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공할만한 위력을 지닌 빌런 팀원과의 3개월
가공할만한 위력을 지닌 그 녀석이 나타난 것은 2년 전 가을이었다.
2개월 남짓한 짧은 시간 안에 나와 팀을 초토화 시킬만큼 파괴력이 대단했기에 우리 회사에서는 여전히 최종 빌런의 타이틀을 지키고 있다.
2차로 진행됐던 면접 과정에서도 별 탈 없이 순조롭게 입사하게 된 A군.
1개월 차에는 그저 독특한 성격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소통이 자연스레 이루어지지 않는 문제는 시간이 해결해주리라 안이하게 여겼다. 2개월 차부터는 본격적으로 주변 직원들과 마찰을 빚기 시작했는데, 그의 기행을 나열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 금방 탄로날 사소한 거짓말을 쉽게 한다.
- 갑자기 자판을 세게 두드리거나 얼음컵으로 큰 소음을 낸다.
- 근무 중 사라져 한참을 나타나지 않는다.
- 퇴근하며 자기 자리 의자를 한번도 넣지 않는다(뒤에 앉는 직원이 있다).
- 팀장인 내가 없을 때에는 퇴근 15분 전부터 모니터를 끄고 가방을 챙긴 채 아직 일이 끝나지 않은 주변 직원들에게 말을 걸어 퇴근을 독려(?)한다.
- 몇몇 직원에게는 눈빛으로 유혹할 수 있다고 실제로 말했다.
- 약 및 당류를 걱정될 정도로 섭취한다(책상에 보란듯이 쌓아두기 때문에 알게 되었다).
- 기본적인 분리수거를 하지 않아서 다른 사람이 치우게 한다.
- 회사 소유 맥북을 이상하리만큼 험하게 사용했다(배터리가 부풀어 A/S를 받아야 했다).
- 기분이 나쁘거나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사방에 티를 낸다.
- 회사에 긴급한 일을 해결하기 위해 모두가 애쓰는 와중에 급하지 않은 일로 컨펌을 요청한다('지금 상황이 보이지 않냐'며 처음으로 화를 냈다).
A군을 제외한 모두는 갑작스레 불편해진 이 상황이 매우 당혹스러웠고, 그에게 상처주지 않고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이것은 우리 모두의 문제이니 함께 노력합니다’라는 식으로 포장해서 전달하느라 진땀을 빼야 했다. 물론 이처럼 간접적인 피드백은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팀원들은 그와 말 섞는 것이 두려워 말하는 것 자체를 삼갔었고, 자리가 가깝든 멀든 간에 모든 소통은 메신저로만 이루어졌었다. 그의 소음에 방해 받는 것이 싫었던 직원들은 이어폰을 끼고 일을 해야만 했다.
2개월 만에 우리는 건강했던 조직 문화를 잃은 것이다.
이 무렵에 나는 불안해서 미칠 것만 같았다.
머리 속에 ‘비상등'이 켜지고, 팀을 위해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주말에도 마음 편히 쉴 수가 없었다.
처음 겪는 문제로 머리에는 물음표가 가득한데, 지금 겪고 있는 이 상황을 분명하게 정의할 수가 없었다. 온갖 검색 포털과 커뮤니티를 찾아도 비슷한 사례가 없었다. 정의할 수 없으니, 해결할 수 없고, 그래서 더 막막했다.
그러다가 A군의 행동 패턴을 하나하나 검색해서 찾은 것이 ‘연극성 성격장애'였다.
하루하루가 가시밭길 같던 그 무렵, 그의 퇴사(수습 후 계약 종료)를 회사에 강력히 건의하기로 마음 먹게 된 계기가 생겼다.
대부분의 팀원들이 그의 이상 행동을 보고도 못본 척 넘어가거나 직접적인 갈등을 피하려고 노력했던 반면에, 불편한 상황이 되면 대놓고 피드백했던 직원이 있었다. 당연히 A군은 그 직원과 꾸준히 마찰이 있었는데, 신경전 수준이라 크게 개의치는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몹시 기분이 나빠보였던 그는 나와 1on1 미팅을 하게 되었는데 미팅 중에 그 직원과 있었던 일을 털어놓으며 자신을 평소에도 미워하며 막말을 서슴치 않았다는 것이다.
