로운 형태의 콘텐츠를 과감하게 시도할 수 있었다. 우왁굳은 버추얼 스트리밍이라는 새로운 포맷을 창조했고 플레이브는 "진짜 사람이지만 얼굴을 가린 아이돌"이라는 독특한 컨셉트로 차별화를 이뤘다.


기술을 넘어선 인간적 가치의 회복이 필요

디지털휴먼 인간가치.jpg
플리이브사진(1).png

국내 대기업들의 디지털휴먼 프로젝트는 첨단 기술의 집약체였지만 정작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지는 못했다. 기술 개발에만 매몰되어 콘텐츠의 본질을 놓쳤고, 캐릭터를 브랜드 홍보의 수단으로만 활용했으며 높은 개발 비용에 대한 부담으로 창의적 시도를 회피했다.

디지털휴먼의 미래는 더 정교한 기술이 아니라 더 깊은 인간적 공감에 달려 있다. 기업들이 기술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 사람 중심의 콘텐츠를 만들 때 비로소 진정한 디지털휴먼의 시대가 열릴 것이다. ‘이세계아이돌’과 ‘플레이브’가 보여준 것처럼 완벽한 기술보다는 불완전하지만 진실한 마음이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keyword
토요일 연재
이전 04화버추얼콘텐츠, 제작의 효율성만을 따질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