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 요인 분석과 한국의 전략적 선택
일본은 어떻게 버튜버 왕국이 되었나
성공 요인 분석과 한국의 전략적 선택
2024년 기준 전 세계 버튜버 시장에서 일본은 압도적인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다. 유튜브 슈퍼챗 매출 상위 5명이 일본의 대표 버튜버 기업인 홀로라이브 소속이였으며, 니지산지와 함께 글로벌 버튜버 생태계를 주도하고 있다. 일본이 지난 10년 이상 버튜버 시장에서 절대강자가 된 배경을 바탕으로 앞으로 우리나라는 일본의 성공 공식을 따라가야 할지 아니면 독자적인 길을 개척해야 할지에 대한 물음에 답을 찾을 필요가 있다.
일본만이 지닌 특수한 문화적 환경
일본 버튜버 성공의 첫 번째 비밀은 오타쿠 문화와 2차원 캐릭터에 대한 너그러운 사회적 수용성에 있다. 일본은 1980년대부터 애니메이션, 만화, 게임을 통해 가상 캐릭터에 감정이입하고 애착을 갖는 문화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먼저 가상 캐릭터에 대한 애정과 보호 본능을 표현하는 모에(萌え) 문화를 들 수 있다. 여기에 목소리 연기자(성우)에 대한 독립적 팬덤 문화가 잘 갖추어져 있다. 그리고 팬들의 자발적 2차 창작과 커뮤니티 활동이 매우 활발하다. 나아가 피규어, 굿즈 등 캐릭터 IP 비즈니스(시장)이 잘 갖춰져 있다. 이러한 문화적 토양이 있었기에 실제 사람이 아닌 가상 캐릭터를 좋아하고 응원하는 것이 일본에서는 전혀 이상하지 않은 일이 되었다.
버추얼 엔터테인먼트의 메카 : 일본
2023년 일본 버튜버 시장 규모는 약 800억 엔이였고 지난해 1,000억엔을 넘어설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23년 800억엔 매출가운데 리딩기업인 홀로라이브와 니지산지 두 기업의 매출 합계는 620억 엔으로 독보적이였고 나머지 180억 엔이 브레이브 그룹을 비롯해 업랜드(MBS), 나나시잉크, 노리프로 등이 차지했다.
버튜버 시장을 이끌고 있는 홀로라이브와 니지산지의 주요 특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홀로라이브(커버)는 버튜버를 단순한 스트리머가 아닌 '버추얼 아이돌'로 포지셔닝을 잡고 버튜버 시장을 이끌어 왔다. 이에 정기적인 신인 그룹 데뷔를 통한 지속적 화제성 창출했으며, 글로벌 전략을 일찍이 추구하며, 영어권, 인도네이사어권 등 다국어 확장을 추구 했다. 그리고 통합 IP 관리시스템을 갖추면서 캐릭터 디자인부터 3D모델링 그리고 음악, 굿즈에 이르기까지 원스톱서비스를 추진했다.
이에 달리 니지산지(애니컬러)는 100명 이상의 대규모로 크리에이터 운영을 통한 차별화를 나선보이고 있다. 여기에 다양한 컨셉과 개성의 버튜버들로 폭넓은 취향 커버를 통한 다양성을 추구하며, 많은 크리에이터를 보유한 만큼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활동 방침으로 지속적으로 한국, 영어권 등 적극적인 글로벌 확장해 영역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수익 모델의 다각화: 단순 스트리밍을 넘어 지속가능한 BM마련
일본 버튜버 기업들의 혁신은 다각화된 수익 모델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무엇보다도 주목할 점은 일본 버튜버기업의 비즈니스 모델의 성숙도에 있다. 이들 기업의 공통적인 매출 구성비를 살펴보면 커머스(MD)가 40~50%, 스트리밍 수익이 20%, 페스티벌류 이벤트가 15-20%, B2B가 15% 수준으로 라이브(방송) 수익보다 커머스 매출 비중이 높다는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스트리밍에만 의존하지 않는 안정적이고 지속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을 의미할 수 있다.
이밖에 커뮤니티 중심의 생태계가 잘 갖춰져 있다. 팬 커뮤니티기반으로 팬들의 자발적 참여와 창작 활동을 돕고 이를 통해 생산된 2차 창장물은 밈(Meme) 문화를 이끌기도 하고 때로는 공식 채널의 콘텐츠보다 더 큰 파급력을 갖기도 한다.
한국 버튜버 시장의 차별화 요소
한국은 일본과는 다른 독특한 강점을 보여주고 있다. 시장규모는 아직 일본에 비해 미치지 못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검증된 K-pop을 중심으로 차별요소를 강구해 나가고 있다. 특히 한국의 버튜버(아이돌은) 기술기업 중심으로 이들 기업인 모션캡쳐기술과 우수한 렌더링기술로 경쟁력을 있다.