그 직원과 내가 함께 일했던 시간이 길고, 평소에도 신뢰가 있던 사이라 일단은 A군을 잘 달래서 보낸 후 그 직원을 불러 사실 관계를 확인했다. 두 사람의 주장은 완전히 달랐다. 그리고 나는 A군이 완전히 거짓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이후 다자 확인을 통해 거짓임이 분명해졌다). 기만 당했다는 느낌에 화가 났지만 잘 마무리 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그의 존재가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사건은 A군의 퇴사 이후부터 시작됐다.
퇴사 이틀 뒤 그는 내게 ‘전체보기’를 눌러서 봐야할 정도로 긴 카톡 메시지를 보냈다. 내가 팀장으로서 본인에게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항목별로 날짜와 시간까지 넣어가며 상세하게 적었다. 그가 주장한 내용에 대해 진위 여부는 알 수 없지만, 마치 팀원을 특별한 이유 없이 감정적으로 괴롭히는 못된 인간으로 서술했기에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이미 떠난 사람이고, 굳이 논쟁하고 싶지 않았기에 그러마 하고 말았다.
그 다음 날엔 이른 아침부터 인사 관리 담당 직원에게 잡플래닛을 확인하라며 급한 연락이 왔다.
그는 카톡으로도 분이 안 풀렸는지, 잡플래닛에 공개 저격글을 남겼고 내용은 지난 밤에 보냈던 메세지보다 곱절 이상으로 왜곡돼있었다.
대부분이 나를 향한 인신공격이었고, 회사와 대표를 싸잡아 비난했다. 드디어 선을 넘은 것이다.
출근길에 곧장 경찰서로 향했다. 퇴사한 부하 직원을 고소하기 위해 난생 처음 방문한 경찰서는 사이버 수사대가 있는 강남경찰서 였다.
이 날 경찰서에 정식으로 고소장을 접수하고, 변호사를 만나러 갔으며, 잡플래닛을 통해 공식적으로 소명을 했다. 소위 말해 ‘인생은 실전이야’를 가르치겠노라고 정의감에 사로잡혔다. 분노에 휩싸여 결정한 일들이 더 큰 불길로 내 내면을 활활 태우기 시작했다.
곧 배정된 담당 수사관님과 통화를 하게 되었는데, 잡플래닛을 통해 ‘해당 리뷰가 허위 사실 유포로 고소장이 접수 되었고 법적 절차를 밟게 된다’는 소명서를 본 A군은 직접 강남경찰서에 연락하여 ‘진짜 고소장이 접수된 게 맞냐’고 물어봤다고 한다. 그 때까지도 A군은 나와 우리 회사를 통해 그 어떤 연락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원만히 해결하기 위한 회사 대표님의 연락을 모두 차단했다.
자료 준비와 변호사 선임을 준비하던 나는 정신적으로 매우 피폐해졌다.
극심한 우울감과 심적 고통에 휩싸여 처음으로 신경 정신과에 방문했다. 의사 선생님은 이 사건은 교통사고나 다름 없으며 가급적 빨리 과거로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긴 시간동안 나는 선생님께 최근 3개월 간 겪은 일을 털어놓았고, 더 이상 싸우지 않기로 마음 먹었으며, 진료 후에도 몇 시간을 엉엉 울었다. 살 것 같았다.
이후에는 사과와 재발 방지를 약속하는 각서를 서면으로 받고 고소를 취하하며 사건은 종료 됐다.
그가 완전히 떠난 후 우리는 저마다의 상처를 서로 보듬고 치유하기 시작했다.
나는 본격적으로 리더십을 공부하며 진정한 소통에 대해 배우기 시작했고, 팀원들과 함께 지난 날을 회고하며 인재상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눴다.
큰 일을 겪을 수록 회고는 더 중요하다.
맛있는 식사와 가벼운 술 한 잔을 곁들인 감성적인 회고는 마음을 보듬어주며, 문제 발견과 개선 방향에 대해 토론하는 이성적인 회고는 우리를 건강한 방식으로 나아가게 한다.
그리고 다친 내 마음에게도 그동안 고생 많았다고 다독였다.
‘너의 잘못이 아니야.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교통사고 같은거야.
아픔은 금방 지나가고 나는 이 경험을 거름 삼아 더 멋진 사람으로 성장할거야’라고 말이다.
비 온 뒤 땅은 굳게 마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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