앞서 블래스트의 ‘플레이브’ 그리고 패러블엔터테인먼트의 ‘이세계아이돌’의 성공키워드를 통해 한국의 버추얼콘텐츠의 특장점으로 언급했는데, 이들보다 먼저 전세계적으로 흥행을 주도하고 있는이로 아뽀키(APOKI)를 꼽을 수 있다.
"우주에서 온 토끼"라는 독특한 캐릭터 설정으로 시작된 아뽀키(APOKI)는 이미 23년에 누적 500만 팔로워를 넘어섰고 글로벌 버추얼 아티스트로 성장했다. 2019년 유튜브에서 첫 활동을 시작한 아뽀키는 단순한 디지털 인플루언서를 넘어 실제 음악 차트 1위를 기록하고 미국 래퍼 E-40과 협업하며 일본 오리콘 차트에서도 성과를 거두는 진정한 의미의 '아티스트'로 인정받고 있다.
K-팝 DNA를 활용한 글로벌 어필
아뽀키의 가장 큰 차별화 요소는 한국 최초의 버추얼 K-팝 아티스트라는 정체성이다. K-팝이 전 세계적으로 문화적 영향력을 확장하는 시점에서, 아뽀키는 이러한 한류 열풍의 혜택을 직접적으로 받고 있다. 실제로 K-팝 스타들은 패션위크에서 전체 인플루언서의 13%를 차지하면서도 거의 60%의 EMV(Earned Media Value)를 창출하고 있을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아뽀키는 단순히 음악 활동에만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플랫폼과 콘텐츠 형태를 활용한 종합적인 엔터테인먼트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21년 데뷔 싱글곡 'GET IT OUT'부터 지난 23년 'Super Duper Ride'까지 지속적인 음원 발매를 하면서 E-40을 비롯해 KARD의 전소민, 일본 걸그룹 Girls² 등과의 국제적 콜라보레이션 추구하고 있으며, 카시오, 타미힐피거, 돌체앤가바나, 소니 등 글로벌 브랜드와의 협업도 강화하고 있다.
K-팝의 북미 진출과 시너지
무엇보다도 아뽀키의 북미 성공은 K-팝 자체의 북미 시장 진출과 맞물려 있다. 미국이 중국을 제치고 일본 다음으로 K-팝 음악 수출 2위 시장으로 부상한 상황에서, 아뽀키는 이러한 트렌드의 직접적인 수혜자가 되었다. 특히 미래 지향적인 버추얼 캐릭터라는 특성이 기술에 민감한 북미 젊은층에게 강하게 어필하고 있다. 미국 버추얼 휴먼 전문지에서 'K-버추얼 TOP 1 아티스트'로 선정되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는 단순한 인기를 넘어 전문가들로부터 예술적, 기술적 우수성을 인정받았다는 의미로 해석되고 있다.
일본이 버튜버 왕국이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깊은 문화적 토양, 적절한 기술적 타이밍, 체계적인 기업화,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들만의 독특한 길을 개척한 전략 때문이다. 이처럼 일본은 서구의 유튜버 문화를 그대로 따라하지 않고 자국의 애니메이션과 캐릭터 문화를 접목해 완전히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일본의 성공 공식을 그대로 따라하기보다는 K-팝이라는 검증된 문화 코드와 우수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모델을 창조해야 한다. 아뽀키의 글로벌 성공과 플레이브의 혁신적 실시간 소통 모델은 그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
중요한 것은 경쟁이 아니라 차별화다. 일본과 똑같은 게임을 하면 이미 압도적 선점 효과를 가진 일본을 이기기 어렵다. 하지만 게임의 룰 자체를 바꾸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앞으로 우리나라 지녀야 할 전략은 우선 일본의 성공 요인은 배우되, 모델은 따라하지 않고 K-팝의 글로벌 파워를 버튜버 영역으로 확장할 필요가 있다. 여기 기술 혁신을 통해 새로운 시장을 창조해 나가면서 글로벌 시장을 처음부터 겨냥하는 태생적 국제성(본글로벌)을 갖는 형태를 지속화 할 필요가 있다.
일본이 전 세계 애니메이션 문화를 전파했다면 한국은 실시간 상호작용 기반의 새로운 버추얼 엔터테인먼트 문화를 세계에 제시할 수 있다. 그 길이 쉽지는 않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가치 있는 도전이 될 것이다. 미래의 버튜버 역사에서 일본이 1세대 개척자라면, 한국은 2세대 혁신자가 